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칼럼] 여성복서를 양성했던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 선생과의 26년 전 추억

조영섭기자 승인 2024.10.22 09:58 | 최종 수정 2024.10.22 10:05 의견 26
영화배우 이동준(좌측)과 동원족발 신동원대표 (우측)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주말 필자가 체육관을 운영하는 강동구 성내동에 귀한 손님 두 분이 방문하였다. 첫 번째 주인공은 만능 텔런트 이동준이었다. 이곳 성내동 전통재래시장에서 마침 그날 서울시에서 상권을 살리기 위해 주관한 맥주 축제를 빛내기 위해 이동준 선배가 참석한 것이다.

마침 이곳에서 KBS 스턴트맨으로 <야인 시대> 등 국내 사극을 13년간 두루 섭렵하면서 활동한 방송인 신동원 씨가 동원한방족발 대표를 맡고 있어 두 사람은 모처럼 상봉, 옛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호탕한 성품의 신동원 대표는 영화에서 스턴트맨으로도 많이 알려진 배우 출신으로 이후 사업가로 변신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한편 불의와 타협 하지 않는 의리의 사나이 이동준은 지난 2월 인천 강화군의 한 요양병원에서 뇌경색으로 타계한 가수 방실이가 생전에 어려움에 처하자 그녀를 돕기 위해 자선 콘서트를 여는 등 방실이의 17년 투병 생활을 챙기며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준 의협심 강한 방송인이다..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가도현 대표


두 번째로 방문한 손님은 전직 복서 출신으로 사업가로 성공한 가도현 대표다. 1972년 충남 광천 태생으로 국가대표 출신 김치복 관장이 운영하는 대성목재 체육관에서 1990년 9월 프로에 데뷔, 4년 동안 8승(6KO) 4패를 기록 국내 J.페더급 1위에 등극한 하드 펀처였다.

현역 시절 바위처럼 묵직한 펀치로 중견 복서인 김창용, 김성문, 김찬종 3명의 복서를 상대로 3연승(2KO)을 거둔 경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1994년 7월 가도현은 신남철과 벌인 KBC JR. 페더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패하자 미련 없이 22세에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이후 군 제대 후 어학 교재 판매회사에 취업해 억대 연봉을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가도현은 사기를 당해 집과 땅을 모두 잃고 무일푼으로 전락, 험난한 암흑기를 맞이한다, 그의 인생에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복서 생활에서 터득한 강철처럼 강하고 생고무처럼 질긴 투혼을 발휘 2008년 국내 최초로 개그맨 결혼식 사회 연예인을 섭외해주는 ‘레드펌킨’을 차렸고 무일 영화사 부대표를 겸직하면서 멀티 사업가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심영자 회장(좌측)과 가도현 레드 펌킨 대표(우측)


가도현 대표와 필자는 1984년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유인탁 선배의 소개로 오래전 인연을 맺었다. 그의 스승인 김치복 관장은 그날 필자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가르친 제자 중에서 가장 정의로운 선수가 바로 가도현 이라고 말하면서 사제지간의 케미를 보여주었다. 사실 가도현 대표는 2017년 4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심영자 88 프로모션 회장이 말년에 생활고에 시달리자 생활비를 수차례 전달한 의로운 복싱 인이다. 이런 선행을 베푼 자랑 스런 후배 복서 가도현을 통해서 대한민국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 선생의 연락처를 받아 그분과 26년 만에 통화를 하는 감격스런 장면도 연출했다.

필자(죄측)와 전유성씨(우측)


필자와 전유성 선생과의 첫 인연은 1998년 김영랑 시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詩)에 나오는 구절처럼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서울체고 복싱장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오작교(烏鵲橋) 역할은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인 88서울올림픽(플라이급) 복싱 금메달 김광선이 담당했다.

방문 목적은 당시 슈퍼모델 선발전에 출전 예정인 이명주란 모델후보에게 복싱을 지도해달라는 부탁을 위해서였다. 당시 이명주 양은 인천체고 3학년 학생이었다. 곧바로 그녀의 담임선생인 송호철 인천체고 체육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 선생은 명주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맞다. 유순하면서 성실한 학생이라고 전했다.

