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미국은 오랫동안 자유무역을 옹호해온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 간의 대외 경제정책을 보면, 그 이면에는 철저히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전략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상호주의'라는 명분 아래 도입된 미국의 상호관세(mirror tariff)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공정 무역을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호관세(protective tariff)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렇다면 상호관세란 무엇인가. 상호관세는 특정 국가가 미국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도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되갚는 방식으로 적용하는 제도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강조되기 시작한 이 개념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산업경쟁력 보호를 명분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철강, 농산물 등 주요 산업에서 이 같은 관세정책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주요 타깃은 중국, 유럽연합, 한국, 일본 등 미국과의 무역 흑자를 기록한 국가들이다.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상호관세 논리에 심각한 모순이 있다. 미국 정부는 이를 "공정한 거래" 혹은 "경제적 자주권 회복"의 일환으로 홍보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상호관세는 자유무역의 원칙을 훼손하는 일종의 경제적 보복 조치다.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상 상호적 조치가 허용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며, 무분별한 보복관세는 결국 국제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상호관세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을 왜곡시키고 소비자 가격 상승,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이는 과거 대공황 시기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에서 이미 입증된 역사적 교훈이다.

국제 무역 질서에 미치는 악영향을 주목해야 한다. 상호관세는 국제 무역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는 결정적인 요소다. 강대국인 미국이 이 같은 관세 정책을 지속할 경우,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며, 이는 글로벌 무역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개도국들은 미국의 보호관세로 인해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상실하고, 경제 발전에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정책은 유럽연합과의 긴장을 초래했으며, EU는 미국산 농산물에 보복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양측 간 무역 갈등이 심화된 바 있다. 이처럼 미국의 상호관세는 자칫 글로벌 무역의 도미노 붕괴를 일으킬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이 경제적 효율성보다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자국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는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경제 손실을 감수하는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미국 제조업계의 로비와 노동조합의 압박 또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글로벌화된 경제 체제 속에서 인위적인 무역 장벽은 결국 자국 소비자에게 더 높은 비용을 전가하고, 혁신 대신 보조금과 보호막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

다시 분명히 정리하자면 '공정'을 가장한 '자국우선주의'로 권력을 휘두르는 美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은 그 명칭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전형적인 보호관세다. 이는 자유무역을 지향한다는 미국의 오랜 경제 철학과는 어긋나는 방향이며, 글로벌 경제 질서를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 상호주의는 결코 일방적 보복이나 위협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진정한 공정무역은 투명하고 협력적인 대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도 문제다. 미국이 [Reciprocal Tariff]라고 발표했다 하더라도 국내 언론은 [미국의 보호관세]로 표기해야 맞는 것이다. 상호관세로 포장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상 일방적인 보호관세인 것이다.

21세기의 무역은 과거와 달리 상호의존적이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방적 보호주의 정책은 결코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 이제 미국은 '세계의 공정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