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답다는 김종삼 시비


[시사의창 2025년 3월호=김차중 작가] 순수의 시인 김종삼, 그의 시에 안긴 고모리 호수
천상병 시인은 김종삼에 대하여 ‘말 없던 침묵의 사나이’라고 했다. 1921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시인의 젊은 시절은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정신적 폐허와 현실적 폐허 속의 일기로 가득 찼을 것이다. 1984년에 생을 마친 김종삼 시인은 생전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황동규 시인이 그를 추모한 시 <점박이 눈>에서 나타나듯이 강북성모병원 그의 빈소에는 사람들이 뜸하였고, 길음동성당에서 치러진 영결미사에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추모시를 쓴 천상병 시인, 그리고 광릉수목원 옆에 시비를 세운 박중식 시인의 헌신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김종삼은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고귀하고 순수한 시까지도 말이다.
그 후 장석주 시인이 엮은 『김종삼 전집』과 그가 제정한 ‘김종삼 문학상’, 권명옥 시인의 『김종삼 전집』, 이숭원의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그리고 포천 고모리 호수공원에 조성된 김종삼 시인의 시비와 시의 덕택으로 김종삼 시인은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질 수 있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 <김종삼 씨 가시다>에는 고전음악을 좋아했고 순진한 침묵의 사나이를 천국에서 만나고자 하는 천상병 시인의 애처롭고 쓸쓸한 마음이 담겨 있다. 김종삼 시비는 최옥영 조각가의 작품이다. 타원형 돌 두 개를 얹은 특이한 모양으로 다른 시비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아름다운 시비와 그 위에 새겨진 순수한 시를 찾아 포천 고모리로 향한다.
포천시 소흘읍에 위치한 고모리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차가운 아침 바람을 맞으며 버스는 하얀 눈 소복이 쌓인 포천의 시골길을 달린다. 고모리에 들어서자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눈썰매 타기로 즐겁다. 유명하다던 욕쟁이 할머니의 집도 보이고(얼마나 유명한지 버스정류장 이름이 되었다.), 한적한 카페들도 서너 군데 보인다. 높지 않은 산들과 시가 있는 호수공원은 가족과 연인이 나들이 가기에 참으로 적당한 장소다. 고모리의 지명은 이 마을이 이름난 효부 고 씨 할머니 묘 앞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 초소 사이 멀리 보이는 북한지역과 초소


한탄강은 북한에 속한 강원도 평강에서 발원하여 휴전선을 넘어 굽이굽이 흘러 철원과 포천의 경계를 만들다가 포천으로 흐른다. 시비가 있는 고모리 호수는 포천으로 들어온 한탄강의 강줄기가 눈물처럼 고여 생긴 저수지다.
이번 여행은 김종삼 시비 제막식에 참여한 대진대학교 서범석 명예교수님과 동행하였다. 서범석 교수는 김종삼 시인 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시비에 얽힌 20분간의 간추린 교수님의 차분한 설명으로 이번 여정의 기록이 풍성해졌다.
시비는 1993년 박중식 시인을 비롯하여 39인의 문인과 조각가들의 노력으로 건립되었다. 대전에서 제작된 시비는 당시 광릉수목원에 근무하던 공무원의 제안으로 수목원 인근 식당 정원에 세워졌다. 그 공무원은 마침 ‘김종삼 시비 건립추진본부’에 참여한 시인이었다. 그러나 광릉수목원에서 주차장과 안내센터 조성을 위해 식당 부지와 시비가 위치한 토지를 교환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때 시비를 이전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처음에는 한국시인협회가 시비를 파주 헤이리 문화마을로 옮기려고 하였다. 그런데 당시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지역 유지들과 유족들을 설득하고, 포천시청에 이전 경비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11년 고모리 호수공원에 이전을 시킨 것이다. 이렇게 김종삼 시비가 지금까지 포천 시민의 곁에 자리할 수 있었다.

나의 본적


포천은 김종삼 시인과 전혀 인연이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기념사업회에서 포천과 김종삼의 인연을 찾던 중 <어머니>라는 시에서 ‘부인터 공동묘지’라는 시구를 발견한다. 그곳에 부모님 묘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곳은 시비가 세워진 곳으로부터 직선거리 1.5km 거리에 있다. 우연처럼 찾아온 그의 시비가 우연으로 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죽어서도 부모님을 그리워하여 영혼의 걸음이 이곳으로 향한 것이 아닐까.

달구지길


시비의 전면에는 시 <민간인>이 새겨 있고 윗면에는 <북 치는 소년>이 새겨져 있다. 시비의 평평한 윗면에 새겨진 시를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시비 옆에 돌을 설치해 놓았다. <북치는 소년>를 읽기 위해서는 이 돌을 밟고 올라서면 된다.
나는 김종삼의 시에는 박용래의 시와 대비 되는 순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종삼의 현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과 박용래의 순수한 마음을 현상에 투영하는 것. 순수를 포근하게 담은 여러 편의 시가 호숫가의 둘레를 서성이고 있다.

백마고지 위령비 위로 펄럭이는 태극기


김종삼 시인 덕에 돌아본 순담계곡 잔도와 백마고지
포천까지 왔으니 철원까지 내달린다. 고모리 호수의 물길을 거슬러 철원 한탄강 순담계곡을 들렀다. 3.7km의 바닥이 철망이나 유리로 된 기다란 잔도길은 한탄강 위에 걸쳐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놀라움과 찬사가 들려온다. 물이 떨어지다가 얼어붙은 폭포가 여럿이고, 물살이 세어 얼지 않은 곳에는 청둥오리 떼가 고기를 잡으려 한다. 건너편으로는 주상절리와 기암괴석이 기다란 병풍으로 둘러 있다. 철재로 된 잔도길은 강물 위로 족히 50m 이상은 떠 있는 것 같다.

철원 노동당사


겁 없이 잔도길을 건너고, 총탄 자국들에 멍들어있는 노동당사 건물을 찾았다. 백마고지 전적비 앞에 서서 비석에 새겨진 전쟁 통에 서거한 고귀한 순국선열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렸고, 분단의 현실에 머물러 있는 우리를 위로하였다.

평화의 종


전적비 공원의 길의 끝에 서면 우리의 백마부대 초소가 보이고, 커다란 인공기가 걸린 북한의 초소가 보인다. 손을 흔들면 화답해 줄 것 같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알아차릴 것 같다. 끊어진 길 너머 남과 북의 초소에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이 노란빛을 드리운다.

철원에서 만난 철원시인 정춘근시인의 시비


김종삼 시인이 쓴 <민간인>은 1947년 황해도 해주의 바다에서 깊은 밤 조각배로 월남하던 중 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자 들키지 않기 위해 아기가 바다로 던져진 이야기로 출발한다. 스무 몇 해가 흘렀어도 그 아이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김종삼 시인은 살아남은 자가 되어 스무 몇 해가 흐른 후 안타까웠던 한 사건을 회고하며 이 시를 썼다.

한탄강의 겨울


평화의 종이 울리고, 이 지긋지긋한 분단이 끝나는 날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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