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는 밤낮 없이 울려 퍼지는 기괴한 소음에 일상이 무너진 접경지역 마을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일주일 동안의 취재 과정에서 느낀 것은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봐 오던 대남방송의 실태보다 현장의 모습은 더욱 처참했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치닫게 된 접경지역 주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괴한 그 소음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결국은 정부나 관할 지자체가 나서 해법을 제시해야 할 문제로 보입니다. 하지만 해법이 보이질 않은 상황이기에 주민들의 속은 타들어 가기만 합니다.
강화도 송해면 바로 앞에 설치된 북한 대남 확성기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4년 12월호=정용일 기자] 소음 공격에 피폐해진 삶의 그림자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접경지역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고요했던 마을에 울려 퍼지는 형용할 수조차 없는 기괴한 소음과 굉음은 주변을 온통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왜 그들이 그토록 눈물까지 흘려가며 고통을 호소하는지 백번 천번 이해가 가고 또 이해가 갔다. 확실한 건 그 기괴한 대남방송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마을들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시사의창> 취재진은 대남방송으로 인해 고통받는 접경지역의 실태를 파악하고자 지난 11월 13일과 14일 양일 간 접경지역(강화, 김포, 파주) 주변의 여러 마을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믿기 힘든 굉음과 그로 인한 충격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도, 그 어떤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서서 그 기괴한 소음으로 가득 찬 마을 곳곳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접경지역의 상황은 생각보다 끔찍하고 처참했다...
기자가 가장 먼저 찾은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는 그동안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을 둘러싼 논밭과 낮은 산들, 소박한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주민들은 자연과 더불어 조용한 삶을 영위해 왔다. 그러나 4개월 전부터 마을의 평온은 산산이 부서졌다. 북한이 재개한 대남 확성기 방송은 주민들의 일상에 깊은 균열을 일으켰다. 송해면 바로 맞은편에 설치된 대남 확성기는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할 정도였으며, 그 소음은 마을 주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간 해오던 대남방송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그 소음 공격은 4개월이 넘도록 매일 이어지고 있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한다.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기괴한 소음에 할 말 잃어
울음소리·동물소리·비명소리·온갖 기계음 뒤섞여
생활소음 적은 밤이나 새벽에 무차별 소음 공격
대남 확성기 소음에 희생된 주민들의 망가진 삶
기괴한 소음에 불면증·노이로제에 시달리며 울분
전력 문제로 동시다발적으로 틀지는 못하는 상황
힘든 상황 속 북한 주민들 소음피해 걱정하기도
지원 대상 기준 놓고 명확한 잣대 없어 골머리
주민들 “보상보다 확성기 소음을 멈추게 해 달라”
지자체, “창호 설치 후 효과 입증되는 것이 관건”
지자체·군·정부 어디에 하소연해야 맞는지도 불분명
北, 확성기 소음 공격...남한 내부분열 목적이었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혀요.”
허모 씨는 마을 주민 대표로, 대남 방송의 피해를 가장 절실히 호소하는 사람 중 하나다. 지난 15일 인천시의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밤에 두 시간도 못 자고 버티고 있어요. 머리가 깨질 것 같고, 하루 종일 심장이 두근거리고 초조하고 숨까지 막힙니다. 이러다 정말 쓰러질까 두려워요.” 그의 얼굴은 초조함과 피로감이 가득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북한의 대남 방송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무형의 적으로 자리 잡았다.
“주민들 모두가 힘들어해요. 아이들도, 동물도 모두 지쳐가요”
이웃 주민 박모 씨는 두 아이를 둔 엄마다. 그녀는 어린 자녀들이 밤마다 악몽을 꾸며 울부짖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큰애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밤새 울며 잠을 설치니 학교에서도 피곤해서 졸기 일쑤예요. 아기였던 둘째는 잠든 척하면서도 손을 꼭 쥐고 안 놓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이야기는 그녀의 반려견 이야기에서 나왔다. “두 살 된 강아지가 며칠 전에 죽었어요. 병원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요.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하루하루가 지치고 괴로워요”
그렇다면 24시간 울려 퍼지는 소음, 그 강도는 얼마나 클까. 기자가 직접 당산리를 방문한 13일, 마을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확성기 방송은 마을 전역에서 들렸다. 북한이 내보내는 방송 내용은 대부분 정치 선전과 군사적 위협이 주를 이루었지만, 주민들은 그 내용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소음은 왜곡된 소리와 굉음으로 뒤섞여 듣는 이의 귀를 파고들었다.
