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타파] 서울시 ‘눈먼 돈 대잔치’ 책임은 누가... 1100억 들여 만든 보행로 수명은 2년짜리

오세훈 시장에게 ‘대못’이었던 故 박원순 전 시장의 흔적,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편집부 승인 2024.11.06 11:19 | 최종 수정 2024.11.06 15:01 의견 0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제, 분야와 상관없이 평소 불합리하다 느꼈던 것, 궁금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상황들도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시사의창’에서는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본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과 알아두면 좋은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제보와 문의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취재는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철거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일각에서는 ‘박원순 지우기’란 시선도 적지 않은데요, 박원순 전 시장의 ‘도시재생’과 ‘오세훈 시장의 ‘도시개발’은 오래전부터 충돌한 부분입니다. 결국 박 전 시장의 흔적은 서서히 도려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시 예산이 투입된 시설물이 불과 2년 만에 다시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철거 과정에서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뜯어고쳐 적절하게 다시 사용해야 할까요. 혈세 낭비를 감수하더라도 새롭게 바꿔 나가야 할까요.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혈세 낭비의 악순환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 참 답답한 심경입니다.

세운상가 공중보행교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4년 11월호=정용일기자]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그에 따른 도시의 모습이 천지가 개벽하리만치 바뀌어가고 있다. 인간은 그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보다 편한 삶을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삶의 모든 것들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옛것의 그리움이나, 옛것의 소중함을 갈망하는 현상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레트로’다.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온 기자에게 서울에서의 그리운 옛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옛 영화관의 향수에 젖게 만드는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극장’이다.
또한 서울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세운상가’다. 아마도 40대 이상의 성인들은 세운상가에 대한 향수가 짙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그만큼 서울에서 상징적인 장소였다. 현재 세운지구 내 동서를 가로지르는 전자상가, 호텔, 오피스 빌딩들을 모두 합쳐 세운상가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축물로서 종로 3가와 퇴계로 3가 사이를 잇는 주상복합상가 건물군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며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이기도 하다. 참고로 두 번째로 건설된 주상복합은 낙원상가다.

단체장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혈세 낭비’에 국민들 분통
천문학적 시비가 투입된 사업을 또 돈을 써서 되돌리나
철거 예정으로 방치된 보행로 곳곳에 새 분비물과 누수
주변 상인들 “새똥 안 치우고, 물 새고, 이용자들도 없어”
다시 고치고 바꾸고 개선시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없나
전문가들 예상치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실제 이용자 11%
‘박원순의 도시재생’ 갈아엎고 ‘오세훈의 도시개발’ 강행
역사적 맥락을 비튼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국가상징공간’ 조성사업 이유로 ‘서울로 7017’도 허무나?


당시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세운상가로 지었다고 한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대로 건립되었으며, 총 거리 1km의 초대형 주상복합상가군이었다.
건립 당시 고급아파트와 상가가 함께 공존하는 형태였으나, 60년대부터 인근의 미군부대에서 빼내온 각종 고물들을 고쳐 판매하는 사업장들이 자리 잡으면서, 점차 각종 전자제품의 메카로 변모하게 된다.
이후 강남 개발의 영향으로 더 이상 주거지로서의 매력이 사라지게 됐다. 사실상 아파트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서 건물 전체가 작업장으로 바뀌는 등 사실상 상가건물로 바뀌게 되었다. 세운상가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는 곳’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으나, 용산전자상가를 필두로 방문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상권이 쇠락하게 되었고 이에 건물은 슬림화 되어버렸다.

