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처음 사용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기능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않아 몇 번 써보고 사용을 중단했다. 그 이후에 우연히 그 프로그램을 다시 사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좋아질 수 있는지 감탄할 정도로 기능이 대폭 개선되어 요즘 들어 자주 사용하면서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세삼 실감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 기준이나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대체로 우리가 기술 발전의 변곡점으로 꼽는 대표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는 아마 1980년 초반의 퍼스널 컴퓨터(PC), 1990년 중반의 인터넷(Internet), 2000년대 후반의 스마트폰(Smartphone), 그리고 최근의 인공지능(AI) 등으로 간추려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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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 2024년 12월호=박기하 변리사] 1981년 IBM은 IBM PC 5150을 출시하면서 PC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당시에 IBM의 경쟁자들은 이미 시장에 존재하였지만, IBM은 PC에 표준화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높은 위치에 자리하였다.
그러나 IBM은 컴퓨터의 운영체제(OS)를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당시에 작은 회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계약을 체결하여 MS-DOS를 도입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은 향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결국 IBM은 2004년 PC 사업부서를 레노버(Lenovo)에 매각하면서 PC 시장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1995년은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해로서 특히 넷스케이프(Netscape)의 IPO(기업공개)는 인터넷 혁명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Navigator)는 초기의 복잡했던 인터넷 인터페이스를 직관적인 브라우저 형태로 변경하여 누구나 손쉽게 웹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의 90%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넷스케이프는 인터넷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익모델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고,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우 운영체제에 기본으로 제공하게 되면서 웹 브라우저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AOL(America Online)에 인수되면서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의 이 시기에는 닷컴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대부분 마찬가지로 수익모델의 부재와 과도한 투자로 몰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아마존(Amazon)과 구글(Google) 같은 기업들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인터넷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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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07년 애플(Apple)이 아이폰(IPhone)을 출시하면서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는 2009년 경부터 본격적인 대중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아이폰은 단순한 휴대전화를 넘어서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현재까지도 큰 의미를 가진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앱스토어를 통합하여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였고, 개발자들에게 앱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이에 구글은 안드로이드(Android) 운영체제를 통해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하였고, 안드로이드는 다양한 제조업체에서 자유롭게 사용되어 애플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여기서 노키아(Nokia)나 블랙베리(Blackberry)와 같은 기존의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스마트폰의 변화를 읽지 못하며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는 그들이 하드웨어 기술에만 의존하였고, 소프트웨어와 생태계가 핵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은 블록체인,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이 기술들도 단순한 도구의 변화를 넘어 기존의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넷스케이프와 블랙베리의 몰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적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혁신의 파도를 타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를 넘어 시장과 사용자, 그리고 생태계를 통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위와 같은 기술발전의 변곡점 중에서도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단연 스마트폰을 꼽을 수 있다. 요즘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들어 바라보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중 많은 시간이 스마트폰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 카페에서 모인 친구들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각자의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풍경과, 또 함께 있어도 스마트폰 메시지로 얘기하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지만 거대한 다른 세상에 들어감으로써 스마트폰에서 보는 세상이 보다 우리에게 현실적이며 스마트폰을 통해 진실을 찾으려 할 때도 많다. 이로써 우리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조직 체계 속에서 소외감을 더욱 느끼게 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그리고 인공지능에 의해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보았던 정보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보다 새로운 정보가 또 나타난다.
크란츠 카프카의 ‘성’이라는 소설에서 성을 찾아가는 건축기사 K는 성에 접근하려고 하지만 끊임없는 장벽과 혼란 속에서 실패를 거듭하게 되며, 인간이 사회의 체제 안에서 무력감과 좌절을 느끼는 것처럼 그에게 성은 모호하면서도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이다. 스마트폰은 인간에게 연결이라는 본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소외를 유발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의 지배를 받는 소비자가 아니라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스마트폰과 SNS를 이용한 연결이 때로 우리에게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게 만들지만 기계나 기술이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를 대체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업들이 한 세기의 역사에서 여러 형태의 흥망성쇠를 겪었던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변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일을 하면서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기술을 접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떠한 삶의 가치를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인간다운 관계와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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