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 영화 ‘장손’을 통해 살펴보는 가족의 모습, 그리고 시사점

편집부 승인 2024.10.11 15:04 의견 0
영화 <장손> 포스터


[시사의창 2024년 10월호=의향도 웹소설 작가] 들어가며
차량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과연 어떻게 운전을 했던 걸까? 장거리 여행을 지도 하나 챙겨가며 떠나던 그 시절 어른들의 모습이 기억이 나는데, 지도 하나로 그 길고 복잡한 길을 어떻게 찾아갔던 걸까?
휴대폰 없던 시절에는 과연 연애를 어떻게 했던 걸까? 지금은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실시간 연락을 하며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잡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집 전화 하나로 어떻게 약속을 잡고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지 새삼 신기하다.
특히 집으로 전화했을 때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의 부모가 전화를 받으면, 그 어색한 통화를 어떻게 했던 건지,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금보다 혼인율이 높았던 것은 참 재미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1980년대와 1990년대는 연간 혼인건수가 40만건 정도, 반면 2023년 기준 연간 혼인건수는 19만건)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회사 업무를 어떻게 했던 걸까? 지금은 컴퓨터로 타자 치고 엑셀과 한글 작업하면서 보고서 작업을 해나가지만, 그리고 관련 정보는 인터넷으로 조사하지만, 컴퓨터와 타자기에 익숙하지 않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대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걸까?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자료는 책을 찾아가며 조사했을 텐데 그 답답함을 어떻게 견뎠던 것일까?
이래저래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위의 질문들을 던져봤다. 필자도 과거를 살아온 사람이지만 새삼 예전의 일들이 신기하다. 그러니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 세대가 어른들 세대를 잘 이해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장손’은 3대에 걸친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6.25를 경험했던 할아버지 세대와 군부독재를 경험했던 아버지 세대, 그리고 현 세대를 사는 주인공 장손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이다.
그 어떤 가족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각 구성원들의 심리상황과 갈등 묘사가 치밀하고 꼼꼼해서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았다.

영화 <장손> 속 장면


살펴보기
영화 ‘장손’은 오정민 감독의 작품이다. 오정민 감독은 연극영화과가 아닌,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몇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장손’을 통해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장손’에는 강승호, 우상전, 손숙, 차미경, 오만석, 안민영, 김시은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2024년 9월 11일 개봉했는데 2023년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넥스트링크상’을 수상했고,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 수상을 하기도 했다.
독립영화 특성상 관객수는 적은 편이지만 네티즌 평점은 9.29점이고 실관람객 평점은 8.46점으로 낮지 않다.
많은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지 않다 보니 필자는 심야영화 시간대에 비로소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액션장면 하나 없이도 심야 상영시간 내내 그 어떤 순간도 졸립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작품의 주요 장면, 대사 등을 살펴보고 필자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해보겠다.

영화 <장손> 속 장면


① “조상이 귀신이라 카믄 제사시간 바뀌더라도 귀신같이 알고 와야 되는 거 아이가?”
어느 한 시골 마을에 가업으로 3대째 두부공장을 운영 중인 집안이 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김승표, 아버지의 이름은 김태근이다. 영화 초반은 이 집안의 제삿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집안 여자들은 뜨거운 불판 앞에서 전을 붙이고 있고, 임신한 손녀딸이 덥다고 하는데도 할머니는 투철한 절약정신으로 인해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다. 반면 남자들은 방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집안 여자들은 제사 준비를 하면서도 자기들끼리 모이면 제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임신한 손녀 미화와 그의 어머니 수희, 그리고 고모 혜숙간의 대화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어머님이 이번 설에 그러시더라고, ‘나는 이제 제사 안 지낼 거니까 너희들도 오지 마라’고”
“그럼 사돈 집안에서 뭐라 안 카나?”
“시부모 치매 수발을 십년이나 했는데 누가 뭐라 카겠노?”(내심 친정의 제사에 대한 불만을 넌지시 비침)
(고모가 끼어들며)“조상이 귀신이라 카믄 제사시간 바뀌더라도 귀신같이 알고 와야 되는 거 아이가?(제사를 반드시 새벽 12시에 지내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 다같이 교회 댕기믄 제사도 안 지내고 얼마나 좋노?”

