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 할머니는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다..." 차량 급발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반드시 바로 잡아야

도현군 아버지 "명백한 차량 결함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밝혀
'차량 급발진 논쟁' 속 22대 국회에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 가능할까

정용일 승인 2024.05.28 10:12 | 최종 수정 2024.05.28 10:27 의견 0

[시사의창=정용일 기자]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차량의 결함에 의한 급발진 여부를 밝힐 또 하나의 재연시험이 27일 이뤄졌다. 차량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한 법적 공방에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제조사측의 잘못을 인정한 사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결과는 앞으로 있을 유사사례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27일 오전 강원 강릉시 강릉교회 티지홀에서 도현이 가족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가 지난달 이뤄진 국내 첫 재연시험의 감정 결과를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차량 제조사인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약 7억6천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도현이 가족은 이날 강릉시 강릉교회 주차장에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을 진행했다.

지난 4월 19일 사고 현장 도로에서 이뤄진 국내 첫 재연시험 이후 두 번째 재연시험이다. 이번 재연시험은 '웽'하는 굉음을 내기 시작한 뒤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기 전 AEB가 작동하지 않은 건 결함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진행됐다.

이번에도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와 함께 모닝 차량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 스티로폼이 쓰였다. 시험은 사고 당시와 비슷한 속도 하에 가속페달과 기어만 조작하고 브레이크는 일절 밟지 않는 조건으로 총 세 차례로 나뉘어 이뤄졌다.

세부적으로 ▲ 시속 40㎞로 주행하다가 전방 추돌 경고음이 울렸을 때 가속페달을 떼는 경우 ▲ 시속 47㎞로 주행하다가 경고음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가속페달을 밟는 경우 ▲ 시속 47㎞로 주행하다가 경고음이 울렸을 때 기어를 주행(D)에서 중립(N)으로 바꾸는 경우로 나뉘었다.

결과적으로 세 차례 시험 결과 모두 모형 스티로폼 앞에서 AEB가 정상 작동함으로써 차량이 멈춰 섰다. 이는 "모닝 추돌 전 전방 추돌 경고음이 7차례나 울렸음에도 AEB가 작동하지 않은 건 결함에 해당한다"는 도현이 가족의 주장을 강화하는 결과다. AEB가 작동했었다면 차량이 정지해 도현군이 숨지는 사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27일 오후 강원 강릉시 강릉교회 주차장에서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기능 재연시험이 진행됐다. 사고 차량과 같은 2018년식 티볼리 에어 차량이 모닝 차량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 스티로폼 앞에서 AEB 기능 작동으로 인해 멈추어 서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제조사 측은 'AEB는 가속페달 변위량이 60% 이상이면 해제된다', 즉 60% 이상의 힘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AEB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함을 부정해왔다.가속페달 변위량은 가속 정도를 퍼센트(%)로 변환해 나타내는 기록으로, 99%부터 '풀 액셀'로 평가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역시 'AEB는 운전자에 의해 해제되어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조사 측 주장과 궤를 같이했다.

도현이 가족의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시속 40∼46㎞가 가속페달 변위량이 60% 이하라는 건 자동차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AEB 미작동은 이번 사고를 발생시킨 또 하나의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어 "설사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모닝 차량을 앞에 두고 AEB가 작동했더라면 비극을 방지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도 AEB가 작동하지 않은 건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강조했다.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씨는 "소비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검증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며 "모든 감정 결과 운전자가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고, AEB가 작동하지 않은 점은 명백한 차량 결함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씨는 "모든 과정을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건 국과수 뒤에 숨어서 제조사는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국과수는 자의적인 추론으로 검증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도현이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답답하고, 억울하고, 울분이 터지는 이 상황들을 계속해서 맞닥뜨려야 한다"며 "22대 국회가 시작되면 다시 한번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촉구하는 국민동의 청원을 내겠다"고 했다.

도현이 가족은 이날 AEB 기능 재연시험에 앞서 지난달 19일 진행됐던 공식 재연시험의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도현이 가족은 ▲ 제조사 측 주장과 달리 '변속패턴'이 다른 점 ▲ 차량에는 결함이 없다는 국과수의 분석과 비교했을 때 '주행데이터'는 현저히 다른 점 ▲ 풀 액셀을 밟았다는 사고기록장치(EDR) 기록대로 풀 액셀을 밟은 결과 '속도 변화'는 훨씬 컸던 점을 들어 "할머니는 페달 오조작을 하지 않았음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대림대학교 자동차과 김필수 교수


한편 지난해 급발진사고와 관련해 서울특별시의회 교통위원회에서 열렸던 '자동차 급발진 사고원인 및 사고해결 방안을 위한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았던 김필수 교수는 "한국의 블랙박스 보급률은 80%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며 "(급발진 사고 영상이) 직·간접적 증거로 제공되면서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간 급발진 평균 신고 건수는 약 100건 내외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약 2000건 내외로 추정한다"며 "이중 20%(400건)가 실제로 급발진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차량 급발진 문제와 관련해 본지와의 통화에서 "급발진 사고 추정 원인으로 △소프트웨어 오류 △브레이크 진공 배력 장치 문제 △가속페달 바닥매트에 걸림 문제 △기판 관련 문제 등을 지적했다. 특히 전기·하이브리드차 보급이 늘어나는 만큼 소프트웨어 오류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제조사가 급발진 가능성을 인정하고 결함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는 의견과 명확한 원인 규명 없이는 급발진 존재를 인정하기 이르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결함을 제조사가 밝히는 구조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운전자가 결함을 밝혀야 하는 현 상황은 소비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급발진 사고에 있어 우리나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돼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죄 등 소비자를 위한 법제가 마련돼있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소비자를 위한 법제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일 기자 city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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