1968년 세운상가의 모습. [서울시 제공] ©연합뉴스


이에 따라 서울 자치구는 마천루로 재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청과 문화재청은 이에 반대를 했고 오세훈 시정 1기 시절에는 모든 건물을 철거해서 종묘와 남산을 잇는 녹지축으로 계획을 했으나 상인들의 반발과 현실적인 보상비용 문제로 이후 몇 년간이나 질질 끌다가 사실상 폐기되었다. 건물 자체가 당시 건축법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고 되는대로 시범적으로 만들어본 성격이라 애초부터 재건축을 통해 현대 기준을 충족할 수가 없었다.
박원순 시장 이후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건물과 상가를 재생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가, 오세훈 시장이 재취임하면서 녹지생태도심 조성 개발로 가닥이 잡혔다. 따라서 박 전 시장 재임 당시 무려 1100억원을 들여 조성한 공중보행로는 지어진 지 불과 2년 만에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였다.
공중보행로 조성 당시 이 공중보행로는 세운상가와 인근 낙원상가 등 서울의 레트로 감성과 조화를 이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랬던 공중보행로가 이용가치가 떨어지고 갖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결국 2년여 만에 다시 철거를 당하는 신세에 놓인 것이다. 세금 1100억원은 그저 눈먼 돈이었을까. 이를 바라보는 서울시민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공중보행교 위치

애초부터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시장의 철학

뒤엎고 또 뒤엎는 사이 세금만 ‘공중분해’ 됐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한없이 초라할 뿐이다. 지난 9월 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사업 중 마지막 성과물로 꼽히는 삼풍상가· PJ호텔 건물 곁 280m 구간에 조성된 철골 구조물인 공중보행로를 철거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이 공중보행로는 세운상가와 종묘, 청계·대림·인현·진양상가 등 7개 건물을 잇는 길이 1㎞의 다리로서 박원순 전 시장 임기 때인 2016년 건설이 추진됐으며, 오세훈 시장의 4선 임기가 시작된 2022년 7월 전 구간이 개통됐다.
오 시장은 개통 후 1년간 공중보행로 총 보행량이 예측량의 11%에 불과하다는 감사원의 보고서 및 공중보행로 누수 등으로 인한 지상 보행 환경이 열악해진 점 등을 예로 들며 ‘시설 개선 차원’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학계는 물론 시민들도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철거하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은 돈이 드는 것은 물론, 사업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는 여론 역시 강하다.
오 시장은 취임 후 이어진 도시재생 후속 사업들을 무시해 왔다. 콘텐츠 확충 등 지원책 없이 통행량 등을 근거로 들며 도시 역사의 핵심 기억을 되살려 지은 시설물을 불과 재건 2년 만에 철거한다는 발상은 무리수가 아닐까.
오 시장이 발표한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이란 서울 도심 건물의 건폐율을 낮추고 층수와 용적률은 올려주는 방식으로 건축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그에 대한 대가로 얻게 될 공공기여를 공원과 녹지를 만드는데 활용한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녹지 비율이 현 3.8%에서 15%까지 대폭 높아지게 되고 주변에 고층 빌딩숲이 들어서면 이명박 전 시장이 재임 당시 추진하려던 계획이 그대로 이어지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오 시장의 이러한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려면 공중보행로의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녹지공간의 연계성과 녹지공간 주변으로 들어서게 될 지상 상가들의 활성화 측면에서도 공중보행로 철거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사실 오 시장 입장에서 눈엣가시였던 공중보행교의 이용자 수가 예상치를 크게 밑돈다는 감사원의 지적은 어찌 보면 반가운 지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수적으로 나타난 누수 문제와 기타 등등의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오 시장의 이번 공중보행로 철거 결정을 두고 역사적 맥락을 비틀어버린 정치적 노림수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전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의 전체 상가 건물군을 정비 목적으로 녹지화한 뒤 양옆으로 초고층 빌딩단지를 조성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 오 시장의 행보는 이 전 시장의 숙원을 다시 실현하려는 신호탄은 아닐까.

일조량 침해 및 보행로를 받치는 기둥 탓에 지상 보도는 더 좁아지고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


