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 영화 ‘파묘’를 보고 느낀 필자의 생각 그리고 시사점

편집부 승인 2024.05.03 14:30 의견 1
영화 <파묘> 포스터


[시사의창 2024년 5월호=의향도(웹소설 작가)] 들어가며
필자는 어릴 적 국민학교를 다녔다. 필자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한참 뒤에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알고보니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는 일제강점기의 초등교육정책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1995년 8월 당시 정부에서는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학교의 명칭을 변경한다"고 발표했고 1995년 12월 29일 교육법을 개정하여 1996년 3월 1일부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대사 중 하나인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대사에서 가오는 일본어에서 유래했고, 우리가 주유소에 가서 “기름 이빠이 채워주세요”라고 하는 말에서 이빠이도 일본어이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때의 잔재와 문화, 어휘 등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일제강점기가 70년도 더 지났는데도 말이다.
필자가 오늘 소개할 ‘파묘’라는 영화는 한국영화 중 가장 최근에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이다. 제목만 보면 풍수지리와 묘자리 등에 대한 이야기일 것만 같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제강점기 관련 내용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두 번 감상했다. 그런데 처음 봤을 때는 그리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풍수지리와 묘자리 등에 대한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전개될수록 필자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서 매우 당황했다. 영화의 재미 여부를 떠나 예상 밖의 진행에 재미를 느낄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마치 달달한 맛을 기대하고 식당을 갔는데 너무 매운맛이어서 당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 나는 이 영화가 그리 큰 흥행은 못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어느새 천만관객 돌파를 해버렸다. 그 와중에 유퀴즈라는 예능프로그램에는 이 영화 관련한 인물이 세 번이나 출연했다. 한번은 감독이 출연하더니 그 다음에는 배우가, 그 다음에는 이 영화 등장인물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필자는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 이 영화가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고 영화 관련 인물들이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데 혹시 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재미를 못 느꼈던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한번 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제는 달달한 맛을 예상한 것이 아니라 매운 맛이라는 것을 정확히 예상한 상태에서 맛을 한번 더 본 셈이다.
그런데 역시 두 번을 감상해도 필자에게는 매운 맛이었다. 그런데 처음에 봤을 때보다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 보고 나니 감독과 제작진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처음보다는 조금 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파묘> 속 장면


살펴보기
영화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작품이다. 장재현 감독은 ‘광해, 왕이 된 남자’ 조감독을 맡았었고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 오컬트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배우로는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2024년 2월 22일 개봉했고, 관객수 1,170만명(2024년 4월 19일 기준)을 기록 중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묘를 파묘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오컬트 영화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배우들의 연기와 제작진들의 디테일한 설정 등이 빛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작품의 주요 장면, 대사를 살펴보며 필자의 생각을 공유해보겠다.

① “묫바람입니다.”
첫 장면에서 거액의 의뢰를 받고 미국으로 향하는 무당이 나온다. 그녀의 이름은 ‘이화림’(김고은)이고 그녀는 법사 ‘윤봉길’(이도현)과 미국으로 향한다. 의뢰 대상은 다름 아닌 갓난아기였고, 화림은 이 집안에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챈다.
“묫바람입니다.”
이화림은 원인을 ‘묫바람’으로 규정하고 이장을 권한다. 그리고 최고의 풍수사 ‘김상덕’(최민식)과 장의사 ‘고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그들은 이장의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제안받는다. 영화속에서 의뢰인의 가족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아버지까지는 한국사람이고 의뢰인 본인부터 미국사람이며, 밑도끝도없는 부자라고 묘사되고 있었다.(실상은 조상이 과거 친일행각으로 인해 막대한 부를 얻었다.)

② “악지 중에 악지다”
의뢰인 조상의 묫자리를 살펴본 김상덕은 “사장님. 이번 일은 내가 못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 전부다 알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한 40년 땅 파먹고 살았지만 여기 진짜 악지라고. 저런데 잘못 손댔다가는 지관부터 일하는 사람까지 싸그리 다 줄초상 나 이 사람들아. 여기는 악지 중에 악지야.”
하지만 대살굿과 파묘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이화림의 제안에 따라 결국 파묘를 하게 된다.

③ "뭐가 나왔다고 거기서... ×나 험한 게..."
결국 파묘하여 관을 옮기는 데에는 성공한다. 하지만 관을 맡아주기로 한 관리소장에 의해 관이 열리게 되고 그로 인해 혼령이 밖에 나와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화림은 “뭐가 나왔다고 거거서...×나 험한 게...”라고 하며 앞으로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짐작한다.
그 영혼은 의뢰인의 할아버지였던 것인데 악지에 묻히고 나서 원한이 쌓였고 그 한을 후손들에게 풀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상덕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그 관을 화장하기로 하고 그 관을 화장하고 나서야 자신의 증손자의 목숨까지 취하려던 혼령은 점차 사라졌다.

