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정용일 기자] 국가 간 경제발전에 차이를 가져온 요인을 연구한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제임스 로빈슨(64)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14일(현지시간) K팝과 K무비 등 한국의 문화·예술 분야 성공은 한국의 포용적 제도가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날 로빈슨 교수와 다론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3인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로빈슨 교수는 아제모을루 교수와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국가의 번영과 빈곤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제도를 지목하고 한국을 주요 연구사례로 소개한 바 있다.
로빈슨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포용적 제도에 기반한 한국의 놀라운 성공은 산업 성장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라 K컬처에서도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의 상반된 제도를 오랜 연구 주제로 삼기도 했던 로빈슨 교수는 한국이 성공적인 궤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경제 측면에서 한국과 북한이 보여준 격차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다룬 주요 사례 중 하나다. 일련의 제도 차이가 국가의 번영과 후생 측면에서 얼마나 극적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소위 소수 엘리트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소위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에 장악된 반면 한국은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를 구축해 폭넓은 기회와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극적인 사회이동과 혁신을 창출했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담을 이룬 나라 중 하나다. 우리는 삼성, 현대와 같은 산업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 K팝, 영화 측면에서도 이 같은 모든 혁신을 본다. 이는 한국의 포용적 제도가 허용 한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제도와 관련해 구체적인 의제는 알고 있지 못하다. 한반도 국가의 지난 70년간 궤적에 대해 연구해왔고, 어떻게 한국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됐는지를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로빈슨 교수는 과연 북한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그는 해당 질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전체주의적 독재라는 상황에 갇혀 있다. 우리가 세계 역사에서 배운 것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착취적 제도로부터의 전환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시민이 독재정권을 향해 사회를 바꾸도록 압박해야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을 생각해보라. 미국 사회를 바꾼 것은 미국 남부 지역에서 착취적 제도 아래 고통받던 이들의 집단행동이었다."고 말하면서 결코 쉬운 해결책이 아님을 강조했다.
요즘 한국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 역시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로빈슨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저출산·고령화 두 문제에 대해 내가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적응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연금이나 재분배 이슈에서 여러 정부의 정책은 서로 다른 인구구조 트렌드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그에 따른 많은 적응이 필요하다. 내가 그에 대해 심플한 해법을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민자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알다시피 정치적으로 적응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여러 불안정한 요소들로 인해 한국경제가 요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 경제의 동향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경제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그는 의견을 내놓았다.
중국은 현대적인 포용 경제와는 맞지 않는 정치 체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연 로빈슨 교수는 "전체주의적 정치 체제하에서 포용적 제도를 창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유지할 수는 없다. 1970년대 말 이후 우리가 봐온 것은 중국 경제가 매우 포용적으로 됐다는 것이다. 그것은 많은 기회를 창출했고 중국의 발목을 잡아 왔던 많은 사회주의 경제 요소를 해체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중국의 정치 체제 아래에선 그것을 지속할 수 없다.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경제적 성공이 40∼60년간 지속된 사례는 많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 온 것과는 다른 방식의, 지속 가능할 수 없는 발전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국경제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지적되어 온 소수 대기업 주도의 경제구조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것이 경제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해당 문제에 대해 그는 "미국도 역시 대기업에 의해 경제가 지배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이 대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거기에선 항상 전투가 벌어진다. 대기업들은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원을 갖고 있고,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후생을 희생해 독점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경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정부가 규제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수출지향적 경제의 전형적인 사례로, 이는 경쟁과 효율성을 압박하는 동력이 됐다. 한국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 50년간 오랜 길을 걸어왔다.
로빈슨 교수는 "이 같은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소수 대기업 경제구조인 현 한국의 상황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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