오 시장과 박 전 시장의 시정 철학이 충돌한 대표적 사업으로 꼽히는 세운상가 공중보행로의 운명은 결국 오세훈 시장에 의해 쓸쓸한 결말을 맺게 됐다. 도시 개발을 중시하는 오 시장의 행보는 발 빠르게 진행됐다. 2006년 첫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 촉진 지구로 지정하면서 이후 일대를 통합 개발하기 위해 재정비 촉진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2014년 취임한 박 전 시장은 도시 재생을 내걸며 일대 보존을 목표로 재정비 촉진 계획을 변경하면서 세운상가의 접근성을 높이고 상권을 활성화하고자 공중보행로를 설치했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이 다시 서울시장에 취임하면서 예상대로 전임시장의 사업들을 다시 뒤엎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공중보행로 철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유인 즉, 오 시장은 2021년 11월 시의회에서 “세운상가에 올라가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며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02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공중보행로에 대해 “개발을 저해하는 대못”이라며 반대의 뜻을 강하게 표현하는 등 세운상가 개발을 막은 박 전 시장의 도시재생 사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중보행로 사업은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과 맞물려 엄청난 기대치를 안고 시작된 서울시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종묘에서 출발해 세운상가를 거쳐 2km에 달하는 공중보행로 위를 걷다 보면 필동 골목길을 통해 남산까지 거침없이 이어진다. 마치 홍콩의 센트럴과 미드레벨을 잇는 ‘미드레벨에스컬레이터’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처럼 보행 동선이 연결돼 집객 효과는 물론, 교통 체증 완화와 관광자원 활용 등의 부수적 효과까지 얻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공중보행로를 내내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오 시장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고야 만 것이다.

신성아파트 앞 공중보행로의 한산한 모습


오세훈의 야심찬 계획에 공중보행로는 ‘대못’
완벽하게 빗나간 수요 예측은 누가 책임지나

어찌 됐든 혈세낭비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나랏돈, 시민세금, 국민세금은 눈먼 돈이라는 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공사에 투입된 예산은 1109억원이며, 전액 서울시 예산이다. 실제 공중보행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당초 예측의 11% 불과한 상황이다. 연간 10만여 명 이상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빗나간 것. 실제 공중보행로를 걸어보면 매우 한산한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누수로 인한 부분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누수로 인해 생긴 누런 고드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며, 비라도 퍼붓는 날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장에서 만난 세운상가 상인들은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맑고 무더운 날에도 누수가 발생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인근의 명동이나 청계천 관광특구와 비교해 보면 세운상가의 공중보행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치가 얼마나 저조했는지 더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주변의 관광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지금까지 활성화되지 못하고 죽은 다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상인들은 “보행로에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감각적이고 다채로운 매장들을 유치했어야 한다”며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렇듯 사업성은 무시된 채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것은 최근 감사원 조사에서도 지적됐다. 세운상가의 공중보행로는 그저 보행로이자 통로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해 온 것이다.
시는 지난 9월 23일 오후 4시 중구 구민회관 소강당에서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 변경(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세운상가 일대는 2015년 12월 10일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됐으며, 시는 2017년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수립해 9개 재생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번 변경안은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이 대부분 마무리됨에 따라 이들 사업에 대한 완료 조치를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 일부 구간을 철거하고 지상부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내용을 포함해 시민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
이번 공청회에 서울시의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 철거 계획을 두고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철거를 희망하는 상인들은 공중보행로 탓에 아래쪽 상가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며 조속한 철거를 요청한 반면, 시가 1천 109억원을 들여 조성한 공중보행로를 2년 만에 철거하는 것은 세금 낭비라는 비판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전임 시장의 역점 사업을 철회하는 ‘박원순 지우기’란 지적도 나오지만, 서울시의 입장은 강경하다.
시는 우선 삼풍상가와 PJ호텔 양측 약 250m 구간에 설치된 철골구조의 보행교 구간을 철거할 계획이다.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 일일 보행량 조사 결과, 매년 10만 544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 보행량은 계획 당시 예측치의 11% 수준인 1만 1731명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철거 계획의 직접적인 원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시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도 있어 철거에 착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감사원은 지난 8월 감사 결과 “공중보행로가 당초 사업의 목적인 보행량 증대를 통한 세운상가 일대 지역 재생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삼풍상가∼PJ호텔 양측에 설치된 철골구조의 보행교 구간의 보행량은 예측치의 6.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보행교 설치로 보행교 하부에 햇볕이 들지 않고, 누수 등의 문제로 시민 이용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지속해 제기돼 왔다.