④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혼령이 소멸한 후 영화가 좀 더 진행된 뒤에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는 범(한반도)의 허리에 쇠기둥을 박아 넣었다는 의미였다. 조선의 정기를 끊어내기 위해 한반도의 중심부에 쇠기둥을 박았다는 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의뢰인 조상에게 악지를 묘자리로 알려준 사람은 기순애라는 일본 승려였는데 그는 자신의 술법으로 쇠기둥에 정령을 만들어 한반도의 중심에 박아놓았다.
의뢰인 조상의 관을 옮겼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에 하나의 관이 더 들어있었다. 소위 ‘첩장’이었고, 그것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어내기 위한 쇠기둥이었던 셈이다.
기순애가 의뢰인의 조상에게 악지를 묘자리로 알려준 이유는 다이묘 오니 정령을 쇠기둥으로 박아놓았기 때문에 그 위에 고관대작의 묘로 위장해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원천 차단한 것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⑤ “이건 땅이야. 땅. 앞으로 태어날 손주놈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첩장에는 일본 장군 귀신(다이묘 오니 정령)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을 김상덕과 이화림이 퇴치하기로 한다. 그 때 김상덕과 고영근이 나눈 대사는 이렇다.
“에이, 저 이거, 쓸데없는 생각하고 계시면 말도 꺼내지 마요. 뭐, 민족 정기니. 뭐, 쇠말뚝으로 뭐, 나라를 반토막 낸다느니. 그런 걸 아직까지 믿어요? 그 절에 있는 쇠침들, 그거 다 토지측량용이잖아. 아시잖아요. 전에 학교에서도 99%가 가짜라고 하잖아.”
"그럼 1%는? 이건 그냥 일반 묘하고 달라. 뭔가 치밀한 계산이 돼 있다고!"
“하... 얼마 전에, 그 무덤 때문에 사람 죽어나가는 거 봤잖아요? 또 줄초상 당하고 싶어요? 형님, 쇠침이 박혀 있든, 뭐하든 간에 그냥 우리 잘 살아왔잖아요? 지금까지, 별 탈없이, 근데, 이제 와서 왜 그러는 거예요?"
"그래, 자네나 나나. 우리가 돈 있는 놈들한테 땅 팔아서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지. 근데, 그것 때문에 그래. 고 장로. 이건 땅이야, 땅! 앞으로 태어날 손주놈이 밟고 살아가야 할 땅이라고! 그리고 자네나, 나나, 우리가, 모두 다! 그리고 다음 어느 누군가.”
김상덕과 이화림은 무자비한 일본 정령과 맞서 싸우지만 고전한다.
그러다 결국 ‘젖은 나무는 불타는 쇠를 이긴다’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김상덕의 공격 덕분에 일본 정령을 물리치게 된다. 그리고 네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영화 <파묘> 속 장면


필자의 생각
① 쇠말뚝의 진위 여부

영화에서는 일본이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를 전제로 풀어갔다. 그런데 쇠말뚝이 정말로 우리 민족 정기 말살 목적이었는지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쇠말뚝이 국민적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은 1995년 김영삼 정권 당시에 광복 50주년을 맞이해서 민족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목표가 되면서부터였다.
이때 청와대 옛 본관 건물 철거와 조선총독부를 철거했고,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쇠말뚝 뽑기를 국가정책으로 실시하여 118개를 뽑아냈다.
당시 정부는 "일제가 쇠말뚝을 박아서 민족정기를 망치고 있다"고 하며 국가시책으로 쇠말뚝 뽑기 사업을 추진했다.
추후에 ‘쇠말뚝은 일본이 측량을 목적으로 박은 것이고 민족 정기 말살목적은 아니었다’는 반론들이 나오기는 했다.
반론의 주요 이유는 일본이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서 쇠말뚝을 박았다는 자료나 근거가 없었다는 점과, 일본에서는 애초에 풍수지리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었다.(그러한 이유로 앞서 ⑤에서 설명한 김상덕과 고영근의 대사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는 것이다.)
쇠말뚝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설에 좀 더 무게중심이 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에서처럼 1%라도 그러한 목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벼이 여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굳이 일제강점기 시절의 잔재를 아무 이유없이 그냥 두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쇠말뚝은 안 뽑는 것보다는 뽑는 것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② 친일파와 후손들
영화에서 등장하는 ‘친일파 조상’은 박영효가 모티브라는 의견이 있다. 박영효도 성씨가 박씨라는 점과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다는 점, 살아생전 명당을 그리 찾았다는 점 등이 이유이다.
박영효는 갑신정변 이후 친일파가 되었고, 일본으로부터 후작작위와 은자금을 받았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최고 관직인 중추원 의장이 되기도 했다.
1962년 계몽, 독립운동에 대한 공적이 감안되어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후작 등을 제수받고, 일제강점기 중반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제수한 중추원과 관직을 역임한 점이 감안되어 서훈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오히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 수록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영화에서는 의뢰인의 조상이 친일파였고 그래서 돈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런 사례들은 실제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들어 대표적인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들은 1992년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를 거뒀고, 이 땅을 30억 원에 팔아치운 뒤 캐나다로 이주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그러한 이야기 등을 고려할 때 독립운동가의 후손들보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부자로 잘 사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 <파묘> 속 장면


반일영화라고 비난하기 전에
어느 영화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반일을 부추기는 영화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논란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재현 감독은 “한국인이라면 정도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이 땅의 슬픔과 아픔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고 있잖아요. 한국 사람이라면 느낄 만한 보편적인 감정을 담았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영화를 ‘반일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일영화, 친일영화를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또한 ‘반일영화라고 해서 비난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일영화라고 비난받는 와중에도 이 영화가 천만관객을 돌파했으면 그만큼 대중들로부터 많은 공감대를 얻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반일영화라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의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참 지난 일이니 그냥 넘기자고 하기에는 우리 민족이 받은 상처와 손해가 너무 크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부자로 살고 있고,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피해 등으로 인생을 망치거나 몸과 마음에 크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면 국가는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를 영화 소재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를 반일영화라고 비난하기 전에 앞으로 절대 이런 가슴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제대로된 사과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력, 더 나은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다시는 외세로부터 부당하게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토히로부미가 잘 키운 인재라고 말을 하고, 일제강점기가 조선보다 더 좋았다고 말하며, 서울시민이 일본인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며 우리 국민들이 먼저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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