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섭의 여행스케치] 실패는 끝이 아니다

달라지는 감정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편집부 승인 2024.08.06 15:29 의견 0

요즘 내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다. 시각적으로 달라지긴 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이전에 비해 추상적인 표현으로 바뀌었으니 그런 말들을 들을 만도 하다. 그러나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고 많은 고민 속에 서서히 바뀐 그림이다. 그것은 작업 세계가 더욱더 좋아지려고 늘 출발선에 다시 서는 일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림이 바뀐 것이 아니고 출발점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을 때의 일이다. 작업의 결과들은 자신을 스스로 엄격하게 책임지려고 했을 때 생긴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그것이 발전이라는 형태의 문화가 되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가 된 것이다. 문화와 나의 관계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오늘, 어쩐지 쓸쓸함이 있는 듯한 날씨였다. 비는 국지성 호우로 조용하다가도 힘차게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다. 상황이 바뀌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마음도 바뀐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 나갈까.

<감각하는 발> 이두섭

[시사의창 2024년 8월=이두섭 작가]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천천히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어 발신자의 이름을 보았다. C였다. 그녀는 아무런 느낌 없는 사람이다. 안녕한지의 인사도 없이 도서관에 있다고 했다. 인사 없이 본론을 이야기해도 그러려니 하는 사이. 간다고 말했다. 마침 나의 시간은 비어 있었다. 누구와 있는지, 가도 되는지 따위를 묻지 않았다. C와 나는 오래전부터 서로를 묻지 않았다. 그냥 쳐다보는 눈빛이나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갔다. 굳이 말로 확인을 하지 않더라도. 20대 나이에 같은 캠퍼스에서 마주쳐도 어떤 이상으로 발전하지도 않으면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관계이다. 열람실에 들어서서 굳이 찾지 않았다. C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눈만 마주치고 서고에 가서 책을 하나 꺼냈다. 젊었을 때 교류가 있었던 소설가의 신작 소설이다. 어쩌다가 세월이 많이 흘러 연락하기가 머쓱하여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사이. 그렇다고 매우 친했다고는 할 수 없는 사이라서 더욱 연락이 힘들었지. 오래 된 사이들을 한 명은 소설 신작으로, 또 한 명은 특별한 반김 없이 시크한 만남으로 그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가끔 사람이 ‘살아나간다’라거나, ‘살아간다’라는 것을 생각할 때가 있다. 그것을 삶이라는 단어로 말하게 되는데, 삶에 대한 정의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나의 경우 ‘후회’라는 단어로 정리되는 것 같다. 그 후회를, 나도 모르는 감정을 내 작업에서 ‘흘러내린다’라는 유기적 표현으로 정리 하기로 했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감성에 충실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굳이 이성에 기대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여 내린 결론이다.

<앞의 언덕> 이두섭


일본에서의 단체전을 치르기 위해 고베(神戶)에 왔다. 코로나 이전에 이곳에 자주 왔던 카페가 있었다. 고베에서 전시할 때면 갤러리 오픈 시간보다 이르게 호텔에서 나와 자주 가던 카페이다. 나와 커피의 입맛이 잘 맞아 어떤 사람과 약속이 있는 것처럼 들렀던 곳이다. 몇 년 만인지. 코로나가 해제되고 새로운 전시 때문에 다시 왔을 때 이 카페가 절실히 생각났으나 시간 내어 다시 찾긴 힘들어 오진 못했다. 오늘은 마침 시간이 되어 이곳을 찾을 생각에 카페가 있는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 끝에 올 때까지 카페가 안 보인다. 날씨는 쾌청했고 내가 처음 이곳을 찾은 10여년 전의 날씨와 같았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인지. 서너 번 오르내리면서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카페, 차근차근 되짚어봐도 그 카페는 없었다. 없어진 모양이로군. 사라졌구나. 그 사이에 나를 기다리지 않고 사라진 것. 그것의 아쉬움은 나의 욕심일 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구나.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다시 못 만나게 되는 아련함은 허전의 늪에 머무르게 하는구나. 사람이라는 대상이 아니어도.

여기 고베에서의 전시 때문에 머무르는 날은 8일이고 숙박은 7일을 해야 했다, 한 곳으로 7일을 정하려다가 3일과 2일, 그리고 다시 2일을 다른 곳에 숙소를 정했다, 한 곳의 지루함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무르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경험하고 싶어서 그렇게 숙소를 정했다. 한 번은 갤러리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다다미방의 호텔로, 한번은 복잡한 시내의 중심에 있는 곳. 그리고 한적한 고베항구 인근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곳. 이런 식으로 숙소를 정하는 나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목민의 삶을 지향하는 것일까.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갤러리에 가려면 산노미아(三宮)역에서 하차하는 것이 맞으나 일부러 한 정거장을 지나쳐 고베역에서 하차하였다. 키타노(北野) 이진칸(異人館)으로 걸어가는 길, 언제나 언덕 위로 오르는 코스가 이곳 이진칸 거리를 즐기는 방법이었는데 거꾸로 걸어 내려오는 길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습관의 변화라는 것은 묘하게도 관점의 변화도 만들어준다. 습관을 바꾸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의외로 큰 즐거움이 있다.

<그(녀)와의 사일> 이두섭


1868년에 서양에 개항한 고베항은 일본의 3대 항구 중의 하나이고 그 곳 언덕 위에 지어진 서양 상인들의 집들은 지금까지 그대로 보전되어져 있다. 그래서 일본 속의 유럽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진칸 거리의 제일 위쪽에 있는 키타노마치 광장에 앉아 지나는 사람과 언덕 아래를 바라본다. 직선 위주의 건축물들이 많은 일본의 건축 속에서 색다른 문화를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색다른 여러 풍경들을 보다가 다시 내 속으로 들어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작품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자유로운 행동의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지. 그 가치로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가. 오늘도 꿈을 꾼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이생에서 절실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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