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앞바다, 2024.11, IPHONE 12


[시사의창 2025년 3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뇌과학자이면서 자연과학세상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문호 박사는 “인간은 의미에 구속되고, 동물은 감각에 구속되며, 지구는 중력에 구속된다”라고 어느 강연을 통해 밝힌바 있다. 인간의 삶은 모든 현상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으로 인해 감정의 변화와 더불어 소통이라는 관계의 맥을 이어왔다. 컬러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많은 공감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벽화나 염료, 종교적 의식에 쓰이는 의복 등,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컬러는 단순히 미적 즐거움을 넘어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컬러의 쓰임새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변화하며, 보편적으로 컬러가 주는 정서적·심리적 효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력하게 작용한다. 협동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혁명으로써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등 인류 전반에 걸쳐서 인간의 내면에 밀접하게 관여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컬러의 강력한 힘을 느끼게 한다. 컬러를 통한 감정의 코드화는 이런 측면에서 매우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불안’이라는 감정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 보편적으로는 검정이나 짙은 회색, 혹은 탁한 초록색 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검정은 밤의 어둠, 즉 미지와 공포를 상징함으로써 불안의 씨앗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시야가 제한되고 경계심이 커지는 탓이다. 회색 또한 불투명함을 내포한다. 한편으로는 세련된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짙은 회색은 답답함과 숨 막힘을 연상시켜 불안감을 자극한다. 불안을 자극하는 색들은 ‘명확하지 않음’과 ‘숨김’의 코드로서 역사적·문화적으로 형상화되어 왔다.
반면 ‘안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색으로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이나 따스함이 느껴지는 색들이 선호된다. 특히 환한 노란색이나 밝은 초록색, 그리고 밝고 부드러운 하늘색이 대표적이다. 노란색은 태양의 색으로, 희망과 낙관적인 에너지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도 황금색은 권위와 풍요, 그리고 마음을 녹여 주는 따스함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밝은 초록색이나 연두색은 자연과 삶의 재생력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심리적 휴식을 제공한다. 나무와 잎사귀가 무성한 숲이나 들판을 떠올려 보면, 그 풍경 자체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늘색은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연상시키며 탁 트인 시야를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색들은 무의식적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가져다주어 안도의 정서를 배가하곤 한다.

제주시 감녕, 2024.6 IPHONE 12


‘흥분’은 주로 강렬한 원색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으로는 붉은색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붉은색은 생명력과 열정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원시 시대부터 위험 신호나 긴장 상태를 알리는 색이기도 했다. 사냥의 피, 불의 빛깔, 불타오르는 태양 등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그래서 오늘날도 붉은색은 광고나 스포츠,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색으로 활용된다.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자리에서 존재감이 도드라지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실제로 체온이 약간 올라가거나 맥박이 빨라지는 생리적 현상도 보고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색이 지닌 감정적 에너지는 분명하게 체감된다.
‘차분함’을 상징하는 색으로는 파랑, 특히 짙은 남색 계열이 자주 꼽힌다. 파란색은 깊은 바다나 드넓은 하늘, 혹은 밤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때의 밤은 검은색과는 달리 차갑지만 투명한 느낌을 동반한다. 고요한 바다의 이미지는 무한한 수평선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유도한다. 반면 너무 어두운 파랑은 우울감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적당히 깊고 맑은 파랑 계열이 심신을 진정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사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되어 왔다.
이렇듯 컬러의 감정 코드는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형성된 상징 체계와 함께, 인간의 심리·생리적 반응에 기초해 다층적으로 작동한다. 고대 이집트인이 파란색을 ‘영적인 깨달음’과 연결 지었던 일이나, 중국 황실이 황금을 권위의 색으로 사용한 예, 혹은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 세계를 상징하던 검정 등은 각 시대와 사회가 색에 담아낸 상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한 상징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정을 자극해 왔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색의 배치와 톤은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또한 현대에는 색채 심리를 바탕으로 한 마케팅과 디자인, 도시 계획 등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불안, 안도, 흥분, 차분함이라는 네 감정만 놓고 보더라도, 색채는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때로는 붉은색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고, 선명한 파랑이 극적인 흥분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각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 온 상징과 신체적 반응을 토대로 할 때, 대체로 어떤 색이 불안을 강화하거나 안정을 도모하며, 흥분을 고조시키거나 차분함을 주는지에 대한 ‘합의된 감정 코드’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색은 빛의 파장에 불과하나, 그 파장이 우리의 망막을 자극하고 뇌가 이를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한낱 물리적 정보를 넘어서는 감정의 스펙트럼과 마주하게 된다. 컬러의 감정 코드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내면에 내재된 감정의 지도를 재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색을 단순한 ‘보이는 것’ 이상의 통로로 삼아, 타인과의 소통을 넓히고 자기성찰의 기회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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