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여행’은 이래서 좋아요!] 함께 남도 여행 색다른 맛을 보고 역사와 교감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떠나는 ‘함께 여행’

편집부 승인 2024.10.11 15:42 의견 0

마음에 맞는 친구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을 나는 ‘함께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나이 차가 있고 하던 일도 다른 다양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 즐겁다. 서로 배우고 가르쳐 준다.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끝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관계가 더 끈끈해진다. 홀로 여행, 가족여행에 이어 ‘함께 여행’을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세연정에서 풍류를 즐기던 고산 윤선도를 만나다 – 보길도

[시사의창 2024년 10월호=서병철 기자] 남도 여행은 특히 설렌다. 남도 음식을 먹을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면서 당장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과거 역사를 마주하면서 선인들의 철학과 풍류까지 느낄 수 있어 좋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남도 여행 즉 보길도와 남해를 거쳐 목포까지 들뜬 마음으로 떠나보자.

내 인생의 첫 피신처였던 보길도
힘겨워하는 나 자신을 위로받고 싶어 찾았던 곳, 보길도였다. 그 당시 첫 직장이었던 대기업을 그만두면서 우선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려면 그게 좋을 것 같은 판단이 들어서였다. 왜 하필 보길도였을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립된 섬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 그 후 강산이 두 번 바뀌고 몇 년이 흘렀기에 지나간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그 당시 모습이 떠올랐다. 도착하자마자 일반 자전거로 보길도 섬 일주를 해 보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보길도는 생각보다 오르막이 많아서 결국 완주는 중도에 포기했다. 한낮의 더운 날씨에 체력도 한계에 도달하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히치하이크(hitchhike)를 하자는 다소 무모한 결정을 내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불쌍하게 보였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씨 착한 트럭 기사님이 나를 태워주는 것이 아닌가. 빌린 자전거를 뒤에 싣고 뒤 짐칸에 타려고 했는데 “앞에 타요”라는 말에 얼른 앞자리로 향했다. 옆에 부끄럼이 많은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담소를 나누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해수욕장 해변에서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채 바다를 바라보았었는데. 그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보길도는 전남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8.3km 떨어진 아주 외진 섬이다. 고산 윤선도와 보길도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고산은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로 가는 중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다가 심한 태풍을 피하고자 우연히 들렀다가 수려한 산수에 매료되어 머물면서 전원생활을 했던 곳이다. 나에게 보길도는 내 첫 직장을 그만두고 선택한 피신처였다. 그때와 달리 이번 여행은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를 섬세하게 따라가면서 보길도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아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무명 배우 같은 돌탑 – 보길도
동천석실 바로 아래 침실 안 네모난 창에서 바라본 부용동과 낙서재 – 보길도


우연히 만난 노인, 숨겨진 고산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먼저 동천석실로 향했다. 고산 윤선도가 공부하며 차를 마시기 위해 절벽 위에 지은 정자다. 올라가면서 마주하는 작은 돌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숲 사이로 작은 햇빛이 조명이 된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돌탑이 갑자기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아서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하면서 최선을 다해 연기에 몰입하는 무명 배우 같았다.
고산이 차를 끓이고 마셨다는 차바위에 올랐는데 운 좋게도 이 마을에 사시는 예전에 문화재 해설사를 했던 노인을 만났다. 지형이 학처럼 생긴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소개를 필두로 숨겨진 고산 윤선도 관련 역사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이어졌다. 앞에 놓인 두 개의 바위인 용두암은 도르래 같은 장치를 설치해서 통 속에 넣은 음식을 줄에 매달아 머물렀던 살림집인 낙서재로부터 전달해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
육안으로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그런 과학적 사고를 하고 실천까지 신기할 따름이다. 동천석실 아래 침실 안으로 들어가서 네모난 창을 통해 부용동과 낙서재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시를 쓰고, 차와 술을 즐겼을 고산 윤선도를 생각하니 부러워서 다만 며칠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머물고 싶었다.

