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슬라이스 구질의 대통령 격노로 OB 내는 정치판

편집부 승인 2024.04.05 10:32 | 최종 수정 2024.04.22 15:52 의견 0
김성민 시사의창 발행인 / 회장


[시사의창 2024년 4월호=김성민 발행인] 비기너 골퍼(beginner golfer)들은 대부분 슬라이스 구질 때문에 타켓 방향으로 볼을 보내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보내 OB(Out of Bounds)가 나거나 다음 샷을 치기 힘든 지형에서 세컨 샷을 해야 하므로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기 힘들다. 어언 30년 구력의 필자도 비기너 시절 슬라이스 구질을 고치지 못해 골프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동반자들을 불편하게 만든 기억이 있다. 프로에게 레슨을 받지 않고 골프를 시작해 기본기 없는 본인 탓을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OB가 날 때마다 클럽 탓, 캐디 탓을 해가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으니 동반자들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슬라이스가 날 때마다 격노할 것이 아니라 페이스 각과 스윙 궤도를 교정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언론에 ‘대통령의 격노’가 자주 노출된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이 네덜란드 출국 직전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에게 대표직은 유지하되 총선 불출마를 요청했으나 김 대표가 거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격노했다는 설, 중진 의원 중 장제원 의원만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보고를 받고 네덜란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격노했다는 설은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간의 문제로 덮을 수 있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서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설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폭로한 ‘윤석열 대통령 격노 발언’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번졌고, 국방부와 해병대, 대통령실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은 박 대령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국방부장관이 결재한 수사결과가 하루 만에 뒤집히고, 경찰에 이첩한 수사 자료를 국방부 검찰단이 회수해오는 초유의 사태 뒤에 있는 강력한 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군다나 당시 국방부장관이던 이종섭 현 호주대사의 석연치 않은 임명과정과 출국금지 해제조치는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요동치는 대형악재가 되고 있다. 故 채수근 상병 사건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할 것을 지시했고,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국방부장관의 결재를 득한 후 경찰에 이첩했지만 돌아온 건 ‘집단항명수괴죄’였다. 한 점 의혹 없는 수사 지시를 한 대통령이 ‘격노’한 것이 사실이라면 ‘격노’의 대상은 채 상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군 지휘관들이어야 상식에 부합되는 것이다.

철저한 수사를 한 박 대령의 수사보고서를 보고 ‘격노’했다면 타켓과는 동떨어진 악성 슬라이스성 ‘격노’인 것이다. 여기에 순직해병 수사외압 핵심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킨 것은 세컷 샷마저 OB를 낸 형국이다. 대통령직은 국가원수로서의 권한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권한을 가진 막강한 자리이기에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말이 아닌 ‘격노’로 표현되는 언어전달은