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인문학] 인연과 색

편집부 승인 2024.06.07 13:57 의견 0

[시사의창 2024년 6월호=김향란 칼럼니스트] 불교용어 중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는 모든 사물의 현상은 그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것으로 명나라 말 승려 운서주굉(雲棲株宏)이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당시의 의미로는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스레 부딪쳐 깨져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이로써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오늘날에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즉, 인연이 되어야 만나게 되고, 인연이 안되면 헤어지게 되는 사람과의 관계에 의미를 둔다.
그러나, 비단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내가 쓰던 물건들 즉, 사물과도 시절인연은 존재한다. 내겐 비오는 날이면 항상 즐겨쓰는 우산이 있었다. 그것도 노란색 우산을 말이다. 얼마전 비오는 휴일에 쓰고 나갔던 우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늘상 비오는 날이면 함께 했던, 누군가 인연을 다해 내집에 두고간 우산이 나와 시작된 연으로 몇해를 그렇게 함께 했는데 아쉬움을 뒤로한 채로 그렇게 연이 다하고 말았다. 붓다의 말씀처럼 인(因)과 연(緣)이 합해져 인연이 되었던 우산이 인(因)과 연(緣)이 흩어져 잃어버림이라는 결과를 나은 것처럼,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듯, 다 그 때가 되면 자연스레 이루어지듯, 비오는 날의 친구가 되어준 노란 우산은 그렇게 나와의 연이 다해 다른이의 손으로 이어져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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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은 활기와 에너지를 부여하고, 낙천적인 성향으로 전환시켜주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자극하게 해주는 그런 색이다. 노란색이 주는 이러한 테라피적 효과는 다분히 증명되고 있는 효과인데, 비오는 날이면 유독 노란 우산만을 고집했던 것은 사용성 이상의 의미가 있다. 추억이 있어서도, 어떤 기억이 나서도 아닌 자연스레 손이 간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비가 오는 것은 자연스레 지표면의 온도차이로 인해 증발, 응축, 구름형성, 강수 등의 네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구름형성이라는 단계가 선행되기 때문에 어두움을 느끼는 본능이 밝음을 향한 욕구로 노란색을 채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발달한 행동 패턴의 일환이며, 어둠이 존재하니 밝음이 있고, 차가움이 있으니 따뜻함이 있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색이 내게 와서, 왜 그런 기분을 만드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시나브로 전해지는 우산과 내가 보내는 파장의 공명이 자연스레 취하게 하는 이유도 있는 듯하다. 색에는 고유의 신호가 있다.
어떤 신호는 경고를, 어떤 신호는 안전을, 어떤 신호는 멈춤을 말이다. 노란색의 신호는 경고의 메시지를 날려준다. 가장 멀리서도 보이는 유목성이 띄어난 색이어서, 비오는 어두운 날에 노란 우산은 ‘여기에 사람 있어요!’ 라고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비오는 날의 운전은 맑은 날에 비해 몇 배는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 시야에서 움직이는 와이퍼와 안개 덕분에 가시거리는 짧고, 흐린 날씨로 선명하지 않은 형태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노란 비옷이나 우산을 쓴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다.
마치 저음의 블루스 음악이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피아노 연주곡이나 신나는 비엔나왈츠곡으로 오버랩되는 그런 느낌이다.
내게서 떠나간 노란 우산은 누구의 손에 들려있을지 모르겠다. 그 색이 그에게도 좋은 에너지로 사용되길 바랄뿐이다. 원래 왔던 자리로 되돌아 간 것일지 아님 다른 타인에게 또 의미 있는 존재로 남으려고 그랬던 것인지, 이젠 떠남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미 내게로 와서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그 시간에 대한 감사와 내게 준 즐거움의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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