영화 <장손> 속 장면


② “장손 왔다! 에어컨 틀어라!”
할아버지 승표와 할머니 말녀는 장손 성진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특히 말녀의 장손 사랑은 할머니와 손녀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느껴진다. 그 대화 내용은 이러했다.
“저번 주에 이모하고 성암보살한테 갔는데 올해 할아버지랑 내캉 이별수가 있다고 하드라.”
“할매. 그 보살은 성진이 어렸을 때 성진이 보고 대통령 된다고 했다.”(보살 말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
(할머니는 버럭하며)“와? 우리집 장손이 대통령 되지 말란 법 있나?”
바깥 세상에서 장손은 무명 영화배우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커다란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장손 성진이 집에 오자 할머니는 “장손 왔다! 에어컨 틀어라!”고 한다. 아까 임신한 손녀가 에어컨 틀어달라고 할 때는 꿈쩍하지 않던 할머니가 장손이 오자마자 에어컨을 틀라고 하면서 지극한 장손 사랑을 보여준다.

영화 <장손> 속 장면


③ “저 두부공장 안 할 겁니다.”
장손이 와서 기쁜 것도 잠시였다. 그들은 크고 작게 갈등요소를 보여준다.
아버지 태근은 성진에게 “니는 돈도 안되는 딴따라 그거 해서 뭐할래? 어차피 니가 할긴데 여기 내려와서 공장일이나 배워라”고 하고 성진은 “딴따라? 두부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라고 하며 불만을 표출한다.
가족들 간 갈등은 영화 중반부에 더욱 표출되는데, 장손의 권유로 밤 9시에 제사를 지낸 후 할아버지 승표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할아버지)“다들 원하니까 제사를 지내긴 했지만 아직 날도 안 지났는데 어떻게 음식을 먹어?”
(고모)“이제 우리 이민 가면 잘 만나지도 못하는데 오늘까지 그럴 거에요?”
(할아버지)“이민 가도 어떻게 월남 빨갱이한테 가?”
(아버지)“그게 언제 적 얘기입니까? 요새 베트남 경제성장률이 7%가 넘습니다.”
(할아버지)“니는 그렇게 똑똑한 놈이 두부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어?”
(아버지)“공장장도 내보내고 전부 자동으로 바꿀 겁니다.”
(할아버지)“니가 뭘 안다고 기환이를 짤라?”
(아버지)“아버지는 가만히 계세요. 제 때는 제 방식대로 할 겁니다. 성진이가 하면 성진이 방식대로 하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성진)“저 두부공장 안 할 겁니다.”
(아버지)“니가 안 하면 누가 해?”
(성진)“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되죠.”

영화 <장손> 속 장면


④ “나 죽더라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
삐걱거리면서도 그나마 유지되던 가족들 간의 관계는 할머니 말녀가 죽으며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그녀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된다.
그녀의 빈자리는 성진이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오니 며칠 동안 치우지도 않아 상해버린 음식들에서 드러난다.
장례식장에서도 많은 가족들이 말녀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그 와중에도 누구의 손님이 부의금을 가장 많이 냈는지를 경쟁하는가 하면, 남겨진 것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기도 한다.
장례식 후 고모 혜숙과 아버지 태근, 어머니 수희와의 대화는 이러했다.
“야. 니 일이라도 그래 말할 거가? 너만 효자가?”
“누나가 함 봐바라. 통장은 그거 밖에 없다 아이가?”
“내 월급에서 백만원씩 엄마가 관리 했던한 거 니도 잘 알잖아.”
“형님. 통장이 있으면 우리가 드리지예. 왜 안 드리겠습니까?”
영화 후반부에서는 주인공 성진이 그의 아버지, 고모, 할아버지 등을 1대 1로 접하고 대화하며 이어진다.
결국 각각 마음 속 깊은 곳 자기 심정을 말하는데 할아버지 승표는 손자를 자기 아들로 착각하며 자신의 과거 관련한 이야기를 고백하기도 한다.
그 후 승표는 성진에게 “나 죽더라도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무언가를 건넨다.(그게 무엇인지는 잘 유추해보시거나, 궁금하면 영화를 관람해보시기를 권유드린다.)

