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스르는 발걸음… 비홍산성으로

삼국시대부터 전해진 남원의 산성, 비홍산성을 찾아서

소순일 전북동부취재본부장 승인 2025.01.13 17:44 의견 0

[시사의창=소순일기자] 바람이 차갑다. 에일듯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비홍재 산줄기를 따라 비홍산성을 찾았다.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비홍산성'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내동리에 위치한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의 요새다.

비홍재와 곰재를 잇는 산줄기에 자리 잡고 있는 비홍산성은 한적한 겨울 풍경 속에서도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산성은 주생면과 대강면의 경계인 비홍치 정상에서 시작된다.

남원에서 순창으로 가는 비홍재 정상
비홍산성을 가려면 정상에서 좌회전하여 산길로 들어서야 한다.


산 능선을 따라 문덕봉 방향으로 약 500m 떨어진 곳까지 이어지는 비홍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축조 방식이 돋보인다.

성벽은 적당히 치석한 가공석으로 내·외면을 맞추고, 안쪽에는 할석을 채운 내탁법으로 쌓아 올렸다.

남아 있는 성벽 중 일부는 6m 정도의 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많이 허물어진 상태였다.

외곽 성벽의 경계는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무너져 있었고, 남아 있는 성벽도 구멍이 뚫린 듯 허물어져 옛날의 위용을 상상하게 했다.

산성을 따라 걷다 보면 성 내부에 남아 있는 망루터와 건물 유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이곳이 단순한 방어 기지가 아니라, 장기적인 거주와 군사 활동이 이루어진 공간임을 짐작케 한다.

드론으로 본 비홍산성


성 안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은 삼국시대부터 이곳이 활용되었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들이다.

『용성지(龍城誌)』에는 이 산성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비홍산성은 과거에 ‘고성(姑城)’으로 불렸으며, 성 내부에는 감천(甘泉)이 솟아나는 우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순창 양씨 집안의 한 할머니가 고려 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치마폭으로 돌을 운반해 성을 쌓았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로 인해 ‘할미성’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군량미를 보관했던 창고의 이름에서 비롯된 ‘합미성(合米城)’이라는 명칭이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다.

비홍산성 성터


비홍산성은 2000년 12월 29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4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그러나 아직 이 산성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조와 성격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홍산성은 삼국시대 남원 지역의 다른 산성들, 예를 들어 척문리 산성, 교룡 산성, 아막성과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한적한 겨울 산길을 따라 비홍산성을 걸으며, 나는 시간을 거슬러 고대의 사람들과 만나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허물어져 구멍이 난 비홍산성 성벽

뒤쪽에서 바라본 비홍산성



허물어진 성벽과 구멍 난 흔적들은 그 자체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산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눈에 보이는 유적은 없지만,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삼국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남원의 비홍산성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유적이다.

비록 그 위용은 세월 속에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들은 이곳이 역사의 한 페이지였음을 말해준다.

비홍산성에서 바라본 순창방면


오늘날에도 이 산성은 고요한 자연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서, 나는 고대의 숨결과 마주하며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을 담아 간다.

시사의창 소순일기자 antlaandj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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