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조영섭 기자] 봄꽃들이 겨우내 숨겨온 자태를 뽐내면서 향연(饗宴)을 펼치는 화창한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주인공은 SK 에코 플랜트 지진형 부장이었다. 그는 중·고 시절 자신에게 복싱을 지도 편달한 최한기 감독에 대한 보은(報恩)으로 후원회 결성 모임을 천안에서 갖는다고 전했다.

최한기 감독 윤호현 대표 지진형 부장(우측)


그런 사연으로 지용 종합건설 김인문 회장, 서진산업 신세현 이사 등 지진형 부장을 포함 죽마고우 3명이 의기투합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이에 필자는 지난 주말 최한기 감독이 운영하는 <충의 복싱 체육관>을 찾아 그곳에서 지진형 부장과 동료들을 만났다. 1957년 8월 천안태생의 최한기 감독은 한국판 커스 다마토라 불리는 인물이다. 커스 다마토는 1979년 브루클린 뒷골목에서 비행을 저지르다가 뉴욕 소년원에 수감된 13세 소년 마이크 타이슨을 신원보증을 서고 집으로 데려와 양자로 입양시켜 최연소 헤비급 챔피언으로 복싱계 대부다.

1908년 이태리계 미국인으로 일생을 독신으로 산 그는 체육관의 간이침대가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그는 권투는 기술이 아닌 의지의 싸움이라는 복싱 철학으로, 60년대 헤비급 왕자 패터슨, 70년대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호세 토레스, 80년대 최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헤비급 최연소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을 배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특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야수성을 지닌 타이슨이란 원석을 잘 세공(細工)하여 세계 헤비급 정상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었다.

지진형 부장과 최한기 감독(우측)


한편, 재소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최한기 감독은 충남 대천중. 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5년간 지진형을 지도한 은사다. 그가 한국체대행을 거부하고 밤의 황제로 불리던 박현성 휘하에서 행동대원으로 활약할 때 빨리 정신 차리고 이 세상에서 값어치 있는 그 무엇이 되고자 결심해라. 라는 따끔한 충고와 훈계로 그의 인생항로(人生航路)를 변경시킨 은사가 바로 최한기 감독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스스로 해 보이지만 위대한 지도자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는 명언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최한기 감독은 필자에게 지진형은 총명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에 불타는 제자라고 말했다. 바다가 썩지 않은 이유는 3%의 소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혼탁한 세상을 정화 시키는 것도 3%의 정의로운 인간 덕분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독백이 스쳐간다.

지부장은 지난 학창 시절을 회고하면서 최한기 감독을 조각가로 묘사했다. 왜냐면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형상(形像)을 마음속에 담아놓고 마치 조각가가 원하는 모형이 완성될 때까지 정성껏 다듬듯이 그런 자세로 선수들을 지도한 참다운 스승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런 정성 덕분에 최한기 감독의 조련을 받은 지진형을 포함한 대천고 주력 선수들인 박완순, 김익수, 백보흠, 김동철, 김종진, 이영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무수한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런 사명감으로 무장한 최한기 감독은 1989년 천안 소년원 복싱 감독(일명 충의대)으로 부임한다.

지진형 정순현 윤호현 최한기 신세현 박영태(좌측부터)


