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경복궁의 파수꾼 서수들 중에는 혀를 내밀고 있는 메롱 서수(상서로운 짐승)가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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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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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금천인 영제천에는 ‘메롱’ 하며 혀를 내미는 장난스러운 천록이 있다. 필자가 처음 경복궁 해설사가 되기 위해서 경복궁 금천교 좌우 남북의 석축에서 물을 내려다보는 천록에 대해서 해설을 들을 때였다. 유득공의 ‘경복궁 유관기’에 의하면 후한서에 기록된 천록은 물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금천교의 남북단 좌우 네 곳에서 파수를 서는 서수이다. 재미있게도 네 마리중 한 마리가 혀를 내밀고 메롱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유는 기록에 없고 조상의 해학이 뛰어나다. 라는 정도의 추정만 있을 뿐이다. 역사에 대한 추정은 기록이 있거나 실체가 있을 때는 추정할 필요가 없지만 그러하지 못할 때는 합리적 추정이 필요하게 된다. 합리적 추정이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으면 다수설이 되며 많은 다수설 들은 그러한 과정으로 다수설이 되는 것이다. 그럼 영제천의 메롱 천록이 조상의 해학이라는 것이 맞는지 알아보자.
[시사의창 2024년 7월호=민관홍 칼럼니스트(우리문화숨결 경복궁해설사)] 2018년 10월 경복궁 영건일기가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면서 조상의 해학이라는 추정은 맞지않다.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한옥 건축물의 서까래 끝을 마구리라 한다. 이곳에도 단청 문양을 하는데 보통은 연꽃 문양을 많이 한다. 어떤 화공이 여기에 허락없이 눈꽃 결정인 육화를 그렸다가 대원군에게 엄한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경복궁 영건일기에 있다.
따라서 서까래 끝의 문양보다 훨씬 중요한 경복궁의 명당수인 금천을 지키는 천록에 메롱 천록을 일개 석공이 자신의 해학미를 위해 조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물론 천록 네 마리를 똑같이 조각하는 것에 단조로움을 느끼는 것이 석공은 물론 당대 지식인들의 문화적 분위기라 본다면 그럴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든 해학미든 석공의 의견을 공감한 결정권자의 지시일 수도 있고 그러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석물들을 결정하는 결정권자의 상명하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메롱 천록이 혀를 내밀고 있는 이유에 관심을 갖는 동안 혀를 내밀고 있는 다른 서수, 귀면(혹은 용면)을 알게 되었다. 혀를 내밀고 있는 귀면은 광화문 중앙 홍예문의 이마 돌에 있다. 광화문 홍예문은 양쪽 기단에서부터 돌을 쌓아 올려 중앙에서 만나는데 중앙에서 양측의 돌들을 절묘하게 지탱하는 중요한 돌이 이마돌이다. 좌우 홍예문의 이마 돌에는 똑같이 부조한 온전한 용 한 마리가 커리컬쳐 스타일로 새겨져 있다. 세 마리 중에 한 마리만 다르게 그것도 혀를 내밀고 있으니 이것도 해학미나 단조로움에 대한 일탈로 추정해야 하나? 혀를 내미는 서수가 둘이면 무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고, 메롱 서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경회루 북쪽 석축 아래에서 발견된 청동용도 혀를 쭉 빼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어디 간 지 모르는 용 한 마리가 발견된다면 그 용은 혀를 내밀지 않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 한 마리 메롱 천록, 광화문 이맛돌의 귀면, 경회루에 화마를 막으려는 청동용 두 마리 중 발견된 한 마리도 혀를 내밀고 있으니 정말 혀를 내밀고 있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추적 연구해 보자! 라는 필자의 의지가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먼저 사람이 혀를 내미는 일반적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자신의 실수가 겸연쩍거나 멋쩍어할 때. 둘째, 다른 사람을 놀리거나 도발할 때. 그런데 왕이 지나는 문 위에서, 왕이 노니는 연못 속에서, 왕이 사는 궁 안으로 들어올 때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금천에서 경계를 담당하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멋쩍어한다거나 남을 놀리는 의도로 혀를 내민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예를 찾아보지 못하였으니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검색하다 보니 티벳의 인사법이 눈에 들어왔다.
티벳의 전통 인사법은 모자를 벗고 혀를 내미는 것이다. 그럼 메롱 서수들도 날카롭게 경계를 서지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볼까? 궁궐의 물 속이나 물 위에나 공중에서 나쁜 놈들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니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으로 혀 내미는 티벳 인사법을 대입해 보았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티벳의 인사법은 왜 그럴까? 다시 이런저런 루트로 티벳의 인사법을 찾아보았다. 티벳의 인사법에 얽힌 이야기는 가슴 아픈 역사였다. 티벳의 불교를 부흥시키려는 9세기 전반의 랄빠첸왕(본명은 띠쭉데첸)은 불경 번역 사업을 활발히 하고, 사원과 승려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었다. 심지어 승려 한 사람을 부양하기 위해 다섯 집에서 갹출하는 제도를 만들기도 하여 민중의 고초는 극심하였다. 이 때, 뵌교(티벳의 토속신앙)의 잔존세력들과 결탁한 귀족들이 랄빠첸 왕을 암살하고 랄빠첸 왕의 형인 랑다르마를 왕으로 앉혔다. 백성들은 처음에는 좋아했으나 랑다르마 왕은 사원들을 모두 파괴하고 승려들을 환속시키거나 백정으로 만드는 등 극심한 불교 탄압을 자행했고 백성들을 공포정치로 다스렸다.
