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면담이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난 것으로 밝혀지면서 둘 사이의 갈등의 골은 한층 깊어져만 가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한 대표가 자신이 강조했던 당정 쇄신 드라이브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 대표는 22일 윤 대통령과의 전날 회동 결과와 대통령의 답변 내용을 놓고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했지만, 국민과 민심을 기준점으로 삼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 군수 보궐선거 당선 인사차 찾은 인천 강화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직 국민만 보고 민심을 따라서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요구에 화답하지 않았지만, 민심에 따라 김 여사 의혹 해소를 위한 '3대 조치' 등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읽힌면서 윤 대통령과의 불협화음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전날 회동에서 대통령실 내 김건희 여사 측근 그룹으로 지목된 이른바 '한남동 라인' 8명에 대한 사실상의 인사 조치를 건의했고, 윤 대통령은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문제를 전달하면 그 내용을 보고 조치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적 쇄신이라는 것이 실직 사유가 있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고 국민 공감대와 민심이 그렇다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한(친한동훈)계에서는 전날 회동 결과와 형식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SBS 라디오에서 "한 대표는 드려야 할 말씀을 다 드렸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별로 성공적인 결과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김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25분 정도 늦게 왔는데 대표를 안에 앉아서 기다리게 한 게 아니라 밖에서 서 있게 했고, 대통령실에서 배포한 사진을 보면 마치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놓고 훈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과 함께 왔던 분들을 보면 언론에서 이른바 '김건희 라인'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한 비서관도 대동했다"고 비판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CBS 라디오에서 "한동훈의 진심이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이 자신과의 면담 직후 추경호 원내대표를 불러 별도 회동을 가진 것에 대해 측근들에게 불쾌감까지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친한계 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 대표가 면담이 끝난 뒤 온라인 대화방에서 윤 대통령이 추 원내대표와 회동한다는 사실을 전했다"면서 "한 대표는 이 회동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더불어민주당이 세 번째로 발의한 '김여사 특검법'으로 모이고 있다. 우선 여당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친한계도 야당의 특검법에 대해서는 위헌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검법이 구체적으로 추진된다면 의원들과 힘을 모아 반헌법적 특검법을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의 단독 표결 후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와 재표결이 이뤄질 경우 여당에서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하면서 특검법 반대 명분이 약해졌고, 여당 의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김 최고위원은 "민심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며 "대통령실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굉장히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여론이 나빠지면 여당 의원이 홧김에 그런 (찬성) 투표해서 민주당의 법안이 통과될까 상당히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친윤(친윤석열)계인 강명구 의원은 BBS 라디오에서 "자꾸 빈손 회담 얘기하는 분들이 있지만, 면담이 남북 정상회담 하듯이 담판 짓는 게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지금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자연스럽게 만났다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빈손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추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면담에 대해 "당정이 긴밀히 계속 협의하면서 단합하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는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동훈 대표와 당내 친한계 인사들이 모인 만찬 회동에서 추경호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당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날 참석한 인사들은 추경호 원내대표가 대통령실과 용산을 상대로 강경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 대표는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으나 별도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만찬의 한 참석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동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한 대표의 요구사항이 모두 무시당한 것과 관련해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하지만 실상은 추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3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면담이 있었는데, 여러 면에서 아쉽고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이 말한 뒤 "국민들이 보시기에 정치가 참 답답할 것이다.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심지어 국민들은 정치가 뒷골목의 패싸움 같다는 얘기까지 한다"며 "상대를 제거하려고 하거나 아예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면 이는 정치가 아닌 싸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협의·조정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라며 "다시 정치가 복원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물론 여당 내 분위기 자체도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현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책을 강구해야 함이 옳다. 하지만 현실은 한동훈 당 대표와 척을 지는 모양새다. 여러모로 서수선한 여당이 역대급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요즘, 이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 역시 매우 어지럽다. "돌을 던지면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그 돌을 던지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해석을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이 던지는 돌을 맞으면서까지 제 갈길 가겠다는 것이라면 이 나라에 국민을 위한 대통령은 없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저작권자 ⓒ 시사의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