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도 엄마(아빠)가 처음이라서 그래...” 초보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원망을 들을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초보 부모에게는 육아를 먼저 겪은 선배들이 곁에 있다. 그들의 부모님과 형제 자매 혹은 친구나 동료가 필요할 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서점에는 육아 관련 서적이 즐비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역시도 육아를 먼저 겪은 이들이 쓴 경험서이다. 만약 그 초보 부모가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온전히 스스로 육아를 해 내야 한다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이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이 ‘딱’ 그렇다. 세계 정당 역사상 전례가 없는 상황을 민주당이 겪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전체 당원 485만여 명, 그 중 당비를 내는 권리 당원이 245만여 명이다. 정당의 중심이 의원에서 당원으로 옮겨가는 과도기를 민주당이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어지며 정당 정치의 선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시사의창 2024년 9월호=이미선 기자]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 결과를 두고 당 안팎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일단 500만 명에 가까운 민주당 당원과 일반 지지층은 지난 4·10 총선에 이어 참여하는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며 지지세를 더욱 공고히 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과 보수층, 민주당 내 일부 세력들에서는 친명(친이재명)계의 당내 장악력이 명실상부하게 입증됐다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평가가 갈리는 데에는 정봉주 전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서의 지난 행보와 탈락의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봉주 후보의 탈락은 이번 전대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정봉주의 막판 최고위원 탈락…당 안팎의 엇갈린 시선
초반에 선두를 달리던 정 후보는 전대 중반부 불거진 ‘명팔이’(이재명 팔이) 논란으로 이 대표 측 강성 지지층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연출됐고, 이후 정 후보의 득표율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번 논란은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일 라디오에서 정 최고위원이 이 대표의 최고위원 선거 개입에 격앙돼 있다고 언급하며 시작됐다.
정 후보는 “이재명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는 ‘명팔이’를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고, 자신의 발언이 이 대표가 아닌 그 주변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계속됐다.
지역순회 첫 경선이었던 7월 20일 제주경선에서만 하더라도 19.06%를 기록했던 정 후보의 득표율은 마지막 지역 경선인 전날 서울경선에서는 8.61%까지 급전직하했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의원은 민주당 당원과 지지층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의지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서둘러 당심을 살피고 재빨리 사과했으면 그동안 정 전 의원을 애정하고 지지했던 당원들의 이해로 끝났을 일을 버티기와 되레 큰소리치는 구태의 관습으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정 전 의원이 정신을 차렸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입은 또다시 그를 변방의 호사가로 내몰았다.
한편, 이러한 상황을 ‘이재명 사당화’, ‘이재명 팬덤 정치’, ‘개딸의 침공’ 등으로 비아냥대던 세력들은 민주당을 걱정하는 척하며 이재명 물어뜯기에 여념 없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가 85.40%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만큼 향후 ‘이재명 친정체제’가 더욱 힘을 얻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알려진 것이긴 하지만 이 대표의 장악력이 다시 한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김민석 후보의 경우 이 대표가 사실상 ‘공개지지’를 하면서 이번 최고위원 선거에서 무난히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표는 7월 20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왜 이렇게 김민석 후보의 표가 안 나오느냐”고 언급했고, 3∼4위권에 머물던 김 최고위원은 이후 급격한 상승세를 탔다. 그만큼 지도부 전체에 대한 이 대표의 장악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이 나온다.
총선을 전후해 당내에서 힘을 완전히 잃은 비명계의 입지가 이번에 한층 좁아질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당 대표 경쟁자였던 김두관 후보의 경우 이 대표의 “일극체제”를 비판하며 대표 경선을 완주했지만, 최종 득표율 12.12%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 때문에 이 대표와 척을 지면 민주당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재명 절대론’까지 들먹이며 민주당의 현 상황이 매우 잘못된 것처럼 비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극성 지지층? No! No!…국내 정치에 대한 애정과 관심
하지만 민주당 당원과 지지층에서는 이에 대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정치 공작일 뿐이라 일축한다.