소음 측정기로 직접 소리 강도를 재본 결과, 조용한 순간에는 40~50 데시벨로 일반적인 일상 대화 수준이었다. 그러나 방송이 시작되면 소음은 순식간에 90 데시벨을 넘어섰다. 이는 도심의 교통량이 많은 도로변과 맞먹는 수준이다. 방송이 최대치를 기록했을 때는 120 데시벨에 달했는데, 이는 전투기가 이착륙할 때의 소음과 비슷한 강도다. 한 주민은 이를 가리켜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가 울리는 소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라디오를 아무리 크게 틀어도 소리가 묻히지 않고, TV를 볼 때도 대사를 들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강화에서 북의 기괴한 대남방송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소가 바로 연미정 주변 월곶면이다. 그래서 다시 연미정으로 향했다. 취재 차량이 연미정 앞에 도착한 시각은 13일 오후 6시를 넘긴 상황이었다. 마을로 진입하려 하자 바리케이드 앞 군인들이 기자의 진입을 가로막았다. 해당 지역은 민통선이기 때문에 오후 5시 이후로는 거주자 외 출입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돌아가라는 말 뿐이었다.
마을 진입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곳에서도 대남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소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떠 있는 대낮의 대남방송 소음과 어둠이 내려앉은 후의 소음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지는 반드시 접경지역 마을에 울려 퍼지는 밤의 상황을 취재해야만 했다. 그래서 주변에 대남방송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출입 가능한 마을은 어디인지 묻자, 해당 군 관계자는 그 또한 보안사항이라 얘기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내비게이션 지도에 표시된 군사분계선을 보면서 감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지난 10월 24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강화군 주민이 무릎을 꿇고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이지 북한 놈들 다 때려죽이고 싶지만...”
잠 못 이뤄 야밤에 문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그렇게 한참을 돌고 돌아 찾아간 곳이 바로 숭뢰리 마을이었다. 저 멀리 철책선 앞 가로등불이 길게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기자가 찾던 곳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좁은 논두렁길 사이로 계속해서 들어가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기괴한 대남방송은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낮에 들었던 수준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굉음에 가까웠다. 어두운 밤, 마을에서 그 누구도 만나볼 수 없었다. 그저 믿기 힘든 요란하면서도 섬뜩한 굉음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그러한 소음이 울려 퍼지는 상황 자체가 믿기질 않았다.
피곤함에 차에서 휴식을 취한 후 밤 11시에 다시 차 밖으로 나가 보았다. 대남방송이 없었더라면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 그 자체였을 테지만, 낮에 들리는 생활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밤 11시에 들리는 대남방송의 소음 수준은 엄청났다. 마을 주민들이 편히 잠들기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 누구와도 마주칠 일이 없을 줄만 알았던 야밤에 저 멀리 한 남성이 보였다. 집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는 대남방송 소음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담배를 피우러 나온 마을 주민이었다.
박모(64) 씨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은 피곤해서 해 지면 몸도 피곤하고 딱히 할 것도 없어서 일찍 자거든. 그런데 밤낮으로 저렇게 틀어대니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몇 시간 틀다 말다 그랬는데 요즘에는 아침, 오후, 저녁, 새벽 구분 없이 막 틀어대니까 정말 스트레스에 살 수가 없다니까”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정말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절망 섞인 마을 주민의 푸념에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푸념을 들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그렇게 마을주민이 넋두리를 끝내고 집으로 들어간 후 한참을 다시 멍하게 서서 있을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숭뢰리 마을을 집어삼키듯 울려 퍼지는 그 기괴한 소음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취재진은 다음 날 김포로 이동했다. 시암리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에는 어김없이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군인들이 운전석 쪽으로 와서 신분과 소속을 확인했다. 취재진의 마을 방문 목적을 들은 군 관계자는 다행히도 마을 진입을 허가했고, 그렇게 시암리 곳곳을 둘러보았다. 마을 곳곳에는 대남방송 피해를 호소하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대남방송의 피해가 적지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철책선이 나온다. 강 하나를 마주 보고 맞은편에 북한 땅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으로 봐서 시암리 주민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철책선 가까이 다가가자 쇠 긁는 소리에, 윙윙거리는 전자음과 동물 울음소리가 뒤섞여 만들어 낸 소음은 온 마을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마을 주변을 맴돌다 보니 어느새 날이 다시 어두워졌다. 어제 강화에서처럼 역시나 어두워지니 마을 주민과 마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터뷰를 위해 스트레스에 앓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문을 노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주민과의 대화를 거의 포기할 때쯤 마을 초입 쪽으로 걸어나오는 주민을 발견했다. 허리가 90도 가까이 굽어진 상태로 걷는 것을 보니 어르신이 분명해 보였다.
