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포커스-보수의창] 글로벌리즘과 미국의 외교정책이 만드는 세계질서

지금 미국은 글로벌리즘 버리고 Nationalism으로 이행 중
트럼프의 세계질서, 슈퍼파워 미국을 중심으로 다극체제 허용할 듯

편집부 승인 2024.08.06 12:05 의견 0

지난 7월 초 미국의 메사추세츠 국제경제학부 교수인 마이클 심 박사가 내한하여 서울대 트루스 포럼과 강남구청 및 경북도청의 공무원들을 상대로 진행한 국제 정세의 분석과 미국의 정책 방향에 대한 강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마이클 심 박사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당장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과 관련해서 트럼프의 총격살해 미수와 그의 부상은 그를 일약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추켜올렸고 향후 그의 생각은 대한민국의 향후 외교정책의 전환과 깊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사의창은 마이클 심 박사가 제시한 서울대와 강남구청에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최근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현상을 분석하고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의 원인이 바로 이탈리아의 공산당 서기장 그람시가 제시한 문화(Cultural) 헤게머니와 미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자유주의(Liberal) 헤게머니와 부딪히며 세계는 미국 우위의 다극화 질서가 접점의 끝에서 형성 중에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결국 향후 미국의 정책이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지향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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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 2024년 8월호=강현섭 기자] 국제관계에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것은 통신이나 교통이 발달함으로써 전 세계가 가까워지는 현상을 말하며 글로벌리즘(Globalism)은 어떤 나라의 외교나 국방 정책 등을 수립할 때 즉, 자국의 경제나 정치 정책을 수립할 때 자국을 베이스로 해서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베이스로 해서 자국의 경제나 정치, 또는 정책을 수립하는 해야 한다는 사상과 생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글로벌리즘은 1990년대 당시에 미국에서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처음으로 생겼는데 1990년도까지는 이 세상에 힘이 가장 큰 슈퍼파워가 소련과 미국이었으며 이는 1945년부터 1989년도에 소련이 해체되기까지 거의 반세기에 걸쳐서 진행된 냉전 시대로서 세계의 두 축이 형성된 바이폴라(bi-Polar) 시대라고도 한다. 과거 미국이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게 되기 전 미국의 외교정책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국의 정책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 때문이다. 세계 제1.2차 세계대전 말이다.

글로벌리즘의 탄생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미국은 더이상 인류가 전쟁 없는 평화를 갈구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UN을 중심으로 한 외교무대는 결국 언어의 싸움터로 되었고 생산적이지 못했다.
동서의 냉전 속에 1989년 소련이 해체되자 미국 중심의 유니폴라(Uni Polar) 시대로 바뀌게 되었고 1990년을 기점으로 미국은 사실상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우방을 돕고 미국과 우방이 아닌 나라에게 제재를 가하며 적대적이었던 소련과 그들의 우방에겐 글로벌적 무역이나 국제기구에서 배제된 채 국제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소련의 해체 후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미국은 전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를 상대로 각각이 각개의 나라에 대해 직접 적인 외교를 통하여 의견을 조율하고 아우르는 외교정책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미국의 글로벌리즘이었다.
당시 공화당 정권과 미국의 싱크탱커들이 이 글로벌리즘정책을 수립 시행하였으나 민주당의 젊은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의 글로벌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민주당 정권을 이어갔다.

강남구청, 공직자의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도 높여
메사추세츠 대학의 마이클 심 교수의 한국초청 강연은 서울대(트루스포럼)와 국회, 경상북도 도청과 강남구청애서 각각 이루어졌으며 특히 지난 2024년 7월 9일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글로벌적 세계관을 직시하며 강남구청 전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현 정세와 세계사적 미국 외교사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마이클 심 박사를 초대하여 정례교육을 하였다.

공직자를 상대로한 마이클 심 박사의 강연이 지난 7월 9일 강남구청에서 열렸다.


