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여행’은 이래서 좋아요!] 알려지지 않은 비밀정원을 거닐고 청춘이라는 소중한 선물도 받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나게 떠나는 ‘함께 여행’

편집부 승인 2024.08.06 15:21 의견 1

마음에 맞는 친구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을 나는 ‘함께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나이 차가 있고 하던 일도 다른 다양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 즐겁다. 서로 배우고 가르쳐 준다.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끝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관계가 더 끈끈해진다. 홀로 여행, 가족여행에 이어 ‘함께 여행’을 시리즈로 소개하고자 한다.

신선이 나타날 듯한 안개가 자욱한 아름다운 선재길 – 오대산

[시사의창 2024년 8월호=서병철 기자] 나도 더 청춘이야!
“지난 30년 동안 매년 가는 여행지가 하나 있어. 계절별로도 가끔 가기도 하고” 친한 친구의 말에 ‘과연 얼마나 좋길래’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먼 여행지를 가기 전에 중간 기착지를 들렀다 가는 것을 종종 즐긴다. 이번에 선택한 곳은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SAN)을 친구 부부와 둘러보기로 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주변 자연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설계한 건물로도 유명한데, 이번 전시는 <안도 타다오–청춘>이었다.
주황색을 띤 12조각의 커다란 파이프가 등장하고, 물에 비친 단풍나무가 아름다움을 더한다. 입구에서 만난 녹색의 거대한 사과가 궁금해졌다. 안도 타다오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연두색의 거대한 사과 조각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니 (중략)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은 청춘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한다. ‘나도 더 청춘이야!’ 하며 이상을 잃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도 잠시 해보았다.

안도 타다오가 자연 진화적으로 설계한 뮤지엄 산 전경
청춘 사과(2019) 안도 타다오 전시회_뮤지엄 산– 원주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정원’, 바람의 빛깔 길에서 진정한 힐링을 누리다
감동적인 전시를 둘러본 후 오대산 국립공원 매표소 근처 숲속 한 가운데 위치한 펜션에 도착했다. 여주인은 내 친구 부부를 친정 동생인 양 반갑게 맞아 주었다. 친구를 따라 본격적으로 트레킹에 나섰다. 좁은 시골길 양쪽으로 소나무들이 시원스레 길게 뻗어있고, 왼쪽으로는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걸으면서 조그만 애호박, 양배추, 양상추, 배추밭도 보이고 까치가 베어먹은 사과나무도 마주했다. 어느덧 ‘비밀의 정원, 바람의 빛깔 길’이라 적혀 있는 반가운 푯말을 만났다. 아무도 없는 그곳은 우리들만의 특별한 아지트 같았다. 빨갛게 물들어 가는 단풍나무와 쓰러진 큰 나무에는 이끼와 부유물들이 편안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여기서 잠시 멈추자” 친구가 제안했다. 눈을 감고 길게 호흡하고, 자연의 소리를 잠시 들어 보았다.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숲에서 나는 각종 소리도 들으면서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힐링의 시간을 누렸다. 정원을 벗어나니 저 멀리 한 노부부가 보였다.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며 망원렌즈를 부착한 사진기로 오대산 경관을 포착하는 모습이 정겹고 멋졌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여행하는 모습이 머리는 희지만, 청춘처럼 보였다. 일주문을 지나면 천년의 숲으로 불리는 오대산 국립공원의 월정사 전나무숲길이 시작된다. 광릉 국립수목원의 전나무숲,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소사의 전나무숲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으로 꼽히는 곳이다. 흙의 느낌을 제대로 맛보고자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단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습기가 스며들어 물컹물컹한 진흙을 맨발로 밟으며 흙과 금세 친해졌다. 중간에 발을 씻는 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 수다를 이어갔다. 가는 도중 반가운 친구도 만났다. 지나가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람쥐가 열매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정원, 바람의 빛깔 길을 걸으며 힐링하다 – 오대산


민속 장터에서 즉석 점심, 맛은 물어보나 마나

때마침 출출했는데 오대 민속 장터가 열렸다. 수수부꾸미, 메밀전병, 감자전, 어묵을 시켜서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고 옥수수 생막걸리를 마셨다. 노란 색상도 잘 어울리는데 맛도 기가 막혔다. 시장 구경에 나섰는데 찐 찹쌀을 떡판에 놓고 떡메로 쳐서 떡을 만드는 어르신들에게 “제가 한번 해보겠다”라고 요청했다. 이른바 떡 치기다. 재밌기도 했지만, 힘이 들었다. 친구도 질세라 신나게 떡 치기를 했다. 시식용 떡도 맛보면서 시골 인심의 후덕함을 다시금 느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의 역사를 지닌 월정사 안으로 들어왔다. 국보인 월정사 8각 9층 석탑은 상륜부 해체 보수공사 중이라서 아쉬웠지만, 시뻘겋게 물든 단풍나무가 단연 돋보였다. 한 젊은 연인들은 함께 단풍 사진을 담느라 환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와! 단풍 너무 멋져”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빨갛게 물든 단풍 사진을 담고 있는 젊은 연인 - 오대산
오대민속장터에서 즉석 점심, 맛은 물어보나 마나 - 오대산
다양한 농작물 선물이 여행의 즐거움이 비움이 아니라 채움임을 깨닫게 하다 – 오대산
오대산 전나무숲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다람쥐가 식사한다 – 오대산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선재길을 걷다
드디어 걷고 싶었던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오대산 선재길이라는 커다란 이정표가 보였다. 선재에는 ‘착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 길을 통해서 세상사의 고뇌와 시름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과 더불어 서로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말을 싫어했다.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았고, 실제로 손해도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착하다’라는 말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여태까지 착하다는 말에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었구나. 착한 사람이 늘어나면 정말로 살만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부터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고,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파란 하늘에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다가 산봉우리를 감싸더니 오대산 신선이라도 곧 나타날 것 같은 신비스러운 경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대천 계곡의 오솔길을 따라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 우리나라에 이렇게 좋은 트레킹 코스가 있음을 이제 알았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단풍이 가득한 월정사 모습 – 오대산
한 방향을 바라보며 자연경관을 담으려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멋진 청춘 노부부 – 오대산


여행의 즐거움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네!
이번 여행이 더욱더 행복했던 것은 숙소 사장님의 친절함과 주고 싶은 것은 다 퍼주는 엄청난 선물이었다. 친구와의 30년의 인연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추밭에서 직접 따서 가져가라고 하고, 그 이외에도 감자, 양배추, 파, 무까지 세 가족 모두에게 각각 한 아름 주었다. ‘가족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많은 농산물을 차에 실었더니 진정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씻고 다듬어 저녁상을 차리니 이토록 맛있고 행복한 식사에 감사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비움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의 즐거움은 예외적으로 채움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재길 비경 – 오대산


38년 지기 친구 세 부부의 여행은 무계획적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전시를 보면서 청춘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 보았다.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정원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세 부부만의 힐링을 누렸다. 바비큐를 즐기며 통기타와 함께 지나간 노래를 부르며 흥에 겨워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 잠시 청춘의 시절에 머무르다 오기도 했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내면의 길을 더듬어간다.”《걷기 예찬》을 쓴 프랑스 교수이자 작가인 다비드 르 브르통의 말이 이번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해 준다. 이번 세 부부와의 함께 여행은 길을 걸으며 자기 내면과 소통하고, 오랜 친구들과의 편안함과 즐거움이 넘치면서 청춘이라는 선물까지 받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음 함께 여행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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