강화군 숭뢰리. 대남방송으로 인해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보이는 숙박시설에 모든 불이 꺼져 있다.
금세 어두워지는데 왜 나오셨냐고 물으니, 역시나 소음 때문에 답답해서 그냥 잠깐 바람이나 쐴 겸 나왔다는 것이다. 88세의 어르신은 해당 마을에서만 수십여 년을 살아온 토박이였다. 그 어르신은 기자에게 “농사일 하면 피곤하고 힘들잖아. 집에서 쉬고 싶어도 저놈의 소음 때문에 쉬지도 못해. 스트레스에 밥도 잘 안 넘어가고...”라고 말했다. 이어 “아주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니까. 하루 종일 귀에서 윙윙거리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저놈들 다 잡아서 아주 때려죽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잖아. 아휴 너무 힘들어...힘들어...”라고 말하는 등 그동안 쌓인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렇게 기자와 약 20여 분 이상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어르신은 마을 초입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마을길을 걸어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에서 그간의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가 저 힘없는 어르신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살피고 도와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만 가는 순간이었다.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시암2리에는 70여 가구가, 시암1리에는 100여 가구 가까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시암1리가 됐든 2리가 됐든 마을 주민들이 모두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한 고통을 받고 지내온 지도 여름부터 그러했으니 벌써 4달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50여 가구 주민들은 4개월이 넘도록 소음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철책선 넘어 북한에서 보내는 대남방송에 시암리 주변이 온통 희귀한 소음으로 가득한 상황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가장 큰 고통
정부의 느린 대응…뿔난 주민들 “우리도 국민이다”
취재진은 마지막으로 파주를 찾았다. 파주의 민통선 내 마을은 최북단 지역으로서 이미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피해지역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파주 민통선 내 마을 주민과의 인터뷰 및 취재를 위해서는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 외에도 부수적인 절차들이 다소 까다로워 취재 방향을 조금 수정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하루하루 피해를 겪고 있는 탄현면 주변 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일단 파주 민통선 내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마을은 이번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의 피해지역 중 대명사격으로 알려진 곳이다. 파주 접경지역 일대에서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대응으로 북한은 오물풍선을 날리고 있으며, 북한의 온갖 도발에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다시 대남 확성기를 통해 기괴한 소음으로 접경지역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 중심에 바로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마을이 있다. 대남 확성기 공격의 중심에서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에 도 차원에서의 첫 공식 지원이 발표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외에도 파주시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취재를 진행해 보았다.
탄현면 성동리에 숙박업소들이 모여 있는 모습
우선 도라산 전망대가 있는 파주 탄현면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헤이리마을’이나 ‘파주프로방스’가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탄현은 접경지역과는 멀리 떨어진 도심과도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파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인 오두산전망대가 있는 탄현면은 물론 오두산전망대에서 차로 20여 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도라산 전망대가 위치한 장단면 역시 피해가 큰 상황이었다. 일단 문산의 통일전망대처럼 두 전망대 역시 방문객들 수가 상당하다. 주말이면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 땅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오두산 전망대의 주차장은 비교적 한산했으며, 8대의 망원경 중 이용하는 관광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멀지 않은 거리의 도라산 전망대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망대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는데 요즘은 방문객이 30% 가까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 식당가들 역시 대남방송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도라산전망대 주변 식당가에서 순두부집을 운영한다는 김모 씨는 “대남방송이 시작되기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손님이 줄어든 것 같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정말 화가 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상황은 도라산전망대가 위치한 탄현면 일대 식당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대남방송으로 인한 상인들의 피해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요 유명 관광지들이 모여 있는 탄현면 일대는 접경지역과의 거리도 생각보다 가까웠다. 탄현면의 옛 자동차극장 앞 대로변 주변과 뒷길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르면 크고 작은 숙박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인근 식당들이나 숙박업이 밤낮없이 울려대는 대남방송 탓에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김포시 시암1~2리 마을 주변에 대남방송 피해를 호소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근에서 오랫동안 숙박업을 해오고 있다는 김모 씨는 인터뷰에서 “손님들이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내리자마자 대남방송을 들은 후 다시 차에 타고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서 “매출이 반토막 이상 떨어진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버텨낼 자신도 없고 정말 막막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숙박업 종사자는 “아침, 오후, 저녁, 새벽 할 것 없이 마구 울려대는 대남방송에 정말 스트레스가 많다”며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한데 분명 늦은 밤이니 새벽에 쩌렁쩌렁 울려 퍼질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14일 오후에는 별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숙박업소 한 곳을 예약한 후 새벽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밤 11시를 훌쩍 넘기면서 “오늘은 아닌가 보다” 하던 순간 자정이 되자 마치 정해놓은 시각에 알람이 울리듯이 기괴한 소음의 대남방송이 탄현면 일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전날 들었던 소음과는 또 다른 소리였다. 한 남성이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 이상한 기계음이 뒤섞여 고요했던 곳이 순식간에 을씨년스러운 소음으로 가득 찼다.