이 자리는 강남신문 유상용 대표의 소개로 이루어졌는데 강연 내내 자리를 지킨 조성명 구청장은 심 박사의 강연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심 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미이클 심 교수가 강남구청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시사의창은 마이클 심 박사가 전한 강연내용을 토대로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세계질서의 흐름을 살펴보고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시사이슈를 재구성, 편집 정리한다.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와 국제질서의 변천과정
그동안 미국의 입장에서 전 지구적 글로벌 세계를 향하여 수립했던 정책들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미국의 4가지 외교정책의 변천

■고립주의 정책
첫 번째는 고립주의 정책이었다. 미국은 지정학적 위치가 그 천혜의 요새였다. 동과 서쪽은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방어되었고 남과 북쪽은 캐나다와 멕시코로서 두 나라의 국력을 다 합해봐야 미국을 상대로 침공해 올 정도의 국력이 아니므로 미국은 동서남북이 다 천연적인 방위가 저절로 돼 있는 나라였고 그로 인해 자국의 군대를 국경에 배치할 필요가 없는 나라였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미군을 볼 수 없지만 미군을 미국 바깥에서 더 많이 보게 되는 나라이다.

미국의 전쟁반대와 고립주의


1,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1945년도 당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우리하고 관계없는 일이며 그쪽에 어떤 세력이 생긴다고 해도 걔네들이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건너서 뭐 미국을 범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면 된다. 전 세계 어떤 일과 미국은 관계없다”라는 것이 미국 외교정책의 고립주의였다.

■개입주의 정책
그런데 세계 제1차 대전하고 2차 대전을 통해서 “미국은 더이상 전 세계와 고립돼서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전환되게 된다.

몬로대통령의 고립주의 삽화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이 그 유럽에서 일어난 것은 오스트리아 헝가리언 제국이 발칸에 내려와 보스니아 젊은 두 청년이 황태자를 죽인 이유로 시작되어 각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이 번져 나간 것이 1차 대전인데 그때 미국은 전혀 전쟁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아무런 일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1차 대전에 그렇게까지 미국이 참전을 안 하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끌려 들어가게 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독일의 무제한 잠수작전이었다.

제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작전의 희생양이 된 루시타니아호


1915년도에 미국을 떠난 영국 국적의 루시타니아호는 뉴욕항을 떠나서 영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독일의 유보트가 이 여객선을 침몰시킴으로써 미국은 불가피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동안 독일은 세계 제1차 대전이 진행되니까 군수물자를 영국으로 나르는 화물선에 대한 공격에 대해 보상과 사과를 하여 왔지만, 이번에는 여객선이 침몰되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미국의 여론도 전쟁 참전을 뒷받침했다.
그동안 미국에 의한 고립주의 외교정책이 국제문제에 대한 개입으로 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승만 대통령의 프린스턴 대학의 스승이었다. 그는 학자적 양심에 따라 전쟁 참전을 꺼렸지만,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이 합심해 들고 일어나 전쟁 개시를 촉구하자 윌슨은 선전 포고 후 참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세계 제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군은 승리하자마자 그 다음날 미군들을 싹 빼 미국으로 철수시켰다. 총성이 멎은 것은 1918년이었지만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된 것은 1919년이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채 20년이 안 돼서 세계 제2차 대전이 또 발생했다. 1차 대전의 휴전 조건에 불만을 품었던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때에도 미국은 참전을 안 하려고 했지만 1941년 12월 7일 날 일본군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폭격함으로써 미 해군 배가 다 부서지며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
당시 하와이는 미국 영토였지만 아직 미국의 주는 아니었다. 하와이가 미국의 주로 승격된 것은 1952년, 11년 이후에 알라스카와 하와이가 미국의 45번째, 50번째 주가 된다. 할 수 없이 루스벨트 대통령이 폭격 다음날인 1941년 12월 8일 선전 포고 후 일본군을 물리치며 마무리할 즈음 히틀러 자살과 함께 세계 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그런데 미국은 양 대전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힘이 비슷한 국가들끼리 자꾸 전쟁을 일으키니까 “우리가 무조건 고립주의(isolationism) 정책을 써서 미군을 다 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 유럽과 일본에 전쟁 나간 미군이 아직까지도 주둔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혹 국지전으로 1950년대에 6.25 전쟁이 있었고 60년대 월남전이 있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큰 전쟁은 아니었으며 이제 세계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바 그때부터 “미국은 돌아가지 말고 현지에 남아서 평화를 유지하자”는 개입주의 정책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On Shore 정책과 Off Shore 정책
이제 미국의 개입주의 정책은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는 그 나라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전략이다.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은 On-Shore 정책과 Off-Shore으로 대별되는데 독일,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미군을 현지에 주둔시키는 정책(On shore)과 그 나라에 미군을 주둔시키지는 않지만, 그 나라 바깥의 가까운 곳에 미군을 위치하고 있다가 전쟁이 터지면 바로 들어가는 Off Shore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글로벌리즘과 Democratic Diplomacy
그러나 1990년대 소련의 해체 이후 이제 이것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외교정책(Dominance Policy)을 통해 전 지구에서 전쟁 없는 영구평화체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 정책이 글로벌리즘의 외교정책이다.

