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여행] 잃어버린 듯 잃어버리지 않은 30년 전의 추억

일본, 변하지 않았지만 변한 것들

편집부 승인 2024.10.11 14:51 의견 0

지난 8월말과 9월초에 걸쳐서 일본 열도를 훑고 지나가며 큰 피해를 남겼던 태풍 산산의 경로와 이동속도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던 때 마침 동경에 출장 중이었다. 때문에 8월 27일 현지 거래처와 잡혀 있던 라운딩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하루라는 빈 시간이 주어져 무엇을 하며 보낼까를 고심하던 중에 30여년 전 동경 유학시절에 살던 곳과 가난한 유학생의 생계와 학비를 보태주었던 아르바이트 가게들을 돌아보는 숙제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가와구치역 전경
가와구치역

[시사의창 2024년 10월호=김세전 전략사업부 대표] 사라져버린 30년 전 추억
도쿄의 동북방향 경계에 있는 사이타마현 가와구치구. 이곳이 필자가 자취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지역이다. 30여년만에 찾아온 가와구치역 앞의 전경은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역 근처는 과거에도 번화한 지역이었기에 건물의 스카이라인은 거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들이 바뀌었고, 디자인들이 좀더 현대화되어 있는 정도의 변화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서 3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을의 풍경이 펼쳐졌다. 전혀 길을 찾을 수가 없었고, 새로 생긴 건물과 서로 위치를 바꾸거나 사라지고 새로 생긴 가게들로 필자가 살던 아파트(한국식으로는 다세대주택)와 아르바이트를 했던 파친코, 신문배달 보급소, 야키니꾸 가게 등이 모두 사라졌고 찾을 수가 없었다.
2년여를 살았던 다세대주택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에 한국음식을 파는 간판이 걸려있고, 가장 오랜 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신문배달 보급소는 아예 위치조차 찾을 수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3번의 변신 후에 옛추억을 찾으려는 것은 시도자체가 무리 였었던 것일까?
아쉽지만 그래도 하나의 숙제를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은 든다. 지난 30여년간 출장으로 동경을 무수히 방문하던 중에 언제든 한번은 예전의 추억을 둘러보아야지 했던. 바로 그 숙제.

1990년대 도쿄
1990년대 서울


상전벽해(桑田碧海-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다)
30년을 잃어버렸다고는 하지만, 변한듯 변하지 않은 나라 일본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한국은 선망의 나라가 되어있다. K팝, K드라마, K뷰티 그리고 하이테크의 부유한 나라이자 부정한 대통령마저 국민의 힘으로 갈아치워버리는 역동과 파워의 나라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전의 기억을 가진 30년 전의 일본인에게 한국은 한때 그들이 지배했던 동남아 제3국 수준의 조센진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버블붕괴와 동시에 30년을 잃어버린 일본에 비해 한국은 수직상승의 역동성을 보여왔다. 30년 전의 동경은 전세계의 사람들이 가전제품을 사제기하기 위해 아키하바라를 찾아왔지만 이후 한국의 가전에 밀려 지금의 아키하바라에서는 전자제품이 완전히 밀려나고 애니메이션과 피규어 마켓으로 전환된 것을 보면 그동안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한편 메인도심의 스카이라인은 지난 30년간에도 큰 변화가 없다.

신사의 장송과 어우러진 도쿄타워의 모습


이미 30여년 전 일본 경제는 최고점에 이르렀었고, 이후에 버블이 꺼지며 잃어버린 30년이 찾아왔기에 이미 30여년 전 메인도심의 건물들은 도심을 꽉 채우고 있었기에 30여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크게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건물에 붙어있는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30여년의 세월을 보내며 ‘유지’와 ‘성장’으로 대변되는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피부의 촉감으로 느낄 수 있었고 추억할 수 있는 30년간 오가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한시대를 살면서 이러한 변화를 느껴볼 수 있는 것도 개인적인 행운이리라.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30여년 전에도 지금도 좋아하는 라멘 맛을 보기 위해 우에노(上野)에 들렀다. 여전히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공원의 한적함이 세월이 지난 후에도 반기는 듯한 느낌이다.

30년전에도 지금도 같은 모습을 지닌 라멘집(친친켄)
수십년간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 ALTA 비전신주쿠(新宿)역(동쪽출구)앞


지난 세월을 잠시나마 떠올려보려 찾아갔던 그곳에는 낮설은 새로움으로 가득했고 예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추운 겨울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불판을 닦아내던 야키니쿠 가게도, 넘쳐나는 경제력을 도시 곳곳에서 쏟아내던 파친고 매장도, 정월 초하루 50여년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무려 14시간 동안 배달을 해야 했던 신문보급소도 모두 세월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은 우에노역(上野) 앞의 아메요코(アメ) 전통시장 안에 있는 라멘집(친친켄)의 쇼유라멘(간장라면)의 맛만은 변함이 없었고, 당시 500엔이었던 라멘값이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700엔이라는 것은 일본인들이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30여년을 잃어버렸다고 표현하는 자조 섞인 표현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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