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경복궁의 불귀신을 어이 할꼬?

편집부 승인 2024.05.03 13:40 의견 1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대화재의 소식을 자주 듣고 보게 된다. 화재의 발화 원인이 정확히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화재의 규모는 너무 커서 유럽 소국의 크기만큼 되는 것도 있고 피해 규모는 국가 총예산의 수십 프로가 된다는 등의 뉴스가 해외토픽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 대형산불의 시초인 1996년 고성산불, 2005년 4월 5일 일어난 양양의 산불은 천년 고찰인 낙산사 대부분을 태웠고 보물 동종도 녹여버려 우리 국민에게 큰 슬픔을 주었다. 2010년 이후에도 화재 피해액이 1,000억 원이 넘는 대형산불이 고성, 강릉, 인제산불(2019.04.04. 피해액 2,518억), 안동산불(2020.04.24 피해액 1,063억), 울진, 삼척산불(2022.03.04. 피해액 9,086억) 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건물화재는 난방을 사용하는 겨울철에 일어나고 산불은 건조하고 마른 가지와 마른 초지가 있는 봄철에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산불도 봄철인 4월과 5월에 집중되는데 지금이 딱 그 계절이라 경각심을 깨우는 이유에서 ‘경복궁의 불귀신(화마)을 어이 할꼬?’라는 제목으로 역사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경복궁 ©gettyimages

[시사의창 2024년 5월호=민관홍(칼럼니스트, 우리문화숨결 경복궁해설사)]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이전 왕조시대의 건축물은 목재가 주재료이다. 담은 흙이나 돌로 쌓고 지붕은 기와나 볏짚을 엮은 이엉을 올린 것이며 나머지 부분은 거의 목재로 짓는 것이 조선시대 일반적인 건축물의 형태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건축재료도 예외가 아닌데 목조건물의 가장 큰 취약점은 화재이다. 목재는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도 있고 친환경적인 재료라는 점에서 현대에서도 재조명되는 재료이지만 방화제도나 소방 기구가 제대로 있지 않은 조선시대에 화재는 일단 시작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재앙인 것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경복궁에 화재가 많이 발생하였는데 세종 8년(1426년 2월 15일)에는 화적의 방화로 한양에 큰 불이 나서 한양 가옥의 17%인 2,400여 호가 불에 타고 경복궁의 일부 전각도 불에 타버렸다. 이때 세종과 세자였던 문종은 횡성으로 강무(사냥을 겸한 군사훈련)를 나가서 도성에 없었는데 임신 중인 소헌왕후가 화재진압을 총괄 지휘하였다고(조선왕조실록, 세종 8년) 한다.
한양 대화재 이후 크게 놀란 세종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소방재난본부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였다. 금화도감은 화재의 방지와 개천, 하수구의 수리 및 소통을 담당하게 하고, 화재를 이용한 도적들을 색출하게 하였다. 금화도감은 화재가 빠르게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길을 넓혔고 초가 사이에 방화 담을 쌓았으며 적당한 거리로 우물을 하나씩 파서 급수펌프와 같은 기능을 하고 다섯 집마다 큰 독에 방화수를 저장하게 하였다.(출처:소방청) 경복궁의 경회루와 수정전의 지붕 기와를 보면 기와 사이에 기다란 쇠사슬이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불을 진압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설치한 것이었다.
금화 군사들이 기와를 걷어내거나 젖은 천으로 불을 끌 때 가파른 지붕 위에서 쇠사슬을 붙들고 화재진압을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명종 때 경복궁 전각의 반 이상이 타버린 대화재(명종 8년. 1553년)가 있었다. 명종 때 대화재는 경복궁을 다시 짓는 정도로 복원하였는데 40년이 지나 임진왜란으로 경복궁뿐 아니라 창경궁, 창덕궁의 궁궐이 모두 다 타버렸다.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은 고종 3년(1865년)에 조선 건국 초기보다 10배 정도 많은 7,700칸의 전각들을 빽빽이 건설하였다.
당시 섭정 중인 신정왕후(효명세자 비)의 명에 의해 대원군의 진두지휘로 경복궁의 중건은 시작되었다. 경복궁을 중건하기 시작한 해부터 크고 작은 불이 나서 짓고 있는 전각과 이미 지은 전각도 불에 타버렸고 힘들게 준비한 목재들도 불에 타 버렸다.(경복궁 영건일기)

