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7일 저녁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위한 대규모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렸다.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과 국회의사당역은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무정차 통과를 했으나 오후 5시 이후 다시 해당 역에 정차했다. 오후 6시에 9호선 여의도역에 도착 후 밖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에 배치된 경찰관들에게 국회의사당 방면으로 나가려면 몇 번 출구로 나야야 하는지 묻는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부모들의 모습, 노부부, 10대로 보이는 학생들, 20~30대 청년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렇게 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함성소리가 여의도 일대를 가득 메웠다. 주최측 추산 100만 명이 운집했다.

국회 앞 범국민촛불대행진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정용일 기자)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100만 민초들의 함성소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손이 시려울 정도의 쌀쌀한 날씨는 이날 집회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외침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바위에 올라 '윤석열 탄핵'을 목청껏 외치자 그 앞에 모인 수백여명의 청년들이 따라 외쳤다. 그 앞을 지나던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가 "야...너희들 정말 멋지다. 너희들이 바로 이 나라의 미래이며 희망이야."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면서 "사랑한다 이녀석들아"라고 재차 외치자 주변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윤석열 탄핵'을 외치던 한 40대 중년 여성은 다소 울먹거리는 말투로 "너희같은 멋진 청년들이 있기에 이 나라가 아직은 살만하다"며 더욱 큰 목소리로 탄핵을 외쳤다.

국회 앞 범국민촛불대행진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정용일 기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지켜보려는 시민들로 가득 찼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퇴장으로 표결이 진행되지 못하자 현장에는 실망과 분노, 그리고 결연한 의지가 뒤섞인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키며 “탄핵”을 외쳤고,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는 본회의 상황을 주시하면서 여당 의원들의 복귀를 촉구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난 시민들은 표결이 지연되는 상황에 대해 깊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서울에서 온 김영석(55) 씨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참담한 심정이다”라며, “지금 이대로는 절대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용(63) 씨는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목소리보다 자신의 이익과 정당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어 참으로 암담하다”며,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고 한탄했다.

기온이 영하에 가까워지는 추위 속에서도 시민들은 두꺼운 외투와 모자, 장갑으로 몸을 감싸며 촛불을 들고 국회 주변을 메웠다. 특히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을 진행하며 국민의힘 의원 108명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자, 시민들은 그 이름을 따라 외치며 여당 의원들의 복귀를 강력히 촉구했다.민주노총 지도부와 조합원들은 국회 서편을 중심으로 주변을 에워싸고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결국 집회 참가자들이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표결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접한 집회 참가자들은 큰 한숨을 내쉬며 윤석열 탄핵을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이날 오후 본회의에 상정된 윤 대통령 탄핵안에는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만 표결에 참여했다. 그러나 의결 정족수 부족에 투표가 성립되지 않으면서 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탄핵안은 자동 폐기됐다. 탄핵안은 재적의원(300명) 중 3분의 2인 200명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표결에는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 의원 192명, 국민의힘 안철수·김상욱·김예지 의원 등 195명만 참석했다.

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 제의안이 부결된 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에 앞서 윤 대통령 탄핵안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부결 당론'을 확정했다. 국민의힘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표결에 참석한 뒤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전 단체 퇴장하면서 탄핵안은 표결에 부쳐지기도 전에 부결이 확실시됐다.

안 의원 등 여당 의원 3명은 당의 방침과 달리 본인들의 소신에 따라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의 경우 모두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탄핵 청구 기각으로 업무에 복귀했고,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野) 6당이 공동 발의한 이번 탄핵안은 윤 대통령의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촉매제가 됐다. 이들은 탄핵안에서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채 비상계엄을 발령'한 것과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정당 활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 등을 탄핵소추 사유로 꼽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국회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직후,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국민의 마음과 대통령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조했다.

한 총리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현 상황이 조속히 수습되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일상이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국무총리로서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모든 국무위원과 공직자들에게 “국민의 일상이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각자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달라”며, 각 부처가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당부했다.

특히 경제와 민생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 한 총리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이주호 사회부총리에게 “현 상황이 경제와 민생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부처와 긴밀히 협력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겨달라”고 지시하며 정부의 민생 안정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번 입장문은 탄핵안 표결 불발 이후 국정 불안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상황 수습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 앞 범국민촛불대행진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정용일 기자)
국회 앞 범국민촛불대행진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 장소의 어느 도로가에서 한 오뎅차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탄핵오뎅'이란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사진=정용일 기자)


한편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이날 촛불 집회는 전통적인 항의 방식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문화적 요소를 결합한 축제 같은 분위기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AFP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이날 시위에 대해 K-팝 음악, 화려한 소품, 기발한 깃발 문구 등 한국만의 독특한 시위 문화를 조명하며 상세히 보도했다.

AFP 통신은 “윤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의원들을 체포하며 시민의 지배를 중단시키려 한 사건 이후 서울 중심부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시위가 이어졌다”며, 이 과정에서 에스파의 *'위플래시'*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같은 K-팝 음악이 울려 퍼지고, 참가자들이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댄스파티를 방불케 했다고 전했다. 또한, 일부 참가자들이 “탄핵, 탄핵, 윤석열!” 같은 구호를 외치는 한편, 크리스마스 캐럴 *'펠리스 나비다드'*를 개사한 노래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들로 집회 분위기를 밝고 유쾌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NYT는 국회 주변 도로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과 음향 장비, 연사와 공연자들이 이끄는 군중의 모습에서 대규모 집회의 생동감을 포착하며, 특히 “시위대는 강추위 속에서도 담요를 두르고 손팻말을 들며 멀리서부터 음악과 구호가 들릴 정도로 열띤 분위기를 유지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집회에 나온 한 부모가 “아들이 다시 계엄령이 선포된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점도 강조했다.

특히 외신들은 형형색색의 깃발과 기발한 문구가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나는 스파게티 몬스터 연맹', '잠들지 못하는 편집자들', '꽃 심기 클럽' 등 유머러스한 깃발들이 행렬을 이뤘으며, 일부 시위대는 단두대 모형과 바게트 같은 소품을 활용해 프랑스 시위 문화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번 집회가 단순히 정치적 항의의 장을 넘어 대중문화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사회적 표현의 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하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 집회와의 연속성을 주목했다. NYT는 “국회로 이어지는 지하철역 일부가 폐쇄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리며, 추운 날씨에도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고 보도하며, 이러한 집회가 한국 시민사회가 보여주는 민주적 참여의 상징적 장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한 참가자가 윤석열 탄핵과 김건희 구속이 스여진 종이를 가방에 붙이고 이동하고 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 표결이 무산됨으로 인해 당장은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으나, 사실상 국정운영에 대한 동력을 상실한 윤 대통령 앞에 펼쳐질 가시밭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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