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소순일기자] 대한이 소한의 집에 몸 녹이러 가던 날, 남원의 산동면 대상리에 자리한 귀정사지로 발길을 옮겼다.

귀정사 전경


이곳은 백제 시대부터 이어져 온 역사를 간직한 사찰의 터로, 조용하면서도 고요한 풍경 속에서 한때 찬란했던 사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귀정사의 역사는 515년(백제 무령왕 1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승 현오국사에 의해 창건된 이 사찰은 처음 ‘만행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사찰이 위치했던 만행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귀정사 좌, 觀音殿(관음전), 우, 寶光殿(보광전)


그러나 이후 백제 왕의 방문과 고승의 설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귀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왕은 설법에 감명받아 3일간 사찰에 머물렀고, 이곳에서 국정을 살폈다. 당시의 감동은 사찰의 이름뿐 아니라 주변 지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만행산은 천황봉으로, 인근 마을은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비유해 요동과 당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귀정사 寶光殿(보광전) 내부

귀정사 觀音殿(관음전), 우, 寶光殿(보광전)



귀정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남원의 중심 사찰로 기능하며 여러 차례 중창과 복구를 거쳤다.

특히 1468년(세조 14) 낙은선사가 중수한 시기에는 사찰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귀정사는 불당, 승당, 삼광전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었으며, 승려 수는 200명을 넘었다.

귀정사 요사채


하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큰 피해를 입었고, 한국전쟁 중 군사 작전으로 인해 소실되며 폐허로 남게 되었다.

현재 귀정사지는 사찰의 옛 모습을 완전히 복구하지 못했지만, 1968년 유정동 주지의 노력으로 대웅전과 칠성각, 승당 등이 재건되며 역사적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귀정사 梵鐘閣(범종각)


귀정사는 1985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문화재청의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며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이와 같은 지정은 귀정사지가 남원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징적 장소임을 보여준다.

산동면 대상리 2차선, 귀정사 이정표


현장을 걸으며 백제 왕이 머물렀던 이곳에서 한때 울려 퍼졌을 고승의 설법과 수많은 승려들의 수행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귀정사지 주변을 감싸는 천황봉과 요동, 당동 등의 지명은 여전히 사찰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과 복구되지 못한 부분들은 귀정사지를 지켜온 시간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구정을 앞둔 시점에서 찾아간 귀정사지에는 고요한 겨울의 정취가 가득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품은 이곳은 오늘날에도 남원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귀정사 입구


시간의 무게를 간직한 귀정사지는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백제부터 조선까지 이어져 온 남원의 정신적 뿌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시사의창 소순일기자 antlaan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