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조선시대 3대 요리 서적 수운잡방, 도문대작, 음식디미방

편집부 승인 2024.08.06 13:48 의견 0

전 세계의 산업발전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은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켜 세계 곳곳에 이상기후 변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날씨도 점점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 가고 그에 따른 여름철 집중호우와 습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초복을 지나 중복에 이르면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게 되는데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으로 10여 년 전만 해도 보신탕을 먹었다. 조선시대에도 여름철 보양식으로 개고기요리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조선시대 한글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개를 잡기 하루 전 개에게 닭 한 마리를 푹 삶아 주고 개를 잡으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에만 410만 가구가 반려견 61만 마리를 키운다고 하고 ‘식견은 야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현재의 여름 보양식은 삼계탕이나 장어구이 정도인 것 같다. 경복궁 특별관람 해설을 하는 필자는 여름에 음식 관련 이야기로 주로 연산군과 성종의 별식을 비교하며 한다.

서울신라호텔에서 선보인 종가음식 '수운잡방(需雲雜方)' 대표요리 ©연합뉴스

[시사의창 2024년 8월호=민관홍 우리문화숨결 경복궁해설사] 연산군은 경회루지의 섬을 멋지게 꾸며놓고 배의 앞을 황룡으로 장식한 황룡 주를 띄워 흥청의 기생들과 뱃놀이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298평 되는 2층 누마루의 동서남북 4곳에 1,000근(600kg)짜리 황동 그릇에 얼음을 가득 담아 놓고 더위를 달래며 누마루 곳곳에 수박화채를 두고 즐겼다고 하였다.
그에 반해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은 수반(水飯)을 즐겼다고 한다. 수반은 그럴듯한 말이지만 ‘찬물에 밥 말아 드셨다’는 말씀이다. 수반으로만 여름을 날 수 없었던 성종은 여름을 이기는 건강식으로 보릿가루를 주된 재료로 복분자와 오디, 하수오 분말을 첨가해 만든 미숫가루를 먹었다고 하였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양반의 개인 저작에서 단편적으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지만 조선시대 요리에 관한 전문 서적이라 할 수 있는 책은 드물다.
개혁 군주인 정조조차 ‘문체반정’이라며 열하일기를 금서로 지정할 정도로 유교 경전에만 몰두한 조선에서 수운잡방, 도문대작, 음식디미방 등의 요리저작이 있고 그 저작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책이 나온 시기대로 이 책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수운잡방 ©연합뉴스


수운잡방(需雲雜方)
‘수운잡방’은 경북 안동의 유학자 김유(金綏, 1491∼1555)와 그의 손자 김령(金, 1577∼1641)이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 조리서이다.

표지에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고 적혀 있고, 속표지에는 ‘탁청공유묵(濯淸公遺墨)’, ‘계암선조유묵(溪巖先祖遺墨)’이라고 쓰여 있다. 따라서 행서로 쓰인 상권은 탁청정 김유가 저술한 것이지만, 초서로 된 하권은 손자인 계암(溪巖) 김령(金, 1577∼1641)이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탁청공유묵은 김유의 호 탁청정 공이 남긴 글이란 뜻이다. 표지 제목의 ‘수운(需雲)’은 주역(周易)에서 “구름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수(需, 需卦)’이니, 군자가 이로써 마시고 먹으며, 잔치를 벌여 즐긴다.라는 뜻이다. 운상우천, 수, 군자이음식연락(雲上于天, 需, 君子以飮食宴樂)”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운잡방’은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라는 의미이다.
이 책은 김유가 지은 앞부분에 86항, 손자 김령이 지은 뒷부분에 36항이 수록되어 모두 122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14종의 음식 조리 및 관련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항목을 분류하면 주류(酒類) 57종, 식초류 6종, 채소 절임 및 침채(沈菜, 김치류) 14종, 장류(醬類) 9종, 조과(造菓) 및 당류(糖類) 5종, 찬물류 6종, 탕류 6종, 두부 1종, 타락(駝酪, 우유) 1종, 면류 2종, 채소와 과일의 파종 및 저장법 7종이다.
중국이나 조선의 다른 요리서를 참조한 사례도 있지만, ‘오천양법(烏川釀法, 안동 오천 지방의 술 빚는 법)’을 비롯해 조선시대 안동지역 양반가에서 만든 음식 법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수운잡방 ©연합뉴스


‘수운잡방’에 술 담그는 법이 많은 것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모시는 봉제사 접빈객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수운잡방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 안동 예안 지방의 광산 김씨 문중과 주변 지역에서 내려오던 전통적인 음식 조리법을 정리한 책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전통 조리법과 저장법의 기원과 역사, 조선 초, 중기 음식 관련 용어 등을 알 수 있다.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는 자는 유지(綏之), 호는 탁청정(濯淸亭),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광산 김씨 안동 입향조 김효로(金孝盧)의 아들이다. 그는 1525년 생원시 합격 이후 여러 번의 과거 실패와 형 김연의 출사로 집안에 머물며 부모를 봉양하는 데 진력하였다. 그는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사는 것이 어떤가? 꼭 세상의 명예를 뒤쫓을 필요가 있을까?” 말하였다.
그는 성품이 활달하고 무예에 뛰어났으며 빈객을 좋아하였다. 집 가까이에 정자를 지어놓고 예안 고을을 지나는 선비들을 맞아 즐기며 정중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사후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고 이웃에 살던 퇴계 이황이 묘지명을 지었다.