영화 <장손> 속 장면


필자의 생각들
① 제사 관련 변화와 생각
이 영화에서는 그 어떤 영화에서 보기 힘든 실김나는 제사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 묘사되는 제사에서는 조상들을 위한 상차림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김씨 집안의 남성인 승표, 태근, 성진만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바로 뒤에 사위들이 있었고, 그 뒤에 집안의 말녀를 비롯한 여자들이 서 있었다.
말녀는 성진의 할머니로서 집안 서열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제사에서는 뒤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제사 음식은 여자들의 노력으로 마련되었지만 막상 제사공간의 맨 앞에는 제사 음식에 큰 기여를 하지 않은 남성 세 명만이 서 있다는 점에서 혹자들이 보기에는 모순되는 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2023년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성인 남녀 천오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성인 10명 중 6명 정도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이유로는 ‘간소화하거나 가족 모임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시대 변화로 더는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에서는 같은 해 11월 기제(조상의 사망일에 지내는 제사)의 경우 밥과 국, 술과 과일 3종 등을 포함, 간소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전통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을 발표했다.
제사 시간은 오후 6시부터 지낼 수 있으며 제사음식은 고인이 평상시에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도 무방하다고 했다.
또한 제사의 주재자도 성별을 따지지 않고 가장 가까운 연장자가 주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면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에서는 “제사의 핵심은 사랑과 공경으로 정성을 다함에 있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을 그리워하는 가족이 모여 안부를 묻고 화합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며 “제사상은 간단한 반상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더 올리거나 생일상처럼 차려도 좋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기 위원회에서도 “제사가 조상을 추모하고 추억을 되살리며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하는 길사(吉事)이기 때문에 제사로 인해 불화가 생긴다면 옳은 방법이 아닐 것”이라고 당부했다.

② 남녀 평등 관련
영화 속에서는 할머니 말녀와 할아버지 승표가 손녀보다 장손을 편애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장손에 비하면 그 집안 여자들은 찬밥 신세 같아 보인다. 어찌 보면 예전 집안 어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또한 저분들의 생활과 인식을 참고한다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제사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그렇다. 저분들 입장에서 장손은 훗날 자신들의 제사를 주관해 줄 차기 리더인 셈이다.
자신들의 제사상을 주관해 줄 인물이기에 그에 대한 예우를 해주는 셈으로 보인다. 이것은 마치 대통령에 대한 예우 또는 기업 CEO에 대한 처우와도 비슷한 이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대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 여성도 제사를 주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른들의 인식도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녀 평등의 문제는 집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문제인식을 가지며 변화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금년 2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차별 경험’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여성 응답자 431명 중 40.6%가 성별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지난해 9월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성차별적 경험 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중 313명(31.3%)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특정 성별을 지칭하는 부적절한 호칭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외에도 276명(27.6%)은 ‘여자는~’, ‘남자는~’으로 시작하는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다고 응답했다.
커피 타오기, 애교 등 성역할 수행을 강요받은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 1천 명 중 264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이 조사는 개인들의 주관에 따른 응답이었기 때문에 객관성을 100% 확신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 중 상당수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아직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갈등요소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다만, 사회의식이 계속 변화되고 있으므로 조금씩 가치관, 조직문화, 시민의식의 변화 등을 통해 성차별 갈등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③ 세대간 갈등
한국은 빠르게 발전해왔다. 할아버지 승표는 일제강점기 또는 후진국의 대한민국을 살아왔고, 아버지 태근은 개발도상국의 대한민국을 살아왔으며, 주인공 성진은 선진국인 대한민국을 살고 있다.
그러니 세대간 인식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인식의 차이는 각 시대에 따른 역사경험에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6.25를 경험한 승표는 ‘빨갱이’라는 말을 자주하며 누가 묻지 않아도, 공산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대놓고 자주 드러낸다.
군부독재를 경험한 태근은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도 학생운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가 개개인에게도 상처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한국이 빠르게 변화했다는 것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발전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나라가 발전한 데에는 국민들 모두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고생했던 반면, 너는 편했어’는 잘못된 생각이다. ‘내 생각은 옳고 어른들 생각은 잘못되었어’도 잘못된 생각이다.
각각 그런 인식과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을 이해하며 갈등보다는 화합을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듯이 그래서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기성세대와 MZ세대, 남성과 여성 모두 나라의 주인이다.
그들이 서로간 미워하고 다투지 않도록 모두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잘 화합하는 나라가 되도록 화합의 정치를 해주시기를 부디 당부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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