누수로 인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도로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행교를 받치고 있는 기둥으로 인해 지상부 보행환경은 되레 악화했다. 시는 해당 구간의 보행교를 철거해 시민 불편을 우선 해소할 계획이다. 세운상가 등 기존 건물과 연결된 나머지 공중보행로 구간은 세운지구 재정비촉진계획에 따른 상가군 공원화 사업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사업 전 충분한 사업성 등 타당성 조사를 통해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공사를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다시 허무는 상황에서 물론 몇 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다시 허물어야만 하는 타당성에 대해 시민들도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중보행로의 어느 곳을 걸어봐도 텅 비어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곳곳 누수와 비둘기 똥으로 가득한 철골 기둥
화창한 오후 적막감마저 맴돌았던 공중보행로

현장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본지 취재진이 9월 25일 세운상가 일대를 둘러보았다. 육중한 철골구조물들이 떠받치고 있는 공중보행로는 지금 봐도 엊그제 지은 것처럼 새것으로 보였다. 지상에서 보행로로 올라가는 각 진입로의 계단 등 모든 것이 새것처럼 보였다. 이 멀쩡해 보이는 구조물을 2년여 만에 다시 철거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구석구석 다니며 세밀하게 살펴보니 지역 상인들의 주장처럼 문제점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우선 세운상과 주변 공중보행로에서부터 PJ호텔 인근까지 걸어 보았다. 오후 1시 30분경 공중보행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당 구간을 걷는 동안 주변 직장인들로 보이는 10여 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걷고 있을 뿐이었다.
공중보행로 아래쪽으로 이동해 보았다. 보행로를 받치고 있는 여러 기둥에는 비둘기 배설물로 가득했으며, 미관상으로도 매우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언뜻 봐도 상당기간 방치된 것으로 보였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누수로 인해 보행로 철골구조물에서 아래로 물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취재진이 방문한 9월 24일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했으며 당시 온도는 28도에 달했다.
공중보행로 아래 지상 보행로로 떨어져 고인 물의 흔적들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취재진 역시 현장 상황을 사진 촬영하던 도중 공중보행로에서 떨어진 물을 머리 위로 두어 번 맞았다. 몹시 찝찝하고 불쾌감이 들었다.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했다는 주변 상인들 및 보행자들이 불만을 토로한 점이 충분이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또한 공중보행로를 받치는 기둥들로 인해 보행로 아래쪽 상점들 앞 인도의 폭이 좁아 불편하다는 것과 공중보행로로 인해 일조량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취재 당시 기온은 영상 28도의 맑은 날씨. 하지만 누수로 인한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공중보행로를 받치고 있는 철골기둥에 비둘기 배설물이 한가득 뭍어 있어 미관상으로도 매우 좋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서울시청은 당시 철저한 조사 끝에 공사를 진행했을 것이지만, 불과 2년여 만에 다시 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과연 책임자 처벌 없이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도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든다.
주변 상가의 상인들 및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았다. 물론 공중 보행로 철거와 관련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팽배하게 맞선 상황이었다.
세운상가 주변에 산다는 주민 김모 씨(54)는 “공중보행로가 생긴 이후 남산까지 산책하는 게 상당히 좋아졌다”면서 “전임 시장의 정책을 활성화시키기보다 철거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시설 관리도 전혀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누수나 비둘기 똥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 박모 씨(56)도 공사를 4년 동안 해 놓고 이제 와서 철거한다니 세금 낭비에 시간 낭비"라고 꼬집었다. 또 일조량 침해와 누수로 인한 불편뿐 아니라 보행로를 받치는 기둥 탓에 지상 보도는 더 좁아지고 통행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세운상가 주변에서 노점(토스트)을 10년 이상 하고 있다는 장모 씨(68)는 “내 가게는 공중보행로 바로 아래쪽이 아니어서 철거를 해도 장사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면서 “그래도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 공사해 놓고 다시 철거한다고 하니 이건 뭐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난 도통 이해가 안 가네”라고 말했다.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 수리를 하고 있는 한 상가의 윤모 씨(61)는 “철거를 한다는 얘기는 대충 들었는데, 언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들은 것도 없고, 별 관심도 없다. 시민으로서 그냥 서울시에서 하는 것을 지켜보면 답답하다”며 인터뷰 내내 짜증스러운 모습을 내비쳤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모 씨는 “서울시의 철거 계획에 찬성한다”면서 “공중보행데크로 아래 상가는 주간에도 어두컴컴하니, (주변 구간도) 같이 철거돼 상가가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철거 계획에는 찬성하지만 잘못된 수요 예측과 정책 결정으로 인한 세금 낭비는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다른 김모 씨는 “(철거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삼풍상가나 PJ호텔 모두 철거돼야 하니 건물 철거할 때 같이 하는 게 좋겠다”면서도 “세금 1천100억원을 들인 사업을 철거하면 시에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진명국 서울시 세운지구활성화팀장은 “공중 보행로 철거를 일시에 하는 것은 어려워 단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구간을 철거해도 남은 공중보행로가 지상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돼 불편이 없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시는 이번 공청회를 시작으로 시의회 의견 청취 및 관련 심의 등을 거친 후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해당 구간의 철거 및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4월2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세운 5구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운상가가 위치한 자리는 입지적으로만 봐도 서울시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리다. 따라서 서울시가 과연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을지가 중요하다. 또한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오 시장이 박 전 시장의 대표적 도시재생 사업인 ‘서울로 7017(서울역 공중공원)’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서울역 일대 활용 방안에 관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한 바 있다. 시 관계자는 “이번 공모전은 서울로 7017의 철거 여부와 관련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제라도 ‘서울로 7017’도 철거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서울로 1017’의 무용론을 강화하는 밑그림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향후 서울시에서 어떠한 합리적 명분을 내세워 ‘서울로 7017’ 철거를 공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지 취재진은 이참에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취재 다음날인 9월 25일 오후 서울역 앞을 가보았다.