‘들어열개문’이 올려진 세연정에서 자연과 내가 교감하는 듯하다 – 보길도


세연정에서 역사와 자연과 교감하다!
여행하면서 정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루이 14세 절대왕정 시대 통치 이념까지 투영된 베르사유 정원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정원은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기하학적 대칭성이 특징이다. 중국과 일본 정원도 인위적으로 자연을 변형시키는 인공적 미를 보여준다. 반면에 영국식 정원은 자연스럽다. 지난 영국 여행 시 운 좋게도 옥스포드 현지인 집에서 전형적인 영국식 정원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었다. 꽃, 야채, 과일 정원이 있는 정원 안의 풍경과 낮은 담 너머 풍경들이 어우러져 드넓은 풍경식 정원처럼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그럼 한국 정원의 매력은 무엇일까. 최근에 한국의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 기술사인 정영선의 전시 <정영선: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둘러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강연 노트에 적힌 정원이란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정원은 자연과의 교류이다’, ‘정원은 진정한 휴식 넘어 활력의 장(場)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보길도 세연정이 바로 그 정원이다.
조선 최고의 풍류 가인 고산 윤선도가 자신이 즐기려고 만든 정원, 세연정으로 향했다. 세연정이란 ‘물이 빙빙 도는 정자’라는 의미 혹은 ‘물에 씻은 듯 깨끗해 기분이 상쾌해진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자연 연못을 중심으로 세연정을 지었다. 그 뒤에는 약간의 인공 연못과 설치물도 있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떨어진 동백꽃으로 누군가가 글자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 일행을 반기는 플래카드처럼 미소를 짓게 했다. 혹약암, 비홍교를 지나 드디어 세연정이 눈에 들어왔다.
첫인상은 왕실 정원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수수해 보였다. 연못 안에 작은 돌이 커다란 바위를 이고 있는 모습, 바위는 조상 대대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우렁찬 소리를 지르는 장수 같았다. 주변 자연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연못 물속에 비친 누각과 나무의 잔영이 멋을 더했다.
연못에 아동을 태운 배를 띄웠고, 어부사시사를 부르게 하고 무희들은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이 물에 비쳤다고 전해지는데 직접 보지 못하니 상상하며 그의 풍류를 부러워할 수밖에.
정자 안의 대청마루에 앉았다. ‘들어열개문’을 모두 올려져 있다 보니 자연과 정자가 연결되어 있다. 시조 ‘오우가’에 나오는 주인공 중 물, 돌, 소나무를 만났다. 밤이 아니기에 달을 만날 수 없었고, 대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360도 뷰를 정자 안에서 그리고 정자 밖에서 걸으며 자연과 나 자신이 교감하는 듯하다. 화려한 인공적인 미의 방해를 받지 않아서 온전히 나와 자연이 연결되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법정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해남


텅 비어야 울림이 있다
명량대첩의 신화, 불멸의 땅 남해 우수영 문화마을로 넘어왔다. 그중에서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의 생가터에 조성된 법정 스님 마을도서관을 찾았다. 후손 중 한 분이 법정 스님에 대해 안내했다. 2010년 돌아가시기 전에 무소유 철학 중 ‘하지 말라’는 사불가(四不可)를 열반송처럼 남기셨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거창한 장례식을 일절 행하지 말라. 관도 만들지 말고, 수위도 입히지 말고, 입은 옷 그대로 다비하라. 화장 후 사리도 찾지 말고, 탑이나 부도도 절대 세우지 말라. 말빚을 남기고 싶지 않으니, 모든 책은 더 이상 출간치 말라.’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받들어서 ‘무소유’라는 중고책 가격이 급등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생생하다.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많이 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철학인 무소유를 실천하신 진정한 위인에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밖으로 나오면 옛 집터 자리에 빈 마음으로 시작하는 돌로 새겨진 문구가 있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다시금 무소유라는 단어를 소환하며 곱씹어 보았다.“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토종닭 코스요리_닭 회의 가슴살 부위와 모래주머니 – 해남
뷰맛집에서 깔끔한 회 정식에 반하다 - 해남


쫄깃하고 담백한 토종닭 코스 요리, 진정한 남도 맛 기행을 완성하다
해남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요리가 있다. 토종닭 코스 요리다. 닭 회, 닭 불고기, 백숙,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흑임자 녹두 닭죽이 순서대로 나왔다. 닭 회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닭가슴살 부위와 모래주머니가 나오는데 참 기름장에 콕 찍어 먹으면 쫄깃하고 담백한 맛에 술을 절로 부른다.
주인아주머니와 자식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니 순식간에 친해졌다. 한 쌈을 가득해서 입에 쏙 넣어주었다. 동료들이 사진을 찍어주며 박장대소했다. 이런 재미가 함께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최고의 닭 요리 맛에 감탄 또 감탄했다.
해남에 또 다른 뷰맛집이 있다. 깔끔한 회 정식이 별미인데 커다란 통창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먹기에 입과 눈이 동시에 즐겁고 행복했다. 맛나게 먹고 나오는데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 앞에 이 문구가 또 한 번 즐거움을 주었다. ‘그대라 고마워요. 그래서 행복해요. 그대를 사랑해요.’

