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김세전 기자]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자국 국경 밖에 군대를 영구적으로 주둔시키기로 결정했다. 리투아니아에 5,000명 규모의 기갑여단을 배치한 이번 조치는 단순한 안보 조치가 아니라, 독일 군사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상징하는 결정으로 평가된다.
나토(NATO)의 동부 방위 강화를 명분으로 한 이번 배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촉발된 안보 재편 흐름과 맞물려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독일 내부의 복합적인 역사 인식, 정치적 부담, 국제적 압력 간의 절묘한 균형 조정이 담겨 있다.
이번에 창설된 리투아니아 주둔 제45기갑여단은 수도 빌뉴스 인근에 주둔하며, 독일 연방군 역사상 처음으로 병사들이 가족과 함께 장기 배치되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단기 파병 중심이었던 과거의 아프가니스탄·말리 작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태다. 독일군이 해외에서 ‘주둔군’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군사 전략과 정치적 상징 모두에서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 셈이다.
핵심은 이 결정이 독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전후 수십 년간 군사 개입과 해외 배치에 대해 유난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프랑스, 폴란드, 미국 등 서방 동맹국들로부터 지속적인 압력을 받아왔고, 결국 이번 리투아니아 주둔은 그 결과물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해 "자이텐벤데(Zeitenwende)", 즉 ‘전환점’을 선언하며 독일의 안보 전략을 전면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군사적 탈중립화 선언이다. 독일은 국방비를 GDP 대비 2%까지 끌어올리기로 약속했고, 이번 리투아니아 기지 건설에만 매월 약 3천만 유로를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독일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럽 안보 구조가 다극화·파편화되는 가운데, 독일의 적극적 개입이 오히려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러시아와의 대치 구도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독일 내부에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파병 결정에 따른 정치적·재정적 부담은 물론, 군 현대화와 병력 확충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이중 과제는 만만치 않다. 특히 장기 배치를 위한 병력 운용, 가족 동반 시스템, 현지 인프라 구축까지 감안하면 독일군의 실제 대응 역량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결국 독일의 리투아니아 주둔은 유럽 안보 지형에서 독일이 다시 ‘행동하는 국가’로 돌아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군사력 투사라는 새로운 역할을 자임하는 것과 동시에, 독일 스스로가 오랫동안 금기로 삼았던 역사적 부담을 극복하려는 정치적 실험이기도 하다.
‘국제적 책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이번 결정이 미래의 안보 안정화에 기여할지, 아니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독일이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조용한 강국’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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