Globalization


현재 미국의 글로벌 외교 전략은 Democratic Diplomacy를 근간으로 한다.
세계의 지배주주 200개 나라를 미국이 관리하는데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구평화다. 지구에 절대 전쟁이 못 일어나게 하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학 이론 중 “민주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라는 Democratic Diplomacy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 세계 모든 나라 정권을 다 민주 정권으로 바꾸면 전쟁이 전혀 안 일어날 거 아니냐? 그런 사상에 기초하여 미국은 “민주 정권으로 안 바꾸는 국가나 정권에 대해 우리가 무력을 행사하든 경제적 혜택을 주든지 다 민주주의 정권으로 바꾸겠다”는 정책인 것이다. 이 정책은 1990년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수립된 정책으로서 미국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외교정책이 시작되었고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 200개 나라를 상대하므로 이게 글로벌 미국 정책이 된 것이다. 1990년대에 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UN 기조연설에서 “the New World가 시작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고 이 말은 바이든 대통령도 2년 전에 강조한 바 있다.
더 뉴월드(The New World)라는 말의 의미는 “전 세계 200개 나라를 미국이 주도하여 무릎을 꿇려 줄을 세워 가지고 전쟁을 못하게 하겠다”라는 전략인 것이다.

Middle Power의 다극화(Multi-Polar)시도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는 핵무기도 가지고 있어 조금 힘이 있기 때문에 이 나라들을 부자를 만들어 주면 세계질서에 순응할 것인데...”라고 생각한 것인데 30년이 지난 후인 지금에 생각하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1990년대에 미국 워싱턴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악의 제국인 이블파워(The Evil Empire)라고 불리던 소련이 해체되고 16개 조각으로 나뉘는 걸 본 미국은 극치의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우리가 공산주의를 무찔렀다. 그러니까 이제는 모든 국가를 민주 정권으로 만들어 우리를 막을 자가 없게 하며 러시아와 중국도 우리 밑으로 세워 지배를 하자”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빗나갔다. 왜냐하면, 1990년대 당시에는 “미국을 제외한 군사 강국 중국과 러시아,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을 합한 전 세계의 약 20여 개국 정도가 되는 군사 대국을 합친 군사력이 미국 하나의 군사력보다 약했으며 러시아나 중국 같은 나라도 잘살게 되면 결국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제는 영구 평화시대이며 미국의 막강한 힘 아래 전 세계가 말을 잘 듣는 Pax Americana 시대가 왔으니까 2차 대전 이후로 미국이 만들어 놓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IMF나 World Bank 같은 국제기구가 있어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를 가입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미국은 “이 국가들이 그 자체의 규정과 룰이 있으니까 따라올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안 되어 갔다. 특히 미국이 공업 사회로 이미 나아갔기 때문에 교육과 국방 그리고 항공우주 나노 테크놀로지, 의료, 금융 등 주요산업만 유지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중국에다 주기로 한 것이다.
이는 경제학의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에 근거한 것으로서 국제적 분업을 통해 개인이든 회사든 나라든 그 집단 그 조직에서 가장 잘하는 것만 하게 해서 결과물을 서로 교환하면 모든 국가가 다 경제가 발전하고 잘살게 된다는 이론을 바탕에 두었기 때문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그래서 이 비교우위론을 미국 내에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제 200개 국가 모두에 적용을 시키면 다 전 세계가 번영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래서 지난 30여 년간 중국은 이러한 국제 질서 속에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러한 글로벌리즘이 막 번창을 할 때 거기에 찬물을 끼는 일이 생긴 것이 9.11 테러 사건이다. 그 이후 미국은 약 10여 년 전부터 이런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글로벌리즘에 대해 제일 먼저 반대하고 나온 것은 아랍 사람들이었다. 9.11 테러 사건은 강력한 글로벌리즘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나토의 프랑스와 독일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트럼피즘과 향후 미국의 정책향방
트럼프는 자신이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했지만,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 그러한 글로벌리즘적 외교정책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국의 외교정책 바꾸기 시작하여 이제 미국 혼자 Uni-Polar를 떠받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생각들이 트럼프의 예언(Trumpism)으로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자신을 주장을 강하게 펼치고 있는데 미국 조야의 반대 언론들과 상대하며 직설적인 발언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미국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후보는 언론을 상대로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동시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말을 보도하는 언론기관들을 향해 거침없는 공격의 화살을 날림으로써 많은 우려와 함께 공격을 한 몸에 받으며 대선 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그의 솔직함에 민주당의 글로벌리즘 정책이 강한 제동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글로벌리즘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러시아와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미국의 정책에 끝까지 반발을 하며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다. 중국은 중국특색 사회주의로 가고 있으며 러시아는 푸틴의 강력한 철권통치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아랍 역시 글로벌리즘적 경향에서 벗어나 자신을 입지를 형성하고 있다.