성소부부고(권26) 도문대작편의 과실에 관한 기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문대작(屠門大嚼), 조선판 미슐랭가이드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1611년, 광해군 3년)
의 출전은 환담(桓譚), 신론(新論)으로 그 뜻은 ‘사람들은 장안의 음악을 들으면 문밖을 나서 서쪽을 보며 웃고, 고기의 맛이 좋다는 말을 듣고 나면 고깃집 문을 바라보며 씹는 흉내를 낸다.’ 허균(許筠)은 이 성어를 이용하여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전국 8도의 식품과 그 산지에 관해 기록한 1권 1책으로 허균이 귀양지인 전라북도 함열(咸悅), 현재 익산에서 기존의 초고와 기억을 토대로 엮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 26권 중 제26권이다.
음식의 종류별로 병이류(餠餌類) 11종, 과실류 30종, 비주류(飛走類) 6종, 해수족류(海水族類) 40종, 소채류 25종, 미분류 5종 등 총 117종의 식품에 대한 분류와 명칭, 특산지, 재배 기원, 생산 시기, 가공법, 모양, 맛 등의 내용을 몇 가지씩 기록하고 있다.
도문대작은 미슐랭가이드처럼 별점은 없어도 ‘어떤 요리는 어떻게 해야 맛있고 어디 지역의 것이 특히 맛있다’라는 품평을 하였다.
저자의 서문을 간략하면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는 사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예물로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어릴 때는 진귀한 음식을 갖추어 먹을 수 있었다. 또 자라서는 부잣집의 사위가 되었기에, 땅이나 바다에서 나는 온갖 음식을 다 맛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 후에는 강릉의 외가로 돌아와, 그 지역의 특별하고 기이한 음식을 두루 맛보기도 하였다.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뒤로는 남, 북으로 벼슬을 옮겨 다니며, 입 안에 이런저런 음식을 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라면 먹지 못할 것이 없었고, 나물이라면 씹지 못할 것이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미 살아온 인생 자체가 미식가의 조건을 갖춘 허균은 과거시험의 부정한 감독관으로 1611년 익산에 귀양을 가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도 못하게 되었다.
허균에게 지난 날의 식도락을 저술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군 생활 중 필자가 사회에서 맛있는 것을 직접 먹는 것처럼 상상하며, 힘든 군 생활을 이겨냈던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허균은 서문에서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요, 특히 먹는 것은 목숨을 부지하는 데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옛날의 성현들이 먹고 마시는 일을 천하게 여겼던 것은, 먹는 것을 탐해 이익을 좇는 일을 경계한 것이지, 어찌 먹는 일을 그만두고 음식에 관한 말을 꺼내지 말라는 것이었겠는가?”라고 하며 유학자로서 도문대작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다.
허균은 개혁적 성향의 이단아였으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으로 지방관으로 부임할 때도 권력의 핵심지보다는 식재료가 풍성하여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부임지를 바꿔 달라고 청탁을 하였던 탐식에 진심인 인물이었다.

음식디미방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여중군자 장씨 부인의 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은 속 표제이고 겉표지의 규곤시의방(閨是議方)은 ‘양반 부녀자 처소에 올바른 처방법’이란 의미로 나중에 책의 격을 위해 후손이 붙인 것으로 추정한다.
음식디미방은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으로 많은 해설서들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으나 ‘중용’에 인막불음식야, 선능지미야(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사람은 누구나 먹고 마시지만 그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에서 발췌한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이 장을 근거로 ‘중용, 인간의 맛’이라는 중용 해설서를 저술하였다. 제목의 출전만 봐도 장씨 부인이 왜 퇴계 학파의 숨은 공신이며 왜 ‘여중군자’로 불리웠는지 짐작이 간다. 음식디미방은 1670년경 조선시대 안동지역에서 살았던 안동 장씨 정부인(貞夫人) 장계향이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의 재령 이씨 종가에 시집온 후 75세 때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이다.
이 책은 조선 중기, 경상도 지방의 양반가에서 실제 만들던 음식의 조리법을 담았는데, 저장 발효식품, 식품 보관법,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18종) 및 어육류(74종), 각종 술 담그기(51종), 초류(3종)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이며 한동안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이기도 했다. 저자 장계향은 시서화에 능했으며 맏며느리 역할과 남편 내조에 충실했다. 재령 이씨 가문의 석계 이시명에게 시집와 슬하에 7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 모두를 훌륭한 학자로 키워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도 남달라 대문 밖에 큰 솥을 걸고 죽을 쒀 300명이나 되는 걸인들을 먹였다고 한다. 퇴계 학파의 숨은 공신이라거나 맹자의 어머니에 뒤지지 않는다는 후세의 평가로 여중군자로 불리웠으며, 문중에서 불천위로 모셔져 지금도 자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은 둘 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양반 종갓집의 많은 식솔 들을 거느린 지역의 실세로 김유는 안동 종갓집에서 어머님을 봉양하며 유유자적 가문을 지켰으며 장계향은 영양 재령 이씨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소임을 다하던 시서화에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이들의 저작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하였다. 조선판 미슐랭가이드, 도문대작은 우리 선조의 저작 중 거의 유일한 음식 품평서라 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 냉방병이라는 부작용이 있는 에어콘에만 의지하지 말고 조선의 삼대 음식 서적, 그 음식 세계를 엿보고 맛보고 씹어보며 상상하자!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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