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이동할 예정이다./2025.4.09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정치권에서 말은 신념을 상징하고, 그 신념은 결국 정치인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전 대통령 윤석열씨가 검사 시절 뚜렷하게 밝혔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당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를 정의로운 원칙주의자로 인식하게 만든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말을 뒤집었다.
전 대통령 윤석열씨가 지난 9일 한남동 관저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대통령이 되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할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조언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그 발언의 의미와 정치적 함의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철우 지사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밝히면서, 전 대통령 윤석열씨가 과거 직접 했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과의 괴리가 큰 것이다.
이철우 지사는 이날 “나라가 무너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는 뜻을 윤 전 대통령께 전했고, 윤전 대통령은 덕담과 함께 우리 당이 반드시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면 “충성심”을 인사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으며, 이는 “주변 인사들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해당 발언은 일각에서 단순한 농담 혹은 사적 자리에서의 가벼운 말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그 파장이 결코 가볍지 않다.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녔던 인물로서, 그리고 한때 검찰총장으로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인물’로 평가받았던 그가 다시금 ‘충성’을 언급한 것은 그의 과거 신념을 스스로 뒤엎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 윤석열씨의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국회 청문회에서 나왔다. 그는 상급자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밀어붙였으며, 그 과정에서 외부의 압력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정치적 중립성’의 아이콘처럼 비쳤다. 그러한 이미지가 정치권 입문 이후에도 그의 정당성과 명분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충성한다’는 철학은 전 대통령 윤석열씨가 스스로 세운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철우 지사에게 말한 ‘충성심’ 언급은 스스로 그 기준을 허물어뜨리는 발언이다. 발언의 맥락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없다면, 이는 단순히 말의 실수가 아닌 ‘기조의 전환’ 또는 ‘진심의 노출’로 해석될 수 있다. 만약 진심이었다면, 그것은 국민 앞에 했던 다짐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자기부정이다.
정치인은 말로 자신의 철학을 증명한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전 대통령 윤석열씨가 이철우 지사에게 강조한 ‘충성심’ 발언은, 과거 그가 내세웠던 정의와 원칙, 중립의 가치를 훼손할 뿐 아니라, 정치적 언행의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심각한 자충수가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일관성이 사라진 자리엔 냉소만이 남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이 단순한 포장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순간, 그 말은 정치적 브랜드가 아닌 조롱의 상징이 된다.
한편 전 대통령 윤석열씨는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일주일이 지난 오늘 오후 5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 서초구 서초동의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이주한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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