자신을 송파에 거주하고 있는 민주당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50대 여성 이 모 씨는 “이재명 대표라고 해서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지지는 없다”며 “다만 그의 지난 행적과 정치적 역량, 무도한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에도 여전히 건재한 청렴성이 그를 지지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로에 거주 중인 20대 박 모 씨도 “지난 대선 전에는 정치에 관심조차 없었는데도 이재명 대표를 싫어했다”며 “여론과 검찰이 그를 몰고 간 것에 나도 깜빡 속았다. 스스로 공부해 진실을 알게 되고 되레 팬이 됐다”고 밝혔다. 또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를 비방해서 낙선한 것이 아니라 이중적인 모습과 태도에 실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민주당에서 가장 큰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원의 뜻에 반하는 의원에게는 가차 없이 비난 문자가 쇄도하고, 당원과 뜻을 같이하는 의원에게는 칭찬 문자와 선물 공세가 이어진다. 이렇다 보니 의원들도 당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당원과 발걸음을 같이 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애정이 관심으로, 관심이 공부와 참여로…서로 공유하며 확산
그렇다면 민주당의 이러한 당원 정치 참여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정치를 알게 된 순간부터 민주당만 지지하던 당원도 분명 있는데 지금의 민주당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원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기자는 그 중심에 속칭 ‘개딸’이라고 불리는 민주당의 적극 지지층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젊은 여성 지지층이 이 대표를 아빠처럼 느끼고 애정하는 모습을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속 사랑 넘치지만 자기주장 강한 딸을 ‘개딸’이라 부르는 것에 빗대어 붙여진 별칭이다. 이들이 지난 대선을 통해 이 대표를 발견하고 알게 되면서 지지와 응원이 이어지며 민주당의 당원, 특히 권리 당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됐다.
‘개딸’의 정치 참여는 자신이 선망하는 대상에 관한 관심과 애정에서 기반한다. 소위 ‘덕질’이라고 말하는 팬덤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덕질’은 사전적 정의로 ‘특정 대상에 강하게 몰두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 일본의 ‘오타쿠’를 우리식 발음으로 ‘오덕후’로 칭하면서 변형된 단어다. 팬 활동가(선망하는 사람을 직접 응원하고 소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를 ‘오덕후’라 칭하고 여기서 ‘오’를 뺀 ‘덕후’라는 표현이 굳어지며 그들의 활동이 ‘팬질’ 혹은 ‘덕질’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초창기 젊은 여성이 주측이 된 이 대표의 ‘개딸’은 이 덕후들의 덕질을 통해 형성되고 발을 넓힌 것이 맞다. 그들의 덕질은 맹목적인 선망이 아닌 자료를 통해 진실을 찾고 공부하며 현재의 활동을 응원하고 공유한다. SNS와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해 공유된 사실들은 덕질의 대상자를 일반에게도 알리며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당의 ‘개딸’은 젊은 여성에서 중장년층과 노년층, 남녀를 가리지 않고 퍼져나간 것이다. 민주당의 당원 정치는 보수층의 비난처럼 ‘팬덤 정치’가 맞다. 하지만 극성 지지층은 아니다. 일반 팬덤의 세계에도 다수의 진정한 팬이 있고, 소수의 사생팬이 있는 것처럼 민주당의 당원 역시 나와 다름을 인정 못 하는 일부 극렬 지지층이 있을 뿐 나머지 대부분 당원은 순수한 정치 참여에 뜻을 둔 평범한 국민의 일부이다.
민주당의 전체 당원은 485만여 명이고, 당비를 내는 권리 당원은 245만여 명이다. 천 원짜리 당원이라고 비아냥대는 이들도 있지만, 245만 명이 1000원씩만 내도 민주당은 매달 24억 5천만 원의 당비가 들어오는 셈이다. 이게 최소 금액이라는 것 또한 놀랍다.
그래서 민주당의 행보 하나하나가 새로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애정이 없는 곳에는 단돈 100원도 아깝다. 매달 24억 5천만 원 이상의 가치를 민주당이 우리 정당사에서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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