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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 2025년 2월호=김동식 칼럼니스트] 마음의 구조를 조금 더 면밀히 새겨 부처님의 말씀<원각경전>을 통하여 보살펴 보고자 합니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몸과 마음이 다 환상의 때이니, 때가 아주 없어지면 시방세계가 맑고 깨끗하니라.
선남자여.
비유하자면 맑고 깨끗한 보배 구슬에서 영롱한 오색이 빛이 방향을 따라 제각기 나타나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 보배구슬에 실제로 오색이 있는 줄 아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맑고 깨끗한 성품인 원각이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 종류를 따라 제각기 응할 때에 어리석은 사람이 맑고 깨끗한 원각에 이러한 몸과 마음의 모습이 실제로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그와 같으니라.” <원각경전>
우리의 마음도 오색이 영롱한 보배구슬과 같고, 부처님의 마음도 오색이 영롱한 보배구슬과 같습니다. 그럼 부처님과 중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원각경>에서 하신 말씀처럼 그 영롱한 오색을 보배구슬의 속성으로 보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입니다. 다양한 빛깔을 보배구슬 자체의 속성으로 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상상해 보세요. 찬란한 그 빛은 무지개를 닮았습니다. 다이아몬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파란빛이 보이지만 다이아몬드 속에 파란색이 있습니까? 노란빛이 보이지만 다이아몬드 속에 노란색이 있습니까? 다이아몬드는 그저 인연 따라 다양한 색깔을 드러낼 뿐입니다.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어느 것도 그 속에는 없습니다. 만약 다이아몬드 속에 그런 색깔이 있다고 여긴다면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분명 기쁘고, 슬프고, 억울하고, 통쾌하고, 답답하고, 편안합니다. 분명 미워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합니다. 분명 옳다고 생각하고 그르다고 생각하고, 훌륭하다 생각하고,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온갖 감정과 생각이 머무는 곳은 없습니다. 마음은 그저 인연 따라 온갖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뿐입니다. 분명히 느끼고 생각하지만 그 실체는 없습니다. 만약 감정가 생각이 안에 있다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여긴다면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기뻐”라고 말하고, “나는 슬퍼”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그 기쁨과 슬픔이 곧 나의 속성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건 착각입니다. 마치 파란색이나 붉은색을 보배구슬의 속성으로 착각하듯이 말입니다. 보배구슬을 깨뜨려보아도 거기에 파란색이나 붉은색은 없습니다. 이처럼 착각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기에 어리석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픈 나’ ‘괴로운 나’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착각입니다. 그런 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연 따라 파란색이나 붉은색이 나타나지만 실제로 ‘파란색 구슬’ 붉은 구슬‘은 존재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환상이라 하고, 허깨비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본래 맑고 깨끗한 보배구슬과 같다는 것을 알면 그가 곧 부처님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우리의 마음을 파란색 구슬이나 붉은색 구슬처럼 여기면 그가 곧 중생입니다.
이런 중생의 어리석음, 착각은 고집을 동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눈에는 분명히 파란색 구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그건 파란색 구슬이 아니야. 그 구슬은 본래 맑고 깨끗해”라고 말해 주어도 믿지를 않습니다.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역정을 내면서 따집니다. “너는 눈도 없냐?” 이런 중생의 고집은 다툼을 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은 구슬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옆 사람이 “저건 붉은색 구슬이야”라고 하면 콧방귀를 뀌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눈이 삐었냐?” 착각은 고집을 낳고, 고집은 다툼을 낳고, 다툼은 눈물과 상처를 남깁니다. 이것이 중생들의 삶입니다. 눈물과 상처만 가득한 중생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본래 맑고 깨끗한 보배구슬과 같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면 됩니다. 아는 사람은 고집부리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는 사람은 다투지 않고, 다투지 않는 사람은 눈물과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삶입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생각과 감정에 집착 할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바탕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늘을 한번 바라보세요. 파란 바탕 위로 수많은 구름들이 흘러갑니다. 뭉게구름, 양떼구름, 또 때로는 무지개도 뜹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잠시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갑니다. 하지만 그 바탕인 하늘은 늘 맑고 푸릅니다. 먹구름이 짙어도 하늘은 잿빛에 물들지 않고, 무지개가 떠도 하늘은 오색으로 물들지 않습니다. 하늘은 본래 맑고 푸를 뿐입니다. 마음의 바탕도 그와 같습니다.
바탕인 하늘에 주목하는 삶은 안정되고, 평온하고, 넉넉하고, 너그럽습니다. 그 맑고 푸름은 손상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끝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구름과 무지개에 주목하는 사람은 한번 웃었다 한번 울었다 하는 불안정한 삶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주목하시겠습니까?
생겼다 사라지는 구름과 무지개를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은 원망과 슬픔에서 헤어날 길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탕인 하늘에 주목하는 사람은 기적처럼 찾아와 준 순간에 감사하고, 가뭇없이 사라짐을 담담히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어디에 주목하시겠습니까?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보배구슬을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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