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15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국제 연구기관이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후퇴하고 있으며,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같은 평가는 윤석열 정부 들어 야당 탄압, 표현의 자유 위축, 사법부 장악 시도 등의 문제들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최근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 따르면, 한국은 기존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한 단계 낮은 ‘선거 민주주의’로 강등됐다. V-Dem은 전 세계 179개 국가를 ▲폐쇄된 독재정권 ▲선거 독재 정치 ▲선거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 한국은 1년 전까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다가 올해 처음으로 ‘선거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보고서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는 것을 넘어,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시민의 자유와 법치가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사법부를 압박하고, 검찰을 동원해 야당을 탄압하는 등 민주주의 후퇴를 초래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심의적 지수’에서 48위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공공의 논의가 얼마나 포용적인지, 정부가 야당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지, 정책 논의가 사실에 기반해 이루어지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V-Dem의 평가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들어 야당 및 비판 세력을 억압하고,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위축 효과를 조성하는 것이 민주주의 후퇴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V-Dem은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권위주의 진영 국가(91개)가 민주주의 국가(88개)보다 많아졌다. 이는 2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스타판 린드베리 V-Dem 소장은 “20년 전만 해도 권위주의화된 국가는 12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5개로 급증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서유럽과 북미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V-Dem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72%가 권위주의적 체제 아래에 살고 있으며, 이는 1978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보고서는 특히 동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민주주의 후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 벨라루스, 헝가리, 세르비아 등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벨라루스는 유럽 최초로 ‘폐쇄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몽골이 권위주의 진영으로 변화했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으나, 최근 들어 그 흐름이 역행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야당 대표 및 주요 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 남발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 과정에서의 논란 ▲공영방송 장악 시도 ▲노동·시민사회 탄압 등이 민주주의 후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V-Dem의 평가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1위)였으며, 에스토니아, 스위스, 스웨덴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은 24위, 일본은 27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종합 순위 41위로 하락했다.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속에서 한국이 다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고, 공정한 법치와 언론·시민사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주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탄핵 반대 진영 “윤석열 대통령 수호”

한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서울 도심에서 탄핵 찬반 진영이 대규모 집회를 열며 세 대결을 벌였다. 헌법재판소가 아직 선고일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양측은 이번이 선고 전 마지막 대규모 집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총력을 기울였다.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과 야권은 15일 오후 서울 종로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촛불행동, 민주노총,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이 각각 집회를 연 뒤, 오후 4시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집회에 합류했다. 경찰 추산 4만2천500명(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참여하며 경복궁역까지 약 1km 거리를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주권자의 명령이다. 윤석열을 파면하라”, “우리가 이긴다, 민주주의 지켜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윤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집회 현장에는 다양한 시민 단체들의 깃발이 휘날렸고, 야당 농성 천막과 시민들에게 어묵과 커피를 나눠주는 부스도 등장했다.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은 선언문을 통해 “더는 극우 세력과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없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지금 멈추지 않으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며 탄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2만5천여 명이 동십자각에서 출발해 종로3가 사거리까지 행진하며 “윤석열 탄핵”, “내란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진영도 대규모 집회를 열며 맞불을 놓았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대국본)’는 광화문에서, 보수 개신교 단체인 ‘세이브코리아’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부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헌재 근처에서는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변호인단’도 별도 집회를 개최했다.

경찰 추산 4만3천 명(주최 측 추산 350만 명)이 모인 가운데, 대국본 집회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문까지 세종대로 전 차로를 차지하며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윤석열 즉각 복귀’, ‘국회 해산’ 등의 구호를 외치며 탄핵 각하를 촉구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연설에서 “민주당이 입법 독재를 하고 있다”며 “탄핵 각하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현장에는 윤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이 마련됐고, 참가자들은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국민의힘 의원들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바닥에 깔려 참가자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여의도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집회에서는 찬송가를 부르며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탄핵은 무효”라고 외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경찰은 이날 도심 곳곳에 기동대 60개 부대, 총 3천600여 명을 배치하고, 찬반 집회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차벽을 설치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이나 참가자 연행 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양측의 대립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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