서울로 7017의 모습



서울에 설치된 공중보행로의 성공사례로 ‘서울로 7017’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회현역에서 시작해 서울역 및 서부역까지 이어지는 1km 길이의 공중보행로인 ‘서울로 7017’은 노후 인프라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좋은 예로 꼽힌다. 1970년 설치된 17m 높이의 고가도로는 지난 45년간 차가 독점하던 곳이었다.
박원순 시장 재임 당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17개 보행로로 개조함으로써 보행자만의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전용 산책로가 부족한 도심 속에서 마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을 걷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도 화사하다. 지상 17m 위를 걷는 기분, 시야가 뚫리고 멋진 도심 풍경을 맘껏 감상하며 여유 있게 거닐 수 있는 환경은 보행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명소가 어쩌면 철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서울시에서 서울역 주변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려는 사업이 바로 그 걱정의 이유다. 세운상가 공중보행로가 철거를 앞둔 시점에서 당연히 ‘서울로 7017’과 연계되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박원순 흔적 지우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로 7017의 공중보행로를 걷는 시민과 직장인들


도시의 외관이란 국민들이 사준 값비싼 캔버스 위에 국민들이 사준 물감으로 여러 단체장들이 저마다 맡은 재임기간 동안 덧칠에 덧칠을 더해 만들어가는 유화이기도 하다. 전임자가 칠한 캔버스 위에 현임자가 덧칠을 하고, 또 다음 후임자가 덧칠을 해서 만들어가는 멋진 유화라는 말이다.
지금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은 이명박(4년), 오세훈(5년), 박원순(9년), 그리고 지금 다시 오세훈(2년+)이 각자의 능력과 솜씨를 발휘하면서 덧칠을 거듭한 공동 유화 작품인 것이다. 서울이라는 캔버스의 가장 윗부분에 덧칠을 하고 있는 오 시장이 캔버스 위의 그림에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캔버스 위에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그림 중 일부를 국민적 공감대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도저식으로 지워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캔버스의 주인인 국민들이, 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의 수장이 바뀌며 개발과 재생 사이에서 몇 차례 사업 추진과 중단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애꿎은 서울시민의 천문학적 수준의 혈세만 공중분해 됐다. 누구의 책임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시민의 세금은 눈먼 돈인가.
올해 서울시 총 예산은 45조 7,230억이다. 이렇게 천문학적 예산을 다루는 서울시의 입장에서 세금 1,000억원 정도 낭비하는 것은 예삿일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저작권자 ⓒ 시사의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