공포정치를 하였던 랑다르마는 불교 승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혀를 내미는 인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랑다르마 왕이 혀가 검고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악마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자신이 랑다르마가 환생한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럼 경복궁의 메롱 서수들도 나는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조선의 경복궁까지 이어진 것인지,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티벳과 한국의 만남을 찾아보았다. 양승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역사적 문헌학적인 사실을 통해 한국불교와 티벳 불교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연구하였다. 한국불교와 티벳불교의 만남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왕자 출신의 김무상(金無相, 680~756) 통일신라 스님과 티벳 사신들과의 만남이고, 또 하나는 원측(圓測, 613~696) 스님의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와의 만남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 두 만남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자는 티벳 불교의 기초를 세우는데 기여했다고 하는 것이고, 원측은 티벳 불교에서 유식학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들로 인해 경복궁 서수의 혀를 내미는 인사법은 알 수 없었다. 혀를 내미는 인사법은 랑마르다 왕 사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티벳에서 원나라와 고려로 전래된 라마 불교에서 혀 인사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과는 혀 인사법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혀를 내미는 부처상’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법화경의 부처님의 십신력’이라는 글에 ‘부처가 넓고 긴 혀를 내밀자 하늘까지 닿았다. 이것은 고대 인도에서 혀를 내미는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였던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혀가 넓다는 것은 십계의 모든 중생을 넓게 구제한다는 의미이며, 혀가 '길다' 는 것은 구원 이래의 묘법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석존 전신의 모혈에서 빛이 나와 모든 색의 빛을 발하여 시방세계를 비추었다. 모든 부처님도 마찬가지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무량의 빛을 발했다’고 한다. 혀를 내미는 부처상은 아니나 혀를 내밀고 있는 벅수(일제에 의해 장승이라 바뀜)상은 발견하였는데 그 이유는 역시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서수가 혀 내미는 이유를 찾아보다가 호주 원주민 마오리족은 혀를 내밀며 상대를 위협하고 자신의 강함을 내보인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럼 조선의 메롱 서수도 그런 것을 아는 석공이나 경복궁영건의 총괄 책임자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는 의도로 4마리 중 한 마리를 혀를 내미는 조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럼 호주의 혀 내미는 전통은 어떻게 조선의 서수와 연결이 된 걸까? 이것은 추적하기 힘들었다. 다만 인도네시아, 오세아니아, 중국 남해와 대만, 오키나와,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의 환태평양 해양 문화의 연결 루트를 통해 제주도의 정낭이나 똥돼지, 남방식 고인돌 등 문화적 친연성은 찾았지만 호주 마오리족의 혀 내미는 이유와 경복궁 서수의 혀 내미는 연관성을 찾기란 역부족이었다.
서수들의 혀 내미는 이유를 경복궁 석공이나 책임자들이 그 이유를 기록했으면 이렇게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마지막으로 떠오른 이유가 아가들의 투레질이었다. 예전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아기가 투레질을 하면 비가 올 징조’라고 하였다. 주변에 아기가 투레질을 하면 비가 오는 것을 목격한 적이 많은 필자는 아기가 혀를 조금 내밀고 침을 흘리며 혀를 떠는 투레질을 혀를 내미는 서수에 적용해 보았다. 목조건물의 화재에 당한 트라우마로 화재 예방 비방을 궁궐 곳곳에 장치한 선조들의 해학 넘치는 화재예방 비방인가? 그럴듯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소아과 의사 말로는 아기의 투레질에 비가 온다. 는 속설은 근거가 없고 아기의 정상적인 발육과정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경복궁 서수의 혀 내미는 이유는 긴 글을 쓰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 이유를 정리해 보자. 1. 조상의 익살이다. 2. 익살과 단조로움의 지양은 당시 사람의 문화적 분위기이다. 3. 티벳의 전통 인사법(나는 악마가 아니다.라는 표시) 4. 호주 마오리족의 호전적 행동이다. 5. 법화경의 부처님 혀의 의미 6. 아기의 투레질처럼 비를 갈구한다. 여섯 가지를 경복궁 서수의 혀 내미는 이유로 살펴보았으나 결론은 단정할 수 없다. 서두에 말했지만 확실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경복궁에 혀를 내미는 서수가 셋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러분의 우리 궁궐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지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복궁에 오시면 광화문 가운데 홍예문 이마돌에 귀면의 내민 혀를 보시고, 금천 영제교에 서수의 메롱도 보시고, 국립고궁 박물관에 청동용의 혓바닥 크기도 재보고 가시기를 권한다. 단, 서수가 혀를 내미는 이유는 여러분의 선택과 상상력에 맡기도록 하겠다. 혹시 궁궐의 어딘가에 혀를 내미는 다른 서수를 찾는다면 연락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지난 5월호 정정 내용*
광화문 앞 중앙홍예문 여장 위의 팔괘 중앙에는 이괘(불을 상징)를 배치하였고 문 뒤 중앙 홍예문 여장 팔괘 중앙에는 감괘(물)를 배치하였다. 관악산의 화기를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우뚝하게 높일 숭(崇)자의 높은 산과 불의 기운으로 이열치열하며 설치하듯 불을 상징하는 이괘로 이열치열하고, 남은 화기는 뒤의 감괘로 잠재우는 배치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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