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인문학] 존재이며 부재인 색, 하양

편집부 승인 2024.07.05 15:07 | 최종 수정 2024.07.05 15:09 의견 0

[시사의창 2024년 7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비가 온 뒤의 적당한 습도, 10℃ 정도의 일교차”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갸우뚱하겠지만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운해를 볼 수 있는 조건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된다. 쉽지 않은 어찌 보면 까다로운 조건이다. 그러나 그 까다로움도 정상에서 보게 되는 풍광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마치 온 세상이 솜사탕처럼 몽실몽실한 털뭉텅이 속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황홀경 그 자체에 빠지게 하는 듯하다. 자연의 축복을 느끼는 순간에 ‘하~’ 하는 한숨만 내뱉어질 뿐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천마산 운해(천마산군립공원, 남양주, iphone, 2024.06.09.AM05:40)


운해(雲海), 구름으로 마치 바다를 이루는 것이다. 적당한 습도, 온도가 맞아 떨어지고 그리고 중요한 나의 시선이 내 몸이 그곳에 있어야만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된다. 중간 중간 솟아 있는 산봉우리는 입체적인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음영의 차이로 인해 자연스러운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지고 일출이라도 떠오르면 붉게 물들어가며 맛닿은 하늘을 보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는 시선과 시각에 대해 감사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하양은 빛의 총합이자 모든 색의 부재로, 그 자체로 신비롭다. 하양은 순수함, 청결,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며, 이러한 상징성은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서 강력하게 작용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 카즈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tch, 1878-1935)의 '백색 위에 백색(1918)'은 하양의 단순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색과 형태를 최소화하여 순수한 예술의 본질을 탐구했으며, 하양이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그의 철학적 사유를 반영한다.

요코 오노(Yoko Ono, 1933~)의 ‘CUT PIECE’는 어떠한가? 일본 출신의 예술가 요코 오노는 1964년에 행위 예술 'Cut Piece'를 선보였다. 오노는 흰 옷을 입고 무대에 앉아, 관객들이 그녀의 옷을 잘라내도록 허용했다. 이 퍼포먼스는 하양이 순수함과 동시에 취약함을 상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흰 옷은 관객과 예술가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형태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인간의 본성, 권력, 취약성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오드리 햅번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하양은 어떤 의미였을까? 우아함의 상징이자 청순함, 순수함, 세련됨, 고귀함을 나타낸다. 의상 디자이너 이디스 헤드(Edith Head)는 하얀색을 입은 햅번을 상상하며, 공주로서의 이미지에서 로마의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다니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었다. 하얀 블라우스와 스커트, 마치 트레이드마크처럼 그녀를 연상케 하는 복장이다. 진실의 입 앞에서 손이 잘린다는 전설에 겁에 질리는 장면에서도, 안개 낀 아침, 공주로서 로마를 거니는 모습에서도 순수한 하양이 그녀 내면의 세계와 자유를 나타냈다.

이처럼, 하양은 빛의 총합으로 나타내는 결과물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으로서 존재한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 1941~ )는 하양을 통해 공간의 순수함과 고요함을 표현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빛의 교회(Church of the Light, 오사카, 1989)'는 하얀 벽과 빛을 통해 신성함을 평온함과 명상으로서의 고귀함을 영적인 순수함을 전달한다.

하얀 공간에서 방문자는 외부세계의 혼란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틈새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형상화된 십자가를 통해 신성하고 초월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빛과 어둠의 대비 또한 빛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 명암이다. 빛을 최대로 반사하여 인간에 대한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고 신성함과 존재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킨다. 개방감은 어떠한가? 하얀 벽은 공간을 더 넓고 개방감 있게 느끼게 한다.

공간에 대한 제약은 사라지고 신성한 공간에서의 자유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빛의 층위로 복잡한 감정은 단순화시키고 본질에 더욱 충실하게 하는 것, 그것이 빛의 교회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리라.
천마산의 운해는 이 모든 이치들을 담고 있는 자연의 결과이다. 빛이 있고, 음영이 있다. 음영을 통해 나타내는 어둠은 그저 빛이 있기에 자연스레 간극을 만들고 그 간극에서 복잡함은 사라지고 오롯이 단순한 본질에 빠져들게 되는 것, 그것이 자연이 주는, 빛이 주는, 흰색이 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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