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충재 챔프와 가수 남진 선생(우측)
[시사의창=김성민 기자] 행사장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친형제처럼 지내면서 다정한 모습을 선보인 동양 웰터급 챔피언을 지낸 황충재 챔프와 가수 남진 선생 두 사람을 마주하곤 한다. 1958년 전남 광양 태생의 황충재 챔프와 1945년 전남 목포 출신의 남진 선생은 오래 전부터 의기투합 분당에 있는 교회에 같이 다니면서 우애를 다진 친숙한 관계다.
난 이분들이 서로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결정체가 곧 운명(運命)이였으리라. 황충재는 영산포상고 3학년 때인 1977년 제58회 전국체전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주목을 받은 유망주였다, 그해 겨울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다. 당시 웰터급 국가대표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한 김주석이었고 그의 평가전 상대는 상비군인 정용석(육군)이었다.
황충재 챔프와 조철제 원로회 회장(우측)
그러나 경기를 앞두고 정용석이 펑크를 내자 대한복싱협회 조철제 전무의 추천으로 무명의 황충재가 전격 천거(薦擧)되어 평가전을 치른다. 여담이지만 1973년부터 대한복싱협회 전무로 근무한 올해 구순인 조철제 전무는 70년대 한국 아마복싱이 킹스컵대회에서 3연패를 달성시키는 등 복싱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위대한 인물이다.
78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황충재 황철순 김인창(좌측부터)
한편 이 대결에서 급조된 대타로 출전한 황충재가 철옹성처럼 견고한 아성을 구축한 김주석에게 한 차례 다운을 뺏는 선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고 국가대표로 전격 발탁된다. 1978년 그해 겨울 태국 방콕에서 제8회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역사적인 12월 15일 웰터급의 황충재는 대망의 준결승전을 갖는다. 상대는 말레이시아의 마심빈 유소프였다. 공이 울리자 20살의 혈기왕성한 황충재는 곧바로 상대에게 접근, 레프트 선제타를 날린다. 이에 상대가 오른쪽으로 피하면서 순간적으로 왼쪽 안면이 호박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노출된다.
곧바로 황충재는 시야에 포착된 상대의 얼굴에 회심의 라이트 일격을 날린다. 상대는 총 맞은 노루처럼 허물어지면서 그것으로 경기는 끝났다. 1회 황충재의 KO승이었다. 공식기록은 1회 13초로 아시안게임 복싱 사상 최단시간 KO승이었다. 카운터를 제외하면 불과 3초 만에 KO로 끝난 경기라 그 누구도 이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이튿날 벌어진 결승전에서 황충재는 태국의 토타산 선수에게 1회 불의의 헤드 버팅으로 눈이 찢어지는 심한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는 수사불패(雖死不敗)의 상무 정신으로 무장 적지에서 KO승보다 힘들다는 판정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런 전력을 보유한 황충재 챔프와의 필자의 인연은 1990년 6월 필자가 소속된 88 프로모션 체육관에 황충재 챔프가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충재
황충재는 1979년 4월 프로에 전향 동양 웰터급 13차 방어에 성공한 후 부침(浮沈)을 겪다가 현역에서 은퇴를 한 후 KBS 방송국에서 복싱 해설위원으로 활약할 때였다. 황충재는 필자와 담화를 나누던 중 "내가 지금 청담동에서 디스코텍인 <젠마> 라는 업소를 운영하면서 무척 분주하다. 그러니 자네가 수고스럽더라도 내가 방송 해설을 할 때 부족한 자료를 요청하면 작성해서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난 흔쾌히 허락했다.
당시 황충재는 업소에서 하루에 5백만 원씩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크게 호황을 누릴 때였다. 그때 나의 한 달 봉급이 25만 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의 금액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35년이란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2025년 3월 절치부심한 황충재는 송재철 작곡, 원정희 작사의 신곡 <돈 들어온다>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노래는 지난해 7월 <아침마당>에서 시청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적이 있는 곡이다. 황충재는 필자에게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3번의 기회는 찾아온다고 말하면서 “나에겐 현역시절 웰터급의 지존 레너드와 대결이 무산되면서 파이트머니 7억이 사라졌고 업소를 운영하면서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월 5천만 원씩 벌었지만 이제 모든 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그는 “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 나에겐 분명히 좋은 기회가 한 번은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지난번처럼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절대로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생 3막에서 마지막 삶의 승부구를 던진 의리의 사나이 황충재 챔프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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