교도소 내 60평 규모의 체육관에서 25명 정도의 재소자들을 지도한 최 감독은 그들에게 따끔한 훈시를 했다. “너희들은 그저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려고 태어난 것임을 명심하고 훈련에 임하길 바란다”라고 지침을 내린다. 그리고 강단 있는 훈련으로 복싱 역사상 깨지기 힘든 전무후무한 전국 선수권 9회 종합우승을 창출 아마복싱계의 요람(搖籃)으로 확고부동하게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1993년 4월 8명이 출전해 5명이 우승을 차지한 제46회 전국 신인선수권대회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천장 높이 그들의 손이 올려질 때 그들은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방울을 <천안 충의대>라고 써 있는 유니폼에 떨구고 있었다, 필자도 지난날 천안 교도소에서 고 (故) 권주진 대한 복싱협회 심판위원의 천거로 6개월 근무를 했다. 그러나 이곳은 사명감 없이는 근무를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왜냐면 월급이 한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최한기 감독은 결연한 의지로 선수양성에 매진 프로 복싱계에서도 동양 챔피언 2명, 한국 챔피언 3명, MBC 신인왕 5명이 링 위에서 속죄의 주먹을 날리면서 탄생하는 혁혁한 성과를 창출했다. 충의대는 천안 교도소 내 악대, 농악대, 복싱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곳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봉사 활동을 한 최한기 감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갖가지 사연으로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수많은 재소자들이 최한기 감독의 지도로 복싱을 수련한후 출소하여 재범을 저지른 숫자가 단 4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던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가 32년 재위 기간에 단 한 명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다는 점이고, 독일 분데스리가에 입성한 축구 선수 차범근은 통산 308경기에 출전해 단 한 차례의 옐로카드만을 받은 것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국군 통수권자란 책임 의식으로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유추해 볼 때 최 감독이 훈육(訓育)한 충의대 복서들의 재범(再犯)률이 거의 바닥을 찍은 점 역시 여러 명의 세계 챔피언 탄생시킨 것 못지않은 대단한 업적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위대한 업적은 그만큼 커다란 위험을 감수한 결과물이다. 이렇듯 음지에서의 화려한 지도경력을 보유한 최한기 감독은 <SBS 김미화의 휴먼 TV 아름다운 세상> 등 여러 차례 방송전파를 타고 전국에 소식을 전했다.

장성길 윤호현 대표 (우측)


잠시 후 투타임 동양 챔피언 정순현 대광건설 대표와 윤호현 국화원 장례식장 대표가 참석해 담화를 이어갔다.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세계 타이틀전을 3차례 연속 도전한 1952년 천안 출신의 정순현 챔프는 77년 올림픽 대표 출신의 고생근을 KO로 잡으면서 스타덤에 올라 프로복싱의 구심점을 형성한 복서다.

일간 스포츠 표지모델 정순현 챔프


복서로 최고봉인 세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사업 성공으로 보상받은 정순현 챔프는 1978년 11월 18일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카르도나와 타이틀전에서 6회 눈 부상을 당해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안타깝게도 당시 준비된 지혈제가 없었다. 그래서 경기 도중 장충체육관 맞은편에 위치한 수정약국에서 지혈제를 구입하기 위해 임원이 황급히 출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방 영세 프로모션의 열악한 환경 속에 고군분투한 지난날 정순현의 감투 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

1964년 천안태생의 윤호현 대표는 천안에서 국화원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용인대 83학번으로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윤호현은 현재 용인대 태권도 총동문회 회장과 우슈협회 회장 그리고 대한 체육회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지진형 부장의 전언에 의하면 지난 2007년 주먹계 원로 조일환 선생의 고희연을 총괄한 장본인으로 그분 휘하에서 일명 <단지 사건>을 지휘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 전력을 가진 윤호현은 올곧은 성품으로 7년전 따님 결혼식에 축의금 액수만 7억 원을 상회 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오찬을 하기 위해 천안시 동남구에 위치한 장성길 대표가 운영하는 제주흙돼지 전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7년 천안태생의 장성길 대표는 정순현 챔프의 소개로 알게 된 분이다.

지용 종합건설 김인문 회장


차분하고 겸손한 인상을 강하게 받은 그분은 보스기질이 넘치는 복싱 페더급 국가대표 장윤호(한국체대)와 친분이 두터운 관계여서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담화를 나눴다. 이번 최한기 감독 후원회 결성을 위한 밑그림을 그린 지진형 부장은 지용 종합건설 김인문 회장, 서진산업 신세현 이사와 함께 차후에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 밝히면서 평생을 복싱밖에 모르는 스승 최한기 감독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끝으로 어떠한 희생과 댓가를 지불 하더라도 자신이 꿈꾸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맡은바 임무에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몸소 보여준 최한기 감독의 지난날 노고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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