송 선생은 이청하(서울시청감독) 김진영(동국대 복싱 감독) 선생과 함께 복싱계 3대 명필로 불리던 복싱인으로 세계챔피언 유명우, 동양 챔피언 송기연을 비롯, 김재휴, 돌석, 이기준, 양현태 등 명 복서들을 대거 배출한 지도자였다. 서울체고 복싱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그녀를 지도하던 어느 날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라 불리던 전유성 선생이 아내인 진미령 여사와 함께 체육관을 방문 그녀의 훈련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당시 두 분은 인사동 골목에 이색카페 ‘학교종이 땡땡땡’을 개업, 운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만 40세의 진미령 여사는 평소에 철저한 식단관리와 꾸준한 운동을 한 흔적 때문인지 상당히 젊게 보였다. 가수 진미령은 1977년 8월 1일 제1회 MBC 서울 국제가요제에서 <소녀와 가로등>을 불러 입상, 우리에게 알려진 친숙한 가수다. 서울 국제가요제가 열린 8월 1일 그 날은 바로 1년 전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대한민국 올림픽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지 정확하게 1주년이 되는 뜻깊은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소녀와 가로등>을 작곡한 16세 소녀 장덕 양이 빵모자를 눌러쓴 귀여운 모습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진미령 여사에게 필자는 1979년 김자옥씨가 주연으로 출연한 MBC 드라마 주제곡 <하얀 민들레>란 곡을 가장 즐겨 듣는 곡이라 말하자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1989년 4월, 후에 WBC j 플라이급 챔피언에 오르는 최요삼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도 요삼이가 16살이었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의 화랑 관창이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순국할 때도 16살이었다. 각설하고 170cm의 훤칠한 신장의 이명주 양은 인천체고 육상선수 출신답게 복싱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이명주 양이 훈련하던 어느 날 올림픽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이 동대문구 이문동에 복싱체육관을 개관, 그곳에서 전유성 선생 이명주 양과 함께 참석 오찬도 함께 하면서 담화를 나누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곁에서 지켜본 전유성 선생은 집도 차도 없는 전형적인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사시는 분이셨다.

1998년 서울체육고를 방문한 진미령 전유성 커플


대중교통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필자가 근무한 서울체고에 도착, 이명주 양의 훈련을 지켜보다 운동이 끝나면 필자와 오찬을 함께 한 후 헤어졌다. 그렇게 약속된 한 달이 지났고 그녀는 슈퍼모델선발전에 출전하기 위해 떠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안타깝게도 그녀가 본선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며칠이 지나 이명주 학생과 그의 언니가 필자를 찾아왔다. 그리고 50만 원이 든 봉투와 양주 한 병을 건넨다. 전유성 선생님께서 그동안 수고했다 하시며 전해주라고 했다면서. 당시 서울체고에서 강사들 한 달 급료가 65만 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액수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 4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러 전유성 선생과 그때의 추억을 주제로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유성 선생은 필자에게 특유의 어투로 그때 미령(진미령)이랑 함께(서울체고) 갔었지.. 라고 말씀하셨다. 대화를 나누던 중 필자가 전유성 선생께 “저도 작년에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담에 가도현 대표와 함께 선생님이 계신 그곳에 가서 뵈면 그때 친구처럼 대하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전유성 선생은 “그럼. 60살 넘으면 모두 다 친구지.” 하면서 흔쾌히 화답해주셨다. 예전에 희극배우 이홍렬 씨가 환갑을 맞이하자 전유성 선생이 “홍렬아, 너도 이제 환갑이구나. 환갑 선물로 나하고 친구 하자. 이제 와 생각하니 말 통하면 친구지 나이가 같다고 친구가 아니다.”라고 모 방송에서 말했던 내용을 필자가 그대로 패러디 한 것이었다. 세월은 말이 없고 지난 추억만 그림자처럼 남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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