■자유 헤게모니(Liberal Hegemony)와 문화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 전쟁
미국의 정치분석가들과 싱크탱커들은 “1900년대 초에 공산주의가 이제 더이상 안 된다”는 확신을 가졌었다. 원래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은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났을 때 “공산주의 혁명이 유럽에서 이제 완전히 성공하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국적을 막론하고 연대해서 나라와 국경도 없어지고 공산주의만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이태리에서 공산당 서기장을 하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Cultural) 헤게머니’주장에서 잘 표출된다. 그람시는 리버럴 정책과 전 세계의 문화 정책의 갈등 속에서 헤게머니를 잡아야 하며 이젠 총칼과 폭력혁명론으로는 공산주의 혁명을 완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 헤게머니 전략
안토니오 그람시의 전략은 20세기 초반에 나왔지만 그동안 죽어 있다가 미국의 글로벌 다미넌스 팔러시(Dominance Policy)의 전략인 리버럴 해게머니 정책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이에 반기를 든 논리적 대응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하는 ‘문화(Cultural) 헤게머니’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장한 문화헤게모니의 2가지 전략


즉, 그는 YMCA, 학교, 교회 등 모든 동네기관이나 라이온스 클럽 등에는 모두 부르조아가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데 이 리더십에 프롤레타리아들은 안 그런 척하면서 살살 파고 들어가 가지고 결국은 헤게머니를 잡아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이 문화 헤게머니는 전 세계를 공산화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화 헤게머니 정책은 두 가지 전략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The war of position(자리잡기 전쟁)과 둘째, 자리 잡은 후 그 다음에 묘하게 자기 세력을 퍼뜨리는 방법으로 진행되며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공산당 서기장을 하기 전, 언어학자였기 때문에 언어의 사용을 교묘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헤게모니의 파생전략