소음은 정확히 새벽 1시 30분이 돼서야 중단되었고, 저 멀리 다른 곳에서 들리는 대남방송이 메아리 처 탄현면까지 희미하게 이어서 들리는 수준이었다. 결국 동시다발적으로 대남방송을 틀어대는 형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유인 즉, 북한의 경우 전력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구간을 정해 번갈아가면서 소음공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로 생활소음에 희석돼 확성기 소음의 효과가 적은 낮 시간대보다는 피해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늦은 밤이나 새벽 시간대를 집중 공략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숙박시설의 투숙객들이 숙면을 취하기에 분명 상당한 방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다.
김포시 시암1~2리 마을 어귀에 대남방송 피해를 호소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숙박시설이 밀집된 곳에서 차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곳에 파주프로방스가 위치해 있다. 프로방스의 경우 단지 외부나 각 매장에서 음악을 틀어놓기 때문에 비교적 대남방송 소음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생활소음이 가장 큰 대낮에도 대남방송 소음이 크게 들릴 때는 시끄러워서 창문을 닫는다는 직원들도 여럿 있었다. 프로방스의 경우 지대가 높고 접경지와의 거리도 가깝기 때문에 매장 내에서 음악을 틀지 않는다면 대낮에도 적지 않은 소음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였다.
프로방스에서 만난 한 직원은 “오전에 출근하면 소음이 상당히 크게 들릴 때도 있고 조용할 때도 있고 그래요. 또 낮에도 소음이 크게 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듣기 싫은 이상한 소음이 계속 들리니까 프로방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며 씁쓸함을 전했다.
시암2리에서 수십년 째 살고 있다는 88세의 한 어르신이 스트레스로 집 밖을 나서고 있다.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방음창과 심리 지원
강화, 김포, 파주 접경지역 주변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지금의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및 고통보다 지옥 같은 지금의 삶이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주민들의 정신적·신체적 피해는 점점 누적되고 있다. 강화군에서 만난 윤모 씨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해졌다고 했다. “자다가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서 새벽에 잠에서 깨는 일이 일상이 됐어요. 병원에 가봤지만 의사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하니 정말 답답합니다.” 마을 내에서 안면 떨림, 시력 저하 같은 신경계 이상 증상을 호소하는 주민도 늘고 있다. 특히, 노약자와 어린아이들은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북한의 대남 방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심리전의 일환으로 확성기 방송이 활용되곤 했다. 하지만 김포시 주민들은 “과거에도 피해는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 지속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수차례 민원을 넣고 국회와 국방부에 서한을 보냈지만, 정부는 초기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남북 관계의 민감성과 법적 근거의 부재가 이유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회는 지난달 민방위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소음 피해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지원책이 마련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주민은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왜 이렇게 내팽개쳐졌는지 모르겠어요. 소음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는 뭐 하고 있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유정복 인천시장이 직접 당산리를 찾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시 차원에서 3억 5천만 원의 예비비를 투입해 방음창 설치를 추진하고,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방음창은 연내 발주될 예정이며, 이는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전해진 희망적인 소식이다. 또한 가축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전문가 지원과 농작물 피해 보상 문제도 논의 중이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심리전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남한 사회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를 “거대한 정치적 싸움의 희생양”으로 받아들인다.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나요? 우리도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김포 시암리에 거주하는 한 마을 주민의 말은 이곳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김포시 시암리 주민들은 오늘도 소음 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비록 정부의 조치가 시작되었지만, 북한과의 갈등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이 소음이 멈추고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날까지 버텨볼 겁니다.” 시암1리의 한 주민의 마지막 말은 무겁지만 희망을 품고 있었다.