경복궁 드므 ©한국관광공사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극에 달한 대원군은 화재 예방을 위한 비방과 상징물들을 경복궁의 안과 밖 이곳저곳에 숨겨두었다. 경복궁에 입장한 관람객과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대원군의 화재 예방에 대한 비방과 상징물을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 있는 경복궁 유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경복궁을 밖에서 입장하는 동선으로 경복궁의 화재 예방의 비방과 상징물들을 찾아보자. 경복궁의 상징물을 잘 알려면 일단 오행에 대해서 간단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동아시아 유교 국가의 이념인 음양오행은 서로 상극과 상생이 있는데 ‘상극은 피하고 상생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오행은 좌청룡(동쪽, 청색, 나무, 仁, 봄, 生, 3와 8) 우백호(서쪽, 백색, 쇠금, 義, 가을, 成, 와 4와 9) 남주작(남쪽, 불, 적색, 禮, 여름, 팔괘 離, 2와 7) 북현무(북쪽, 흑색, 물, 智, 겨울, 팔괘 坎, 1과 6) 중궁 황룡(중앙, 황색, 흙, 信, 5과 10)이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은 그만하기로 하고 화재 예방 상징 비방에 위 오행의 뜻만 대입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재미가 더해질 것이다. 경복궁에 입장하기 전에 최근 복원된 경복궁의 월대 앞에 서보자. 해태가 여러분을 반겨줄 것이다.
해태는 원래 다투거나 싸우는 사람의 시시비비를 가려 옳지 못한 사람을 뿔로 들이받거나 무는 상서로운 짐승인데 19세기 조선에서는 해태가 화재를 막고 물을 다루는 영수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수류’에는 “해치는 불 짐승으로-중략- 청결한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고 ‘동국세시기’의 세시풍속에 정월이면 부엌에 해태를 그려 붙인다. 고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의 소방관 정복의 깃 포장과 소방재난본부의 상징물로 해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원군이 경복궁 앞 육조거리의 사헌부 앞에 해태를 세워 불도 막고 관리들 기강도 잡고 하마비로도 삼는 ‘일석삼조’의 해태를 세운 이유로 짐작이 될 것이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잦은 화재로 경복궁 중건이 지체되자 대원군은 그 이유가 남쪽의 관악산이 불의 형상인 화산 때문이라 생각하고 관악산 정상 바위에 육각형의 못을 파고 정상의 나무들을 베어 숯을 여섯 가마(6은 북쪽 물을 상징하며 6은 물의 완성수)를 만들었다. 그 숯을 근정전의 술, 해(10시, 11시) 방향과 경회루 북쪽 방향 팔괘 감(물)에 묻어 두어 화기를 잠재우려는 비방을 썼다.(경복궁 영건일기)
근정전에는 상서로운 짐승들의 돌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2018년 경복궁 영건일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근정전 월대의 돌기둥 위에 새겨져 있는 서수들을 십이지신상으로 설명하였다. 특히 개, 돼지가 없는 것이 개, 돼지가 더럽고 경망스러워서 빼었다는 등의 해설을 하는 해설사가 많았는데 경복궁 영건일기에 근정전 월대 기둥의 서수들은 하늘의 질서인 북극성을 중심으로 28수 별자리를 지상에 구현하였다고 전하고 술(개)은 ‘불의 곳간’이며 해(돼지)는 ‘불의 원천’이라 기록하고 있다.

경복궁 해태 ©pixabay


이에 대한 경복궁 영건일기의 추가 설명은 없으나 동음이의어도 같은 발음일 때 좋으면 쓰고 나쁘면 피하는 정서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습으로 볼 때 ‘술’은 물이지만 먹으면 취하는 몸에서 불이 나는 ‘수불’이고, ‘해’는 말 그대로 태양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 술(戌)와 돼지 해(亥)는 근정전 월대에 세울 공간이 있다고 해도 드러내 놓고 세울 수 있는 소재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근정전에는 개, 돼지를 세우지 않고 술(사람 몸에서 나는 불)과 해(하늘의 불) 방향에 관악산 정상에서 구운 숯을 땅에 묻어 불의 근본을 잠재운 것으로 추정한다.
관악산의 화마(불귀신)를 막기 위해서 경복궁의 남쪽 숭례문에도 비방을 배치하였는데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걸어 놓은 것이 그것이다. 숭(崇) 자는 산(山)자 밑에 마루 종(宗)을 써서 산꼭대기처럼 높고, 우러러보란 뜻이다. 숭례문의 현판이 큰 산처럼 우뚝 서서 관악산의 불귀신을 막으라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숭례문 밖에는 관악산의 화기를 흡수하기 위해 ‘남지’라는 연못도 조성하였다. 하지만 관악산의 불귀신을 막으며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의 화마도 견딘 숭례문이 재개발 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길 사람 속 화기를 이기지 못하고 2008년 2월 10일에 잿더미가 되었다가 2013년 4월 29일에 복원되었다. 광화문에도 화재 비방의 상징이 있다. 광화문 중앙 홍예문의 여장(성문 위 수비를 위해 총구를 낸 담)에 팔괘를 박아 넣고 중앙에 감괘(물을 상징)를 배치하였다.
광화문 안으로 들어가면 흥례문의 처마마루 위에는 삼장법사 일행과 다른 서수들이 도열해 있는데 이를 잡상이라고 한다. 잡상은 경복궁의 위계 있는 전각과 위계 있는 문에 있는데 삼장법사 일행이 천축국에 불경을 구하러 가면서 무수한 악귀들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불귀신을 포함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싶은 벽사의 의미가 있는 상징이다.
흥례문을 지나 근정전에 가려면 금천을 건너는데 영제교를 지나가야 한다. 영제교 엄지기둥 위에 용이 새겨져 있는데 용은 왕을 상징하지만 불과 물을 다스리는 영물이라 다리 위에서 화마를 포함한 사악한 기운을 막고 서 있는 것이다.

