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중의 여행에세이] 영덕풍력발전단지, 고래불 해변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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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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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 2024년 8월호=김차중 여행작가] 영덕 터미널에 도착하자 TV에서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대합실에는 물건 가게 대신 부동산사무소가 들어서 있고, 해안을 달리려는 ‘룰루랄라 해변으로 떠난다’는 핑크색 마을버스가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터미널 뒤편에는 관광 안내 지도가 걸려있다. 지도는 ‘게누리공원’부터 시작한다. 영덕은 단연 ‘대게’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게 철은 4월 말까지라 6월 말인 지금은 유명한 대게의 맛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유명한 것이 자리를 비운다고 하여도, 동해의 바닷길은 언제라도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친구가 도착했다. 이곳에 친구의 직장 수련원이 있어 그곳을 숙소로 삼고 여행을 동행하기로 했다. 바람개비 를 닮은 풍력발전기를 따라 언덕에 올랐다.
영덕의 산 능선을 보면 풍력발전기가 드문드문 보인다. 능선을 따라 발전기 24기가 들어서 있는데, 연간 생산된 전력은 영덕 주민 전체가 1년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발전기 아래 가까이 다가서면 날개에서 전해지는 바람 소리가 위협을 느끼게 할 정도로 크다. 동해의 바람을 거대한 바람개비와 함께 맞으며 영덕의 길을 시작한다.
해안도로인 ‘블루로드’(이 정도면 한글 지명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를 따라 북으로 오른다.
풍부한 해산물 때문인지 언덕을 지날 때마다 포구가 나타난다.
경정 1, 2, 3리, 사진 1, 2, 3리 등 동네마다 포구가 하나씩 있다. 한눈에 보아도 현대식으로 지은 축산항처럼 큰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있고, 오래된 어촌의 풍광을 간직한 포구도 있다.
해안지대가 낮아 기암절벽은 없지만, 각기 다른 포구의 운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고려왕건이 대게를 먹었다고 전하는 차유마을일지라도 대게 철이 지난 자리는 고요하기만 했다.
영덕 해안로의 반 이상을 달렸는데 적당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수입 대게를 파는 식당만 있을 뿐이다. 해변 언덕에 허름한 노점이 보인다.
구운 오징어를 판다고 적혀있다. 차를 멈추고 가게에 들어섰다. 도톰한 반건조 오징어가 저렴하다. 바로 구워 준 향긋한 오징어로 배고픔을 달랬다. 열 마리를 먹으라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허기가 차오르던 참이었다. 오징어를 우물우물 씹으니 가끔 마시던 믹스커피가 당긴다.
아주머니, 커피 안 파나 봐요? 여기서 믹스커피 팔아도 되겠어요!
그래도 되려나요? 한 잔 드릴까요?
다음에 이곳에 오면 커피를 사서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비가 시작되었다. 차량 운행을 하지 못할 만큼 큰비가 내린다. 비가 이곳에 머물게 한다. 냉장고를 들여 다보니 반건조 가자미가 보인다. 직접 잡아 말려 시중보다 싸다고 한다.
내어준 커피 한 잔이 고맙기도 했고, 비를 피해 갈 수 있는 혜택을 얻기도 하여, 가자미를 즐겨 드시는 장인 장모 생각에 적당한 양을 구입했다.
아주머니는 어른을 생각하는 마음이 곱다며 쥐포 두 마리를 더 구워주었다. 가자미는 택배로 운송될 예정이다.
여러모로 나에게 운때가 맞는 작은 노점이었다. 달콤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영덕의 오래된 포구를 바라보며 폭우가 잦아들길 기다린다.
우리의 숙소는 고래불 해변 근처이다. 칠보산 아래 병곡면의 여섯 개 마을에 닿는 8km의 명사 20리 해변이다.
고래불 해변의 남쪽 끝 상대산 위 만어대에서 고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본 목은 이색 선생께서 ‘고래불’이라 표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변의 입구 고래 조형물로 된 전망대에 올랐다. 에메랄드빛 바닷속에 고래가 꿈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록달록 색칠한 방파제 트라이포트 위로 빨간 등대가 서 있고 갈매기와 물보라가 뒤엉켜 난다.
시원하게 곡선을 그린 모래사장 위로 파도가 오르고 솔숲에 저녁 물안개가 쉬엄쉬엄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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