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 김성민 발행인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하거나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 국정 공백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권한대행’ 체제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이고 제한된 대리 체계일 뿐이며, 실질적인 국가의 최고결정권까지 대행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은 지금, 헌법의 본래 취지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다. 국가의 핵심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구성까지, 선출되지 않은 자신의 손으로 재단하려는 무모한 결정을 강행했다.
그가 지명한 두 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이완규 전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다. 이들은 모두 특정 정치 세력과의 긴밀한 연결성, 편향된 법 해석, 그리고 사법의 독립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지명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시기적 맥락 때문이다. 불과 두 달 뒤인 6월 3일, 새로운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에 따라 공식 취임하게 된다. 이처럼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을 앞두고 이뤄진 헌법재판관 지명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헌법재판소를 선점하려는 노골적인 ‘알박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한덕수 대행은 스스로 권한대행의 역할에 대해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그는 2022년 국무회의에서 “권한대행은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임시 역할에 그쳐야 하며, 인사권 행사와 같은 중대한 사안은 본래 권한자가 복귀한 뒤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가장 민감한 헌법기관 인사를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명백한 말 바꾸기이자 정치적 위선, 그리고 표리부동(表裏不同)의 극치다.
문제는 지명된 인물들의 면면이다. 이완규 전 법제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법률 자문 역할을 맡았고, 집권 이후에는 각종 국정 기조에 깊이 관여한 핵심 인사였다. 특히 이완규 전 처장은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 넓게 해석하고, 사법적 견제 장치를 약화시키는 입장을 취해 온 인물로, 정치적 중립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함상훈 부장판사 역시 과거 김경수 전 경남지사 불법 댓글 조작사건(일명 드루킹 사건)항소심에서 무죄가 유력하다는 법조계의 전망을 뒤집고 징역형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을 결정해 정치적 파장과 함께 '극우적 성향의 판사'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인물이다.
이처럼 정치적 성향이 뚜렷한 두 인사를, 대통령도 아닌 권한대행이 지명했다는 것은 헌법재판소를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법조계와 시민사회가 반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헌법재판관 지명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이 같은 지명을 밀어붙인 것은 권한을 넘어선 월권이자 헌재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전직 헌법재판관 역시 익명으로 “이런 식의 지명은 헌재의 기능을 정권의 정당화 수단으로 전락시킬 수 있으며, 법치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덕수 대행의 결정은 대한민국 정치가 아직도 ‘권한의 사유화’라는 과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헌법재판관은 단지 법률을 해석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가치와 방향을 결정짓는 최후의 심판자다. 그런 자리를 선출되지 않은 대행 체제가 채운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헌 행위다.
정치는 명분의 예술이고, 헌법은 그 명분을 떠받치는 토대다. 그런데 지금 한덕수 대행은 명분도, 헌법도, 국민도 외면한 채 사욕(私慾)과 아집만을 좇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권력의 방패도, 보은 인사의 수단도 아니다. 그 자리는 국민 앞에, 그리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할 헌정의 상징적 자리다.
지금 한덕수 대행이 감히 이 자리를 건드리려 한다는 것은,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도 헌법을 지켜온 모든 공직자, 판사, 그리고 국민의 의지를 조롱하는 행위다. 헌정 질서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음에도 침묵한다면, 결국 이 나라의 헌법은 더 이상 국민의 것이 아닐 것이다.
한덕수 대행은 지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남겨진 두 달여 동안, 오직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는 ‘대리인’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 지명을 고집한다면, 그는 권한대행의 탈을 쓴 실질 통치자, 아집과 독선의 상징으로 기록될 것이다.
헌법은 권한대행에게 무소불위의 칼을 준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칼을 헌정의 심장에 겨누는 자는, 반드시 역사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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