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포비아' 확대 생산에 업계 직접 팩트체크 등 '골머리', 자칫 한국기업 성장 동력 잃을 수도...

셀 자체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 대부분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전무하다는 설명

정용일 승인 2024.09.02 08:15 | 최종 수정 2024.09.02 09:35 의견 0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요즘 전기차·배터리 업계가 전기차 포비아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천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는 가운데 전기차·배터리 업계가 사실과 다르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으로 도리어 포비아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부착된 전기차 관리 안내문.


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전기차 커뮤니티에서는 이용자들이 직접 일부 전문가들의 이력과 연구논문 실적 등을 자체적으로 찾아보며 '전문가 검증'에 나섰다.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차량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 유튜버는 최근 특정 전기차 전문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공개 저격하기도 했다.

이는 전기차·배터리 전문가로 알려진 일부 인사들이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전기차 포비아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들의 주장은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지난달 개최한 전기차 배터리 전문가 회의에서 A 교수가 "전기차 충전은 90% 이하로 해야 한다", "주차 중 불 난 차량은 전기차가 대부분이다" 등의 주장을 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일부 사실과 다른 얘기로 포비아를 조장한다"며 강하게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화재 안전 정책이 '충전량 제한' 등 본질과 관계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도 일부 인사들의 근거 없는 주장과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배터리 충전량 90% 이하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출입을 허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일부 관공서와 병원, 아파트 등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막거나 충전기 전기 공급을 차단하기도 했다.

전기차 화재 침스소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소유주 간 편 가르기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다만 업계는 충전량 제한이 근본적인 화재 안전 대책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기차 포비아가 과도한 양상을 띠자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29일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팩트체크'에 나서기도 했다.

배터리 충전량이 총열량과 비례해 화재의 규모나 지속성에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배터리 화재의 원인은 배터리 충전량 자체와는 관계없는 셀 자체의 제조 불량 또는 외부 충격 등에 의한 내부적 단락이 대부분이고 과충전에 의해 전기차 화재가 일어난 사례도 전무하다는 것이 현대차·기아의 설명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앞서 지난달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배터리 충전율과 전기차 화재 사고 사이의) 인과 관계가 입증된 바 없는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 전기차 화재 원인 1위는 '충돌'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호주 연구·조사기관 EV 파이어세이프(FireSafe)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2010년부터 지난 6월까지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511건으로, 이중 원인 미상(51%)을 제외한 화재 원인 1위는 '교통사고 또는 도로 파편과의 충돌'(119건·23%)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가뜩이나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기차·배터리 업계는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산업을 이끄는 한국 기업들이 국내의 전기차 포비아 확대 생산으로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러다 대표적인 시대착오적 규제인 영국의 '붉은 깃발법'이 재현되는 것은 아니냐"며 "(충전량 제한보다는) 전기차 화재 초기 진압을 위한 주수 장치(스프링클러) 확대와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한 폐쇄회로(CC)TV 확보, 분석기술 개발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붉은 깃발법은 19세기 말 영국이 마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게 하며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했던 법을 말한다.

다른 관계자는 "전기차 화재를 가장 걱정하는 쪽은 전기차와 배터리를 만드는 업체들이고, 이미 화재 안전 기술을 다양하게 개발하고 적용 중"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위해 전기차 안전을 넘어 활성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부착된 전기차 충전시설 화재 안전 안내문


정부는 업계·전문가 의견 수렴, 관계 부처 회의 등을 토대로 조만간 전기차 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소문 등으로 과도한 전기차 포비아 현상을 이대로 방치했다간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악화될 것이란 우려 속에서 어떠한 대책이 발표될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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