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을 삶의 대명제다.
정해진 성공의 방정식을 풀어내느라 오늘도 해야 할 일에만 매달리며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떻게 재미있게 살 것인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자신만의 고유한 시선을 가지고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산다면 가능하다. 또한 좋아하는 재미를 즐기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더 재밌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일상 곳곳에 있으니 함께 누려보자.”
블렌딩을 통한 고급 와인인 슈퍼 투스카나로 거듭난 티냐넬로 와인
[시사의창 2025년 3월호=서병철 작가] 나는 빵을 좋아한다.
집 앞 빵집에서 식빵을 사서 즐겨 먹는다. 식빵의 매력은 단순하다. 갓 나온 그대로 먹으면 부드러운 목 넘김이 좋고, 살짝 굽기만 해도 겉바속촉(겉은 바싹, 속은 촉촉) 느낌이 나서 좋다. 물론 잼을 바르거나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나는 식빵 그 자체의 맛을 느끼기 위해 올리브유만 찍어서 먹곤 한다. 빵집에 가면 식빵 옆에는 다양한 빵들이 손님에게 선택받기 위해 자신을 뽐내고 있다. 그중 프랑스 여행 중 작은 동네 빵집에서 아침에 먹은 크루아상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절친이 되었다. 크루아상 빵도 아몬드, 크림치즈, 스모어, 티라미수, 슈크림, 앙버터 등 수십 가지가 있다. 나는 크루아상 플레인을 고집한다. 다른 재료가 본래의 맛을 방해받는 것이 싫어서다. ‘플레인(Plain)’이란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음식이나 음료의 본래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켜켜이 쌓인 고유의 크루아상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행복하다.
나는 와인도 좋아한다.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이탈리아, 프랑스 와이너리 여행 중 직접 보고 시음하고 구매하면서 와인과 좀 더 친해졌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 포도 품종인 네비올로, 샤르도네, 베르나차 등을 100%로 만들기도 하나, 요즘에는 블렌딩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블렌딩’이란 커피나 위스키 같은 음료의 다양한 맛을 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원료를 뒤섞어서 한데 합하는 일을 말한다. 포도 품종 선택과 혼합하는 비율에 따라서 와인의 맛이 크게 달라지고 가격 차이도 크게 벌어진다.
이탈리아는 자국의 고유 품종 포도를 사용하는 와인에 대해서만 상위 등급을 주는 나라였다. 이러한 보수적인 규정은 품질개선을 저해하고, 이탈리아 와인 시장의 침체를 가져왔다. 이에 토스카나 지역에서 생산되지만, 보르도 포도 품종을 블렌딩하고 프랑스식 제조법인 프랑스식 오크통을 도입하는 등 와인 제조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을 ‘슈퍼 투스카나(Super Toscana)’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이러한 블렌딩 전략으로 슈퍼 투스카나는 고급 와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대표적인 슈퍼 투스카나는 티냐넬로,사시카이아, 솔라이아, 오르넬라이아 등이 있다.
그중 하나인 티냐넬로(Tignanello)에 매료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티냐넬로는 토스카나의 토착 포도 품종인 산지오베제(80%)와 카베르네 소비뇽(15%), 카베르네 프랑(5%)을 섞어 프랑스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와인이다. 가격이 비싸기에 마시기 부담스러운 와인인데, 현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다크 초코렛, 버섯, 흙 향이 먼저 나를 압도했다. 여운도 길게 남았다. 아! 이런 와인을 슈퍼 투스카나라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시니 더욱 행복했다.
플레인과 블렌딩은 음식에만 국한된 것일까.
사람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가 들면 고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간관계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학생 시절이 끝나면 누구나 사회에 진출하게 되고 회사, 사업, 자영업, 프리랜서 등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자연스럽게 섞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갈등이 생기면서 결별하기도 한다. 휴대전화 연락처는 세월이 지나면서 늘어나지만 한 해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과연 지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로 만났기에 서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더 쉽게 멀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를 늘리는 것보다 오히려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많아지고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도 관리 차원에서 아니 외로움을 탈피하려고 만나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저도 그게 맞다고 행동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후 나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좀 더 깊게 고민해 보았다. 내 고유의 향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하에 자신의 맛을 찾을 시도조차 못 한 것이 맞지 않을까.
먼저 스스로 나의 맛을 내보자. 내 고유의 맛을 찾고 먼저 독립적인 존재로 단단해지자. 홀로서기 후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향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하고 섞이지는 말자. 와인을 블렌딩할 때 어떤 좋은 품종을 몇 % 섞는 것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섞이면서 즐거움을 찾으면 인간관계는 확대되고 깊어질 수도 있다.
순수한 자신만의 맛인 플레인을 찾은 후, 좋은 사람들과 블렌딩한다면 좀 더 행복한 인간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