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섭의 여행스케치] 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늘 변하고 있는 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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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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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세 번의 개인전과 여러 전시를 치렀다. 작가들에게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개인전을 이야기 하자면 한번은 복잡한 인사동길의 중심에 있는, 밖에서도 그림을 훤히 볼 수 있는 갤러리였고, 두 번째는 일본 교토시 국제교류회관 미술관의 초대였고 세 번째는 실험공간 윈도우 갤러리에서였다. 한 해에 세 번의 개인전을 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전시는 아닐 것이다. 나름 고난의 작업을 하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 중 하나는 이 일들을 해결하고 나서 원 없이 길을 걸어 보자고 하는 것. 그것만을 생각하며 무사히 전시를 마쳤다.
[시사의창 2024년 11월호=이두섭 작가] 각전시의 사연은 이러하다. 봄에 열린 올 첫 번째 개인전은 10여 년 전부터 전시를 희망하던 제법 괜찮은 갤러리였기에 잘 해보려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작년 겨울의 추위를 견뎌 봄에 꽃 피우듯 이뤄낸 전시였다. 새로운 작업 세계의 길, 그 모색도 함께 하였기에 앞으로의 작업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했다. 불안과 함께 했던 행군이었다. 상상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물들은 대상의 완벽한 재현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각과는 너무나도 많이 동떨어진 작업이었다.
오래전부터 희망하였던 다른 전시와 별도로 우연히 전시가 이루어진 교토시 국제교류협회와 공동주최한 두 번째 개인전은 의미 있는 전시가 되었다. 난해한 그림을 받아들이는 관람객들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관대함 때문이다. 어쩌면 말도 안 통하는 세계에 덩그러니 던져진 듯한 그림들을 어떻게 바라볼까는 중요한 상황이었다. 추상 작업의 애매함을 풀어내는 채널로서 추상적인 제목을 붙인 그림들을 일본인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주춤거리며 다가와 질문을 하였다. 즉, 그들의 국어 선생님이니까 우리가 볼 땐 일어 선생님인 50대의 여교사였다. ‘위험한 향기’ ‘수상한 미소’ ‘둥글게 말아 올린 꿈(들)‘ ’내리는 눈들의 숫자(들)‘ 등으로 제목 지어진 것들에 대한 물음이었다. 애매함에서 촉발되는 그녀의 생각은 실로 진지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림에 관한 생각의 중심은 길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길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다는 그녀와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의미 없이 약속하고 자리로 돌아와 다시 또 길을 생각해 보았다. 전시하는 일주일 동안 숙소에서 제법 떨어진 이곳을 하루는 복잡한 기온 시조의 길을 걸어 돌아갔고, 하루는 버스를 타고 오다가 교토 시내를 가르는 가모가와강 근처에서 내려 미술관까지 걸어갔다. 큰길에서 내려 좁은 길로 접어 들어갈 때 보여지는 것은 아기자기한 시장의 소품들과 전선 줄 가득한 일본 특유의 풍경이다. 작은 상점에서 내어놓는 공예품이나 과자들의 예쁨도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추상화된 작품 제목에 대해 일본인 교사와 나눈 대화도 이곳을 걸으며 되뇌어 보았다.
세 번째 개인전은 누가 보더라도 초라하고 작은 갤러리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볼 땐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갤러리에서 치뤘다. 세운상가의 어느 곳에 있는 세운아트스페이스.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혼자 길을 돌아다니던 6년 전에 보았던 곳이다. 허름한 벽이 인상 깊었던 작은 갤러리. 몇 명의 작가들이 함께 운영하는 실험공간이다. 그 벽에 그림이 걸린다면 다른 분위기의 소리를 낼 것 같은 묘함이 인상깊어 전시를 희망했다. 생각하는 대로 길이 열린다고 했나. 포기하지 않으니 우여곡절 끝에 전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때 경공업이나 전자산업의 시작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었던 상징적 장소에서 그림을 보일 수 있게 된다니.
운이 좋았다. 나에게 을지로라는 지역은 암울한 시기에 새로운 세상으로의 접근을 암암리에 묵인해 주었던 곳이다. 주거 형태와 환경 등을 그 상가에서 80년도부터 장사를 시작한 상인에게 들었다. 청계천 사업으로 세운 상가 위의 주거지는 값이 많이 올랐고 더운 여름에는 주변의 온도가 몇 도씩이나 내려가 시원해졌다고 하는 이야기와 이곳의 주거지는 다른 곳과 다르게 땅 지분이 없는 지상권만 있다고 하는 것 등. 경 공업지역의 작은 공장에서 기나긴 세월 지난하게 작업하는 이들의 고단한 삶, 녹슨 대문과 낡은 담장들을 그림 속에 넣으려고 애썼다. 유의미한 장소에서의 전시는 내게 소소한 행복을 주었다. 작업을 하면서 내내 즐거웠으니까.
작업 내내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방법을 그림이라는 수단으로 견뎌내었다. 특별한 목표가 과정에 있지 않은 그림의 제작 방법은 큰 그릇에 그날의 기분에 따른 물감을 풀어놓고 큰 붓으로 바탕칠을 완벽하게 해놓은 캔버스에 무작위로 붓질한다. 무작위의 행동으로 의도하지 않는 작업이다. 어느 한 지점에 깊게, 그리고 진심으로 집중하면 그 끝에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경험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야 하겠지만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라는 것. 윗세대의 경험을 받아 활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안일하고 쉬운 삶의 태도라는 것. 나 자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은 진정한 나의 모습을 만나는 시간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작업을 하였다.
그것을 만나는 시간을 나는 여행길과 작업시간에서 찾는다. 여행길은 계획되지 않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러다 보면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의외의 감정들과 풍경에 감동이 온다. 그들, 혹은 우리들의 사소한 일상들이 큰 울림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주택가 안쪽의 그리 크지 않은 빵 가게에서 빵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줄을 서있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그 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빵 가게 주인의 제품 생산에 대한 성실함 등의 사소함이 그것이다. 서로가 관계하는 그것이, 조건 없는 교류로서의 소통일 때 암묵적인 아름다운 약속은 아주 작은 울림으로 작업의 세계관에 기여하게 된다.
선택이 나를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 그것이 갖는 의미는 실존에 해당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택, 또 선택. 그 판단이 합리적이라 한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어떤 지점에서의 자기 성찰은 실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단지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 자리까지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걸어서 도달해 있는 바로 이 자리. 그래서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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