경복궁 드므 ©문화재청


용의 형상은 중요전각의 용마루 끝이나 전각 지붕의 네 귀퉁이에 용두와 토수로 배치되어 불귀신의 불장난을 막고자 경계를 서고 있다. 근정전의 하월대 모서리에 ‘드므’라는 크고 넓적한 청동 솥이 있는데 여기에 물을 담아 소방수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초기 작은 불에 소방수로 급한 대로 쓰지만 큰 불은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 화재 예방의 상징으로 배치해 둔 것으로 본다. 관악산의 불귀신이 경복궁에 불을 지르려 근정전에 내려왔다가 드므의 물에 비친 자신의 흉악한 모습을 보고 자기가 놀라서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1년 1월 18일 근정전의 보수를 위한 해체공사를 하다가 종도리(건물 최상층에 서까래를 받치는 구조부재) 장여에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상량문과 화재 비방의 부적들이 발견되었다. 1980년대 전영록의 노래가 유행할 때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종이학 천 개를 접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런데 종도리 장여에는 ‘천 개의 용(龍)자를 써서 큰 물 수(水)자를 완성한’ 붉은 색 한지 2장이 있었다. 사랑보다 더 간절히 불귀신을 막아달라는 비원이었다.
또한 육각형의 은판도 발견되었다. 육각형(6은 물의 완성수)의 은판 각 모서리에 물 수(水)를 새기고 은판 다섯 개를 오행으로 배치하면 은판 세 개가 겹치는 곳에 물 (水)자 세 개가 모여 물 아득할 묘()자가 된다. 근정전의 모든 방향에 ‘물의 진을 펼쳐서 불귀신을 막고자’ 하는 애절함이 안쓰럽다. 시사의 창 4월호 경회루 2편에 경회루는 36궁인데 물의 완성수 6제곱으로 물의 생성수이자 현묘한 1이 중궁에 있는 ‘물의 원천 그 자체’라고 설명하였다.
대원군이 화재 예방의 목적으로 경회루지 북쪽 물 속에 청동용 두 마리를 넣었는데(경복궁 영건일기) 한 마리는 승천했는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용은 불과 물을 다스리는 영물인데 경회루지에 청동용 둘을 넣은 것은 불의 수 2를 물의 생성수 6이 화기를 누르려는 비방(경회루전도)이었다. 경복궁 영건일기는 중요 전각의 현판이 거의 묵질금자(검은 색 바탕에 금색글씨)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검은색 바탕의 이유는 검은색이 북쪽을 상징하고 물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럼 금색 글자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도 오행의 상징으로 본다면 금색은 중앙이고 황룡이며 왕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금색 글자를 둘러싼 검은 색 바탕의 의미는 금색 글자가 왕 자체이거나 왕이 생활하는 공간, 왕 소유의 전각들로 물을 상징하는 검은 바탕이 왕과 왕의 소유물을 화마로부터 보호하는 상징의 의미라고 추정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화재 방재의 노력은 시대적 한계로 화재진압보다는 화재 예방이나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 주목적이라 할 수 있다.
대원군의 불귀신 비방을 보면 불귀신을 응징하려는 것보다 막거나 쫓아버리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경복궁의 목조건물을 노리는 불귀신보다 정작 더 무서운 조선의 일제 강점은 물리치지 못하였다.
드므의 물에 비친 자신의 무서운 얼굴에 놀라 달아나는 어리숙한 불귀신보다 친절한 얼굴로 다가와 나라를 통째로 강탈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비책과 비방은 어디에 준비하였었는지 심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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