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국가 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통해 폭동을 일으킨 혐의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이첩하고 기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월 3일 이른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51일 만이자, 윤 대통령이 구속된 지 나흘 만에 이루어진 조치로, 공수처는 대통령이 수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형사사법 절차의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웠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단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로서 국가적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체포 이후에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수사를 시도하기보다는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아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사건의 진상 규명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직접 기소권이 없어, 사건을 검찰에 송부함으로써 기소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강조했다.

공수처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투입하려고 했던 병력의 규모와 비상계엄 확대 방안을 논의한 정황 등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증거를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다. 공수처는 경찰 국가수사본부와 국방부 조사본부와 함께 공조 체제를 구축하여 주요 관련자들을 조사했으며, 검찰과도 긴밀히 협력해 수사 초기부터 다량의 증거를 분석해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총 69권, 약 3만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해 전자 방식으로, 그리고 실물로 검찰에 송부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2월 16일 윤 대통령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을 통보했으나, 윤 대통령은 다섯 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에 모두 불응했다. 이에 공수처는 서울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지난 15일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 체포 당일 10시간 40분간의 조사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으로, 발동 요건을 법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만 남긴 채 조사에 응하지 않았으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조사 기록에 서명하거나 날인하지 않았다.

이재승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공수처에서 윤석열 대통령 수사와 관련된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체포 이후에도 공수처는 서울구치소에서 윤 대통령을 조사하려 했으나, 윤 대통령이 변호인 접견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준비 등을 이유로 거부하면서 조사는 번번이 무산됐다. 또한, 공수처는 대통령실과 관저의 비화폰 서버 기록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경호처의 경호구역 제한 사유로 인해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결국 공수처는 윤 대통령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대면 조사를 한 차례도 진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건을 검찰로 이첩하게 되었으며, 이는 구속기간 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시한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체포 기간을 포함한 최대 20일의 구속기간을 검찰과 열흘씩 나누어 사용하기로 협의했으며, 구속기간의 계산법 논란 속에서 실기하여 윤 대통령이 석방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송부 시기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공수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수본 및 국방부 조사본부의 공조 없이는 오늘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어려웠다"며 협력 기관들에 감사를 표했다. 또한, 공수처는 여전히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며, 관련된 모든 피의자들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후 윤 대통령의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할 것으로 보이며, 추가적인 대면 조사를 시도한 뒤 다음 달 5일 전후로 구속기소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주목을 끌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과 관련해 이날 재판에서는 국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가림막 설치나 윤 대통령 퇴정 등 ‘증인 분리’ 조치 없이 심리가 진행됐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재판에 ‘1호 증인’으로 출석해 검정색 목티와 정장 재킷 차림으로 대심판정에 입장했다. 이미 입정해 있던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이 입장하는 순간부터 눈으로 따라가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김 전 장관이 선서를 할 때도 윤 대통령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김 전 장관 쪽을 주시했다.

윤 대통령은 버건디색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대심판정에 들어섰으며, 입정 후 변호인단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서류를 검토하며 증인신문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관이 피청구인 본인 출석 여부를 확인하자 윤 대통령은 짧게 “네”라고 답하며 재판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국회 측은 증인들의 자유롭고 진실한 증언을 위해 윤 대통령의 퇴정이나 증인과의 물리적 차단을 요청했으나 헌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직접적인 시선이 닿는 상황에서 증언을 시작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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