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칼럼] 한국 아마복싱사상 최초,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 김정철과 파주권투 체육관 김태승 관장

조영섭 승인 2024.05.23 09:54 | 최종 수정 2024.05.23 18:14 의견 32

[시사의창=조영섭 스포츠 전문기자] 지난 주말여행 삼아 경기도 파주로 떠났다. 파주는 한반도의 허리 부분 에 위치한 도시로 영걸(英傑)한 윤관장군과 동방의 공자로 불리는 이율곡 선생 대학자 성우계 선생 등을 배출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발생지인 문향의 고장이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천혜의 임진강이 파주의 중간을 가로질러 흐르고 동북쪽으로는 경기 5악 (岳)의 하나인 감악산이 우뚝 서있다.

복싱으로 눈을 돌리면 동양 LF 급 챔피언 정선용, JR 페더급 세계 랭커 이기준, 형제 복서 전국선수권자 고기봉·고연봉이 탄생한 이 고장 파주에는 현재 1988년 MBC 신인왕전에서 우수신인왕 상을 받은 고용남, 체육관을 경영하는 김태승 관장, WBA(세계복싱협회) 국제심판위원으로 활약하시는 김병무 심판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파주는 한국 아마복싱 백년사에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김정철의 본향이기도 하다. 밴텀급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정철은 지난 2020년 3월 복서 출신의 박윤수 역술인과 함께 필자가 근무하는 강동구체육관을 방문 함께 담화를 나누던 지난날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간다.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역술인 박윤수와 김정철선수(우측)


이후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곤 2021년 5월 어느 날 파주요양원에 계신 김정철을 만나기 위해 고용남 후배와 문병(問病)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박윤수 역술인에게 김정철 선배가 지병으로 인해 타계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1957년 3월 20일 파주에서 보육원을 설립한 김경일 이사장의 5남 2녀중 4남으로 태어난 김정철은 율곡중 재학시절부터 축구와 배구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기초체력이 탄탄한 학생이었다. 1973년 상경 동양공고에 입학하면서 복싱 (신한체) 에 입문 이한성 선생의 지도를 받는다.

이한성 코치와 김정철선수(우측)


LF급 국가대표 출신의 이한성은 최초의 3형제 복서 출신이고 그의 외삼촌은 1936년 개최된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 복싱 국가대표(웰터급)로 출전한 이규환이다. 신한 체육관에는 후에 WBC 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하는 박찬희를 비롯 2회 연속 킹스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박인규,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임병진 등 기라성같은 복서들이 이한성 선생의 지도를 받으면서 포진되어 있었다.

동갑내기 친구 박찬희 김정철선수(우측)


왼손잡이 복서 김정철은 1974년 처녀 출전한 제10회 서울 신인대회(코크급)에서 출전, 마치 바위라도 폭파시킬 것 같은 묵직한 펀치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면서 5연승(3KO)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해 개최된 제24회 학생선수권 대회에서도 역시 4연승(2KO)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한다,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김정철은 대한체육회에서 선정한 우수선수 20명에 발탁되어 장학금을 받는다.

1975년 3월 김정철은 제3회 아시아 주니어선발전 LF급 결승에서 김운석(이리 남성고)과 다운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판정패 고배를 마신다. 당시 최우수선수상은 유옥균을 꺽은 F급 강희용이 받았고 L급에선 고려 체육관이 이다노(이정식), LM급에선 현재 대한복싱협회 심판위원으로 활동중인 박일규(충남체)가 우승을 차지한 대회였다. 그러나 그 패배는 김정철의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된다.

복서들은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패했을 때 값진 체험과 산지식을 더 많이 습득(習得)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철은 그해 벌어진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후에 IBF F급 세계챔피언을 지낸 권순천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홍진호(수경사)를 각각 판정으로 잡고 돌풍을 일으킨다.

동국대학에 진학학한 1976년도의 김정철


1976년 2월 김진영 감독이 전격적으로 동국대학 복싱팀을 창단하자 고교 랭킹 1위 김정철은 B급의 황철순과 함께 창단 멤버로 입학을 한다. 1976년 7월 몬트리올 올림픽선발전 F급에 출전한 김정철은 유옥균을 B급에 출전한 황철순은 박인규를 각각 판정으로 잡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올림픽 본선에 출전한다.

그 중심엔 지덕체를 겸비한 복싱계 명장 김진영 동국대 감독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복싱이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러일전쟁이 발발한 해인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대회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투쟁의 과정이라 말하면서 본질적인 것은 올림픽은 승리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싸우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현대 올림픽은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마치 국력의 전시장으로 변형되어 올림픽은 총소리가 나지 않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해방 이후 7차례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스포츠가 획득한 메달은 모두 12개다. 중요한 사실은 이중 절반인 6개가 복싱 한 종목에서 나올 정도로 당시 한국복싱은 최고의 효자종목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한국팀의 참가인원은 박찬희(LF급) 김정철(F급) 황철순(B급) 최충일(Fe급) 박태식(LW급) 김주석(W급) 등 6명이었다. 그러나 중량급에선 단 한 명도 출전시키지 않았다.