예를 들면 1960년대 초에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던 ‘식모’라는 말 대신에 ‘가정부’라고 바뀌고 현재 ‘가사도우미’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전형적인 예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흑인을 Nigro라 하던 학술적 용어를 Black으로 하도록 하다가 현재에 이르러선 African American으로 하도록 하는 언어 감정적 정서의 전환 역시 미국의 민주당과 차별반대론자에게 이식되어 세를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떤 특정한 말을 문화 헤게머니 이용자들이 선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대방과 보편적 대중들의 말과 입을 막아 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어 나온 것이 소위 정치적 도덕(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용어이다.
이것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듣기 거북하면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경향을 의미하는데 political correctness는 소위 PC주의자를 양산하면서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상대방이 듣기에 거북하면 발언을 하지 않거나 아무리 틀린 얘기라도 듣기에 좋으면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당연히 의무를 지닌 자가 해야 할 당연한 임무일지라도 “이분은 누군가의 어머니이며 딸이다”라며 책임을 추궁하는 사람의 말문을 막는 것이다. 소위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한국의 사례도 이 사회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오키즘(wokeism)도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된다. 소수자에겐 그 사람 입장과 시선에서 바라봐 주는 것이 오키즘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백인이 빨간신호등에 길을 건너가면 위반인데 흑인은 건너가면 죄가 아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쌍하니까...
그 후 오키즘을 통해 민주당과 PC주의자들은 선거 때마다 소수표를 끌어모았으며 그도 안 되니까 오키즘으로 간 것이다. 더구나 미국의 민주당이 그다음에 캔슬 컬처(Cancel Culture)를 통해 어떤 사람이 우리 마음에 안 들면 왕따를 시킴으로써 그냥 캔슬해 버리는 방식도 사용되며 이러한 그람시 전략은 최근 정치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전술 전략에서 나와 파생된 제2, 제3의 파생적 전략은 부시 대통령이 처음 세계의 글로벌리즘 정책을 시작했을 때는 각국의 관세장벽을 내려서 미국의 대자본이 그 나라를 들락날락하기 쉽게 만들었고 미국이 전 세계에서 상업적인 패권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국경을 내려놓자고 하는 것이었는데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미국의 외교정책은 클린턴이 8년간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원래 공화당에서 주장한 글로벌리즘 중 리버럴 헤게머니 정책에 더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살짝 얹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은 전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든 피부 색깔이 어떻든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 최소한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누구 돈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한다” 즉, 누구 돈으로 그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하느냐 하는 정책적 질문에 미국의 민주당 의원들은 답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태도는 한국 국회 내에서도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당신도 돈 좀 내놓으세요” 라고 말하면 그들은 “돈은 안 내놓은 채 계속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고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 내에선 정책갈등의 폭이 벌어진 약 1,000여만 명의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정책은 “미국에 지금 대학생들은 아 좀 들어오면 어떠냐?”며 대부분 오키즘(wokeism)에 젖어 “그 불쌍하고 못 사는데 뭐 우리만 왜 잘 사느냐, 그들도 오게 해서 같이 먹고 잘 살면 되지?”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국적 문제로 비자 받으려고 5년, 10년 기다린 사람들은 나도 몰라 뭐 이거예요? 그냥 불쌍하니까 법이고 뭐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하며 강하게 반문하고 있다.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이 정책 결정의 혼란상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에 대한 정책에서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전 세계의 눈과 귀가 먼저 정의의 관점에서 하마스를 먼저 비난해야 할 것 같은데 미국의 언론과 대학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많은 교수들조차 별로 그거를 비난 안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 하마스가 고통받는 소수란 말이다. 마이너리티...”
이게 미국이 그동안 글로벌리즘 정책을 쓰면서 리버럴 헤게머니 정책의 일환으로 전 세계를 민주 정권으로 만들고자 했던 정책적 실패의 양상들이다. 그동안 죽었던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 헤게머니를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바이폴라(bi Polar) → 유니폴라(Uni Polar) →멀티폴라(Multi Polar:다극체계)
그런데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바이폴라(bi-Polar)였던 미소 냉전을 거쳐 미소관계가 없어진 90년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유니폴라(Uni-Polar) 시대가 지속되고 있는데 미국의 힘이 빠지고 점차 중국이나 러시아의 힘이 늘어나면서 이 유니폴라 시대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멀티폴라(Multi Polar:다극체계)로 가는 세상으로 이미 접어들었다는 일부의 분석도 있다.
그러면 미국이 망하는 것 아니냐? 하는 반론에 대해 메사추세츠 대학의 마이클 심 교수는 “미국은 계속 싱글 슈퍼파워 상태를 유지하지만 20년 전과 같지 않은 거죠”라며 그래서 “금본위제로 다시 간다. 지금 상하이 코퍼레이션이라는 중국 주도의 국제기구를 만들어 인도와 사우스 아프리카와 브라질을 끌어들여 달러화를 약하게 한다”는 일부의 분석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효과가 있거나 그렇게 실현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마이클 심 메사큐세츠 대한 국제경제학부 교수