고하도의 어뢰정 은닉을 위한 터널을 파는 조선인 징병 대상자 모습 – 목포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다시금 기억하며
다음 목적지는 목포다. 목포 근대문화 공간을 찾았다.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의병 항일운동, 소작 쟁의 등 민족의 저항 역사가 함께 숨 쉬는 곳이다. 1897년 목포가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외국인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류지 지역이라고 한다. 개항 당시에는 조계지 외에는 집을 지을 공간이 없어서 갯벌과 바다를 매립공사를 해서 근대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철도 건설 관련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 쌀의 수탈을 위해 공사 기간을 단축하여 3년 만에 호남선을 완공한 것이다. 이유는 전라남북도에서 생산되는 쌀을 목포와 군산으로 쉽게 운반하여 일본으로 실어 가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아픈 역사도 있었다. 목표 앞 고하도에는 인간 어뢰정을 은닉하기 위해 인공 터널 20개를 팠다.
이는 미군의 상륙을 대비하기 위해 일제가 조선인 징병 대상자 중 을종을 받은 이들을 동원하여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터널은 제주도의 경우 76개에 이른다. 일제는 이 인간 어뢰정을 카이텐이라 불렀는데, 바다의 가미카제 특공대와 같은 성격이었다. 이러한 엄연한 역사적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식민 지배가 한국 발전을 위함이었다는 억지 주장은 더 이상 언급조차 할 가치가 없다.

신안 해저 유물의 비밀 열쇠를 발견하다
목포 해양 유물 전시관을 가면 신안 해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이래 인류는 바다를 통해 육지와 섬을 넘나들며 광범위한 교류 활동을 해왔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중국과 일본과도 바다를 이용해 대외교류하면서 성장했다.
신안선은 중국 원나라 때인 1323년 항해를 했고, 중국 취안저우 지역에서 만든 목재 범선이었다. 그때 잠긴 배에서 유물이 나왔다 하더라도, ‘어떻게 역사적 고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바로 목간이 그 비밀의 열쇠였다. 목간은 문자가 적힌 나무 조각을 뜻하는데,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쓰였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목간은 무역품 화물표로 쓰여서, 물픔 이름과 수량, 화물주, 날짜 등이 적혀 있다. 흥미롭게도 신안선에 탄 사람은 중국 선원과 상인을 비롯하여 일본 유학 승려와 상인들로 추정된다고 한다. 13~14세기 중국과 일본의 해상 무역은 중국 무역 담당 조직과 일본 사찰·신사 등 종교단체의 자본이 관련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케이블카에서 고소 공포증에 즐겁고 노을에 감탄하다 - 목포


케이블카 안에서도 이렇게 즐겁구나!
고하도를 출발해서 고하도 스테이션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탔다. 아래가 투명한 케이블카다, 함께 간 일행 중 한 사람이 고속 공포증이 있어서 아래 바다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제발 한 번만 봐요”라고 강요해도 막무가내다. 역시 함께 여행하면 이런 즐거움이 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고 하면서 붉은빛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꺼내서 최고의 일몰 사진을 찍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붉은 하늘 밑으로 다양한 크기의 다도해 섬들, 남해바다, 현수교 다리, 마주치는 케이블카가 다채로운 사진을 찍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찍어주며 웃음꽃이 끊이지 않는 작은 케이블카 공간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동호회 모임에는 늘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을 좋아하는 동문회원과 함께한 남도 여행에서도 바로 그 고수 한 분이 이끌어 주었다. 끼니마다 찾아간 현지 맛집은 단 하나의 실패도 없었다. 진정한 맛집에서 다양하고 맛깔나는 남도 음식 매력에 흠뻑 빠졌다.
여행지 선정도 남다르고, 함께 이동하면서도 각자가 따로 스스로만의 여행을 즐기며 밤에는 여행과 인생 이야기를 늦게까지 나누었다. “혼자 여행을 가려고 하면 오늘 당장 출발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면, 다른 사람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언이다. 이번 여행은 다른 사람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서 얻은 소중한 함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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