숙명의 라이벌 김정철과 황철순(우측)


그 이유는 1972년 뮌헨올림픽 LM 급에 출전한 임재근 선수가 쿠바의 롤단도 가르베이 선수에게 2회 RSC로 패하자 한국복싱의 중량급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외시켜 LM 급에 선발된 박일천 (전매청)은 뛰어난 기량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전을 하지 못해 대표적인 희생양이 되었다.

본선 1회전에서 김정철은 태국 선수에게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2차전에서 불가리아 선수에게 판정패를 당해 탈락한다. 그리고 황철순 박찬희 최충일 등 8강에 진출한 3명이 모두 메달권에서 탈락한다, 크게 상심한 김정철은 1년 4개월간 공백기를 갖는다. 1978년 3월 제2회 세계선수권대회(유고) 국내 선발전에 밴텀급으로 출전한 김정철은 결승전에서 황철순을 꺽고 올라온 곽동성과 맞대결 2회 RSC승을 거두고 6연속 KO 퍼레이드를 펼치며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결승전 경기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김정철의 명백한 반칙타(反則打)에 의한 승리였다.

유고 세계선수권 3위에 입상한 김정철(우측)


유고 세계선수권 본선 1회전에서 일본 선수에게 2회 RSC승. 2차전에서 소련의 펠릭 스파크 선수를 2차례 다운을 탈취하면서 판정승을 거두고 8강에 진출한 김정철은 준결승전에서 아프리카 선수권자인 케냐의 모데스티 다푸니에게 판정승 동메달을 확보했다. 그러나 유고 선수와 준결승전을 앞두고 8강전에서 입은 손가락부상과 버팅으로 인한 안면부상으로 다음 경기에 불참한다.

동메달을 획득하고 귀국한 김정철은 파주시 체육회주선으로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획득한 동메달로 인해 그는 일약 송순천 지용주 장규철 고생근 황철순 문성길로 연결된 밴텀급 계보(系譜)의 한 축을 담당한 복서로 등재된다. 1978년 10월 김정철은 방콕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숙적 황철순에 판정패를 당하자 프로에 전향한다. 동국대 3학년 때인 1979년 1월이었다.

WBA 주니어 페더급 6위에 랭크 되면서 9전 6승(5KO) 3패를 기록했지만 1982년 2월 일본의 구와바라 선수에게 치명적인 4회 KO패를 당하면서 낙엽처럼 초라한 모습을 보이자 미련 없이 링을 떠났다.

김정철은 은퇴 후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 캘리포니아 LA에서 윗 형인 김정진 씨와 사업을 하면서 33년간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2019년 귀국 고향 파주에 머무르면서 지내다 지병으로 인해 하늘에 별이 되어버렸다. 현재 김정철이 나고 자란 복싱 볼모지 인 이곳 파주에는 김태승 관장이 2년 전 복싱체육관을 개관하고 선수발굴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김태승 관장 부부와 고용남 그리고 선수들(우측부터)


1975년 문경 출신의 김태승은 두 차례에 걸쳐 한국챔피언을 지낸 최영철 관장의 지도를 받으면서 KPBF(한국 프로권투연맹) 웰터급 챔피언을 지낸 관장이다. 전국체전 경기도 대표에 선발 되는 등 아마복서로 활동하다 37살에 프로에 전향한 김태승은 김환오와 벌인 KPBF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좌우 연타를 날리자 상대는 마치 거목이 번개를 맞고 넘어지듯 캔버스에 쓰러지면서 7회 KO승을 거두고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다.

2017년 43살의 나이에 KBM이 주최한 라이트급 최강전에 진출 준결승전에서 20살이나 어린 국가대표 출신의 정수홍(한체대)과 맞대결한 김태승은 절대열세라는 예상을 뒤집고 치열한 타격전을 펼친 끝에 6회 판정으로 꺾고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결승에 진출 한국판 조지 포먼이란 명성을 얻었다. 비록 결승전에서 권오곤 선수에게 1회 선제 다운을 탈취하고도 4강전에서 당한 골절상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했지만, 불굴의 감투 정신을 선보이며 많은 복싱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복싱 유망주 정상운을 지도하는 김태승관장(좌측)


통산 7승 (5KO) 4패를 기록한 김 관장은 2년 전부터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 슈퍼 플라이급 이기선. 라이트급 김재훈. 페더급 이현준. 슈퍼 웰터급의 권경욱. 등 4명의 국내 챔피언을 배출했다. 김태승 관장은 최영철 관장이 운영하는 복싱체육관에서 훈련할 때 천둥 치는 운명처럼 만난 지금의 아내 허유진 씨와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현재 100명이 넘는 관원들을 확보하고 있다. 아마추어 복서로 정상급 기량을 보여주는 정상운을 비롯 다수의 유망복서를 보유하면서 제2의 김정철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파주권투 김태승 관장의 무궁한 건승을 바란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저작권자 ⓒ 시사의창,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