최근 러시아 푸틴과 북한 김정은이 맺은 전략적 포괄적 동반자 조약도 심 박사는 “러시아가 북한에 초정밀 미사일 기술 등을 줄지 안 줄지 모르지만 올 11월달 미국 대선이 지나게 되면 바뀌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심 박사는 강남구청장 및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만약 “북러 간 현 상태가 계속되고 만약에 미국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면 그 조약은 무효화가 될 가능성이 많다”며 트럼프의 그 국제 정세에 관한 정책은 “글로벌 Dominance Policy가 아니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미국의 국제정세에 대해 마이클 심 박사와 환담을 나누는 조성명 강남구청장


현재 미국의 정치상황은 미국 내 민주당 전체와 학계 언론계 및 공화당의 3분의 1 정도의 의원들이 “아직도 우리가 끝내지 못한 Dominance Policy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며 그래서 공화당의 3분의 1과 민주당 전체가 힘을 모아 트럼프를 공격하는 양상이며 트럼프 후보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클린턴 8년, 부시 아들 8년, 오바마 8년 동안 지속해온 미국의 외교정책을 트럼프 후보가 ‘이 정책 틀렸다’라며 ‘바른 얘기를 한 것이다’라고 심 박사는 분석했다.
심 박사는 “사우디 여자들이 얼굴도 가리며 거기다가 그 어떤 나라든지 오랫동안 내려온 관습과 전통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갑자기 미국식 민주주의로 바꾸라고 할 수 있느냐”며 “말 안 들으면 때린다고 하고 그렇게 해 보았음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만에 망신만 당하고 엄청나게 많은 무기와 몇십조 이상 넘어가는 첨단 무기를 다 놓고 몸만 빠져나온 상황을 설명하며 이라크도 마찬가지다”라고 예를 들었다.
당초에 이라크에서도 “사담 후세인 하나만 잡아 놓았지만 결국 이라크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나왔다”며 “글로벌 다미넌스 팔러시(지배주의 정책)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며 리비아, 시리아도 같은 예에 속한다”라고 단언했다.
심 박사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 유니폴라 시대가 접어지며 멀티폴라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덧붙인 후 “미국에서 공산주의 사상이 위장된 문화 헤게머니에서 비롯된 것이며 미국의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국가가 이 글로벌리즘이 푸시 하는 미국 외교정책의 희생이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인들의 지지가 트럼피즘의 탄생과 Nationalism으로 이어질까?
그동안 미국의 많은 유권자들과 언론이 그동안 미국의 글로벌 다미넌스 팔러시(Dominance Policy)를 믿고 이걸 관철시키려고 했던 그 사람들의 뜻은 영구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매우 선해 보일지 몰라도 세계를 망가트리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시도는 더이상 작동되지 않는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에 이제 미국 국민들의 뜻으로 나타나는 것이 트럼프 지지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심 박사는 “이것은 모더니즘과 글로벌리즘이 20세 21세기에 꽃을 피웠던 것이며 9.11 이 글로벌리즘의 종지부를 찍은 사건으로 보면 된다”며 “트럼프가 주장하는 내셔널리즘은 국수주의적인 것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라며 “우리가 지난번 트럼프 4년을 경험해 봤지만 뭐 그때 뭐 미군을 뺀 것도 아니며 미군 철군은 없었으며 단지 계속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레토릭에 불과하다”라며 “그런 미국의 정책적 변화를 한국국민들이 유의 깊게 바라보아야 한다”며 강의를 맺었다.

강남구청에서 강연중인 마이클 심교수


미국에서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후보직 수락 연설을 한 가운데 그의 상대가 되는 바이든 대통령이 7월 21일 현재 후보사퇴를 선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후보사퇴 발표 이후 교체 후보에 대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침묵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는데, 오바마 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결정에 찬사를 보냈고, 이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선언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사퇴 성명서에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민주당의 원로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즉시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뒤 며칠 뒤에 오바마 전대통령의 성명이 나온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글로벌리즘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트럼피즘의 선언으로 다극화를 일정부분 용인하면서 미국의 Nationalism을 얼어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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