파주 탄현면 오두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주변이 개방되어 있어 소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곳이다.
도움 주고 싶어도 법적 근거 없어 ‘한숨만’
지원 대상을 정할 명확한 기준도 없어 난항
4개월째 이어지는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공격에 피해를 호소하는 접경지역 주민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가운데, 관할 지자체에서의 피해지원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당장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는 만큼 피해회복 및 피해지원의 시작이 중요하다.
강화군은 지난 10월 인천시 산하기관인 보건환경연구원이 대남방송 피해지역 몇 곳을 지정해 소음측정을 실시했다. 당시 강화군 당산리의 소음이 가장 높게 나옴으로써 일단 당산리를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 31개 가구에 창호를 설치하기로 했다. 물론 방음창이나 방음벽제의 실효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시공 후 주민들이 체감하는 것이나 시공 후 집안에서의 소음 측정 후 소음이 현저히 줄어든다면 추가적으로 타 지역도 검토할 예정이다.
창호 교체 시 가구당 1천만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인천시가 70%, 강화군이 30%의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당산리와 인접한 숭뢰리의 경우도 확성기 소음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기에 당산리만 창호교체 지역으로 지정된 것과 관련해 주민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연미정 인근 월곶면 역시 강화군에서 확성기 소음이 심한 지역 중 한 곳이다. 본지 취재에 의하면 강화군에서 송해면 당산리·숭뢰리, 월곶면 세 마을이 소음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보였다.
강화군은 현재 10월 중순부터 강화읍까지 소음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며,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1월 초에 북한에서 스피커를 추가로 달았는지, 소음이 더욱 커졌다는 주장이다. 또한 당산리의 고려천도공원 맞은편(북한)이 스피커 소음의 진원지로 알려지는 등 당연히 마주 보고 있는 주변 마을 주민들의 피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화군청에서 근무한다는 한 직원은 “가끔 야근이라도 하늘 날에는 9시에서 10시 사이에 퇴근할 때 군청에서도 확성기 소음이 들린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접경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포시의 경우 시암1~2리(총 150여 가구)가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김포시에서도 희망자에 한해 정신검사를 모두 진행했으며, 희망자에 한해 임시 숙소도 제공할 예정이나 아직까지 희망자가 없어 숙소만 준비된 상태다.
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포의 경우 시암1~2리의 피해가 가장 크다. 마을에는 총 15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한 가구당 1천만원이면 총 15억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창호 지원도 해드리고 싶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현재로선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남확성기 피해가 심각한 대성동 마을을 찾은 김경일(오른쪽 세번째) 파주시장. [파주시 제공]
강화군이나 파주시 접경지역 주민들보다 가구 수나 인구수가 많은 김포시의 경우 피해주민 지원을 위한 예산상의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주시나 강화군처럼 김포의 시암리 주민들 역시 큰 피해를 입고 있어 김포시가 도에 건의를 했지만 파주의 대성동마을 외의 다른 접경지역 마을에 대한 지원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다.
취재 결과 강화군의 경우 행안부에 11월 초 건의를 했고, 행안부가 해당 건에 대한 회신을 했다. 내용은 경기도의 사례처럼 예비비를 적극 활용해 자체적으로 지원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인천시는 강화군과 7:3의 비율로 당산리 35가구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포시에서도 피해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접경지역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서도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어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시암리 외의 마을에서도 소음이 들리기는 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겠지만 외부 사람들이 볼 때 ‘그 정도면 충분히 참을 만하지 않나’라고 생각해도 매일 그 경미한 소음을 접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을 해주고 안 해주고의 명확한 기준점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소음이 접경지역 주민들보다는 적을 것이라 판단해 ‘당신들은 지원을 못 해준다’거나 ‘그 정도면 참을 수 있지 않느냐’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주민은 “대북방송이 줄어들면 대남방송도 따라서 줄어드는 것 같다”며 “대북방송을 멈추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주민은 “대북방송을 지자체에서 해라 마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그렇다고 국방부에서 대북방송 송출과 관련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매일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 정확하게 맞는 것이냐”며 답답함을 전했다. 또 “우리는 그 어떤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닌, 그저 저 끔찍스러운 소음이 중단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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