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커피는 내게 숨이었다

한 모금의 환상이 불러온 이야기

편집부 승인 2024.05.03 11:24 의견 0

어떤 물은 아주 차갑고 어떤 물은 너무 뜨겁다는 사실은 어찌나 우리의 삶과 닮았는지. 이보다 더 느긋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릿느릿 얼굴에 뭔가를 찍어 바르고 있는 사람들과 옷의 일부만 걸친 채 평상에 앉아 TV 속 노래 자랑 무대를 보거나 갑자기 일어서서 귀지를 파는 사람들이 있던 곳. 웃고 싶어 온 사람들과 울고 싶지 않아 온 사람들이 맨살로 스쳐 가고 있다. 나는 커피우유를 두 손에 꼭 쥐고 포장 용기를 살살 눌러 가며 엄마를 기다린다.

-본문 중에서-

이명희 지음 ㅣ 낮은산 펴냄


[시사의창=편집부]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다. 어떨 땐 내 입에 딱 맞지만, 당황스럽거나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을 때도 있다. 여러 맛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울리며 “한 가지 맛으로 정리되지 않는 복잡함의 풍미”가 특징이다. 커피는 엄마, 인생과 닮았다.

첫 책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에서 중증 장애아 엄마로서 솔직한 고백을 놀라운 필력으로 펼쳐낸 이명희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를 선보인다. 《커피는 내게 숨이었다》는 엄마 되기의 극한을 경험한 사람이 오늘의 커피를 떠올리며 숨 쉴 구멍을 찾는 이야기이다. 바꿀 수도, 버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자신의 상황을 ‘커피’라는 일상적이고도 감각적인 음료와 연결해내는 시도가 독특하고 새롭다.

엄마 되기와 살아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커피 한 모금에 담긴 단맛, 쓴맛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홀짝홀짝 넘어간다. 읽다 보면 단맛과 쓴맛은 모순되고 상충되는 맛이 아니라, 함께 있어 각각의 매력을 돋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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