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엔저도 고민, 엔화가치 상승도 고민, 그러한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정부도 고민...거미줄 금융망의 숙명

엔화가치 38년 만의 최저치...심리적 저항선마저 무너졌다
日재무상, 엔/달러 161엔 근접에 "정부 필요시 적절 대응"

정용일 승인 2024.06.28 12:58 | 최종 수정 2024.06.28 13:03 의견 0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시장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심리적 저항선인 1달러당 160엔마저 뚤렸다. 엔화 대비 달러의 가치가 1986년 이후로 38년 만에 가장 비싸졌다.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설마설마 했는데 엔화 가치가 이렇게까지 떨어질줄은 몰랐다"고 놀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여파는 그대로 한국경제에 충격을 가할 수 있어 정부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61엔대까지 근접하며 엔화 가치가 38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잇달아 외환 시장 개입을 시사하는 구두 개입을 했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27일 도쿄 재무성에서 기자들과 만나 급격한 엔화 약세에 대해 "긴장감을 갖고 (엔저) 움직임을 분석하겠다"면서 "필요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9차 한일 재무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간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도 전날 최근의 엔저 움직임에 대해 "한 방향인 것은 틀림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급격한 엔저 진행에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면서 "지나친 움직임에는 필요한 대응을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 달러당 160엔을 넘어서 올해 4월 29일 이후 2개월 만에 160엔선을 돌파했다. 이후 160.8엔대까지 상승하며 일본 거품(버블) 경제 시기인 1986년 12월 이후 37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오전 11시 반 현재 달러당 160.4엔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일본 모 은행 외환 담당자는 "미일 금리차가 명확히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28일 발표되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시장 예상을 웃돌면 달러당 161∼162엔대까지 엔저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일본 당국은 4월 26일부터 5월 29일까지 약 한 달간 9조7천885억엔(약 85조원) 규모의 시장 개입을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언론은 최근 엔화 약세 현상에 대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관계자가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발언을 하면서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해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연합뉴스

'바겐세일' 성토 쏟아지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지금의 상황에선 적어도 이번 여름 휴가철까지는 지난 16년 사이 가장 저렴한 수준에서 환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끝없이 추락하던 엔화는 지난 연말 이후로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다시 하락세가 가팔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 정부 역시 "언제라도 대응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등 높은 경계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 보이지만, 지금 일본이 처한 현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로서는 지금의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또 비싸질것을 우려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미국과의 금리차, 돈값 차이가 너무 크며 그러한 시기가 예상을 뛰어넘어 너무 무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지난 3월 17년 만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표면적으로는 금리 인상이라 하지만 결국 마이너스 금리에서 제로 금리로 올린 정도에 불과해 엔화의 가치에는 현실적인 변동이 없는 수준이다.

일본이 이처럼 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미국이 곧 금리를 내릴 것이란 예측 때문이었다. 달러에 붙는 값이 곧 내려갈 것이란 기대가 컸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로만 끝났고, 일본의 예측의 제대로 빗나갔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금리차는 커지고 그렇게 부담스러운 기간은 계속 길어지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상화이지만, 또 일본의 입장에서는 수출이 더 잘 되는 부분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현 상황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바겐세일을 당하고 있으며, 너무 굴욕적이다"는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수입물가가 워낙 비싸져서 정작 일본인들은 먹고살기 힘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만, 일본정부가 섣불리 어떤 행동을 취하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칫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일본보다 수입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크기 때문에 물가 걱정도 덩달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큰 이유가 지금처럼 버티다못해 엔화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조취를 취할 경우 우리의 환율이 바로 영향을 받아 원화 값이 크게 출렁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슈퍼엔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엔화가 비싸지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일본, 그러한 일본을 노심초사 바라보는 한국정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국제 금융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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