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섭의 여행스케치] 교토에서 개인전을 열다

나에게로 들어가는 시간들의 흔적, 흐르는 공기와 서있는 나무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소리와 내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편집부 승인 2024.07.05 15:42 의견 0

일본, 교토시 국제 교류회관 미술관의 초대로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작년 말에 이야기가 나왔던 교토시의 기획이다. 올 4월에 서울에서 개인 전시가 잡혀 있어서 그 전시를 마치고 나면 불과 2개월의 짧은 시간이기에 많이 망설였으나 용기를 내기로 했다. 올 봄의 전시는 미리 작업하고 있었고 작품 제작을 같이 병행하기로 하였다. 작가라면 의무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고된 날들. 겨울이 지났고 봄이 왔고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일 없이 개인전을 마무리하였다.

[시사의창 2024년 7월호=이두섭 화백(글/그림)] 초여름이 되었다. 제작된 작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김포에서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걱정이 앞선다. 당연하겠지만 여행과는 전혀 다른 결의 감정이다. 곧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작업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은 전시의 성패를 떠나 방향 없는 불안이다.

전시 설치 전날 오후 늦게 도착한 오사카 간사이공항.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본의 전 지역의 기후는 잘 모르겠고 간사이 지역은 6월부터 우기라고 전해 들었다. 덥고 습하고 많이 힘들다고, 아무래도 활동의 제약이 있을 테니 비가 안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교토에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고 이미 어두워진 시조 거리를 산책해본다. 기온 시조까지는 매우 붐비는 지역이다. 그곳에 이르러서 교토시를 가로지르는 가모가와 강((鴨川) 근처까지 왔다. 이곳은 세계의 많은 나라의 관광객들이 유입되는 곳이다. 오늘도 많은 외국인들이 있구나. 하긴 교토는 세계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니까 그럴만도 하다. 웬일인지 가모가와(鴨川)에는 매우 많은 양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주 가는 아자카야에 들러 그곳 사장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 사장님의 말로는 아침까지 폭우가 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비가 잦아졌다고 한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일본에 올 때마다 비가 내리다가도 그친 적이 많다. 행운일까.

<석등> 이두섭


작품 설치 당일이 되었다, 작품을 들고 교토시 국제 교류협회로 이동하였다. 헤이안 신궁과 교세라 미술관, 교토국립현대 미술관, 교토 시립 미술관 등이 있는 곳이다. 일본 특유의 정갈함을 보면서 미술관에 도착하여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작품 설치를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넓은 전시 공간이다. 내가 가져온 작품이 공간을 채우기에 약간 부족할 듯하였다. 그래서 한쪽 공간을 비우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설치를 하면서 이번 전시는 어떤 의미일까 되새겨 보려 한다. 비어있는 시간에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작품을 마주해 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여기는 외국이라서 나를 찾는 사람은 적을 것이고 어차피 대화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수요일 드디어 전시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많은 관객이 오진 않았지만 간간히 관객들이 그림을 감상하러 미술관에 들어온다. 방명록에 사인을 하시는 분들을 보고 있는데 국제교류의 장소이다 보니 각국의 언어로 이름을 적어낸다. 각 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렇게 모여 일본어 등도 배우고 문화를 교류하는 회의장도 있고 해서 차분하지만 역동적인 장소이다.

<기온시조 버드나무> 이두섭


가슴 짠한 일이 있다. 남루하신 한분이 오셨는데 그림을 한참씩 들여다본다. 고마운 마음이 스며들어 작품 관람하는 모습을 나도 지켜보았다. 실은 요즈음 내 그림의 정의를 내릴 때 누구나 그려낼 수 있는 그림, 너무 쉽게 그린 듯한 ……. 그래서 그림을 볼 때마다 비난의 빌미를 제공하는 그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그림이다. 사랑 받고 싶지만 사랑을 거부하는 그런 모순의 태도가 내 작업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그분이 그림을 다 보고 나서 방명록에 사인을 하시는데 한자의 한국이름이었다.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어보니 일본에서 아버지 대부터 오래 살았다고 더듬이며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국말 잘 못한다고 했다. 고맙다는 말을 일본어로 몇 번이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다. 재일교포시구나. 한국은 퇴화되고 일본으로 진화되신 나이 많으신 분. 우리의 모국어를 사용 못하시는 것은 열심히 살았던 흔적 때문일 거란 생각을 하며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음식을 사가지고 먹으라며 가져오셨다. 고마운 마음과 약간 짠한 마음이 동시에 스몄다. 넉넉지 않은 살림일 텐데. 이 정도로 못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작은 마음이 고마움으로 느껴져 감동이 느껴졌고 더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큰 용기가 생겼다.
관객이 뜸한 시간, 나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동시대 미술이라는 것에서 나의 작업태도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결론은 현재를 의식할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나’를 의식할 것.

작업의 결과를 생각해 본다. 내 작업 세계가 작품 속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검은 커튼을 내리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후회이며 고백이라면 자금 나를 지탱하고 있는 ‘흘러내리는 것’이라는 시그니처는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좋지 않은 감정이 그림을 그릴 때 사라짐을 느낀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불확실성에 목숨을 기대고... 말도 안 되는 그림을 성취의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감성에 온 정신을 기대고 확신을 갖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지금처럼 살아야지 하는 생각, 그것이 이번 전시에서 얻은 소중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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