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경기를 관전하는 허버트 강과 송대관(우측)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7일은 국민가수 송대관 님이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예정된 시간표대로 우리 곁을 떠나간 안타까운 날이다. 반세기를 전후하여 송대관 님께서 복싱 경기장을 찾아 전 동양 페더급 챔피언 허버트강과 찍힌 빛바랜 사진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70년대 한국프로복싱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그 시절엔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임성훈, 조용필, 구봉서, 배삼용, 임채무, 윤미라, 이은하 같은 저명한 스타급 방송인들이 심심치 않게 링사이드에 앉아 경기를 참관하는 모습을 자주 현장에서 목도(目睹)할 수 있었다.
수년 전 어느 날 필자는 송대관 님과 포즈를 취한 허버트강(강춘식) 챔프를 우연히 경기장에서 만나 가수 송대관 님과 함께 복싱 경기를 관전한 것에 대한 소회를 묻자 허버트강은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늘의 별이 된 송대관 님보다 호적상 3살 어린 허버트강은 1964년 8월 프로에 전향, 1977년 10월 현역에서 은퇴를 할 때까지 13년간 현역에서 활동하면서 69전 39승 12무 18패(23KO)를 기록하면서 동양 페더급 정상에 오른 강타자였다.
김금렬회장(좌측)과 시사의창 김성민 발행인(우측)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해 경기장에서 호텔 인트라다 이천 박치순 회장의 소개로 만나 소중한 인연을 맺은 <시사의 창> 김성민 발행인의 전화였다. 내용인즉 필자가 연재하는 스포츠 칼럼 글에 깊은 공감을 한 어느 사업가가 필자와 식사를 하자는 발언(發言)이었다. 흔쾌히 승락하고 지난 목요일 약속된 시간에 길동 4거리에 위치한 ‘진도아리랑’이란 식당에서 3명이 만나 만찬을 함께 했다. 식사를 요청한 주인공은 글로벌 앤디그룹 건설사 김금렬 회장이었다. 김성민 발행인의 가교역할로 인사를 올리는 순간 직감적으로 가수 태진아의 <옥경이>란 노래 구절이 생각났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그분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었다.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도 정중하게 물어보니 1954년 전북 고창 출신의 건설업에 종사하는 김금렬 회장이었다.
서울 주택공사 이사 시절의 김금렬 회장(우측)
대화가 무르익어가면서 이분이 90년대 초반 KBC (한국권투위원회)구천서 회장 재임 당시 수석 부회장을 역임한 복싱계 관계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묻자 송파구에서 35년을 생활한 토박이인 김금렬 회장은 2018년 송파구청장 선거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진 전력을 포함, 서울시 농수산 식품 공사 이사, 대한체육회 이사, 서울주택공사 이사 등 각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요직(要職)을 맡으면서 사회활동을 한 저명인사였다.
더욱더 중요한 사실은 이분이 배문고에 재학 중인 1972년 동대문종합시장 6층 <중산체육관>에 입관, 복싱을 수련한 전도유망(前途有望)한 복서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러한 이력 때문에 김 회장이 필자의 칼럼에 관심을 갖고 애독한 것이다. 김금렬 회장은 이곳에서 복싱을 수련하면서 당시 비슷한 체급의 밴텀급 황철순, 페더급의 유종만, 라이트급 김태호 선수와 대결을 위해 그들의 장단점을 연구 분석하면서 훈련의 강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뜻하지 않은 치명적인 무릎 부상으로 안타깝게 중도에 복싱을 접었다. 대화 도중 김 회장이 복싱 폼을 잡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캐치(Catch)한 필자는 이분이 복싱에 매우 숙련된 전직 복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김 회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문득 중산체육관을 설립한 소강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의 화려한 업적을 떠올렸다.
이분은 1964년 대한체육회장에 취임 1971년까지 한국체육계를 선도 근대체육의 아버지로 불렸던 분이다. 소강은 1964년 일본에서 열린 동경올림픽에서 일본이 우리와 같은 신체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계체조는 물론이고 배구팀 그리고 레슬링과 복싱에서 세계 제패의 꿈을 실현하는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민관식 회장은 1965년 중산 복싱체육관을 설립, 이 체육관에서 정영근, 고생근, 이석운, 한창덕, 유장호, 강흥원, 안달호, 백인철 등 정상급 복서들이 탄생했다.
이듬해인 1966년 무교동 체육회관과 불암산 기슭 명당자리에 <태릉 선수촌>을 건립 이를 발판으로 한국의 스포츠 위상을 일취월장(日就月將) 상전벽해(桑田碧海)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큼 격상시키는 데 최고의 공훈(功勳)을 했다.
글로벌 앤디그룹 김금렬 회장
한편 김 회장은 복싱을 접은 후 대학에서 토목업을 전공한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특수부대에 입대해 복무를 마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인생 2막을 펼친다. 그는 필자에게 복싱과 군 생활을 통해 얻었던 강철처럼 강하고 생고무처럼 질긴 투혼으로 높고 험하기만 한 사회의 두터운 장벽을 하나씩 허물면서 사업가로 입지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뼛속에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는 매화의 향기를 얻을 수 없다는 소중한 진리를 몸소 실천 실증 시킨 김금렬 회장, 그가 복서 출신의 사업가란 점에서 더욱더 자랑스럽다. 인내(忍耐)란 결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에 더해서 본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절대 굽히지 않는 의지도 포함될 것이다. 끝으로 고희(古稀)를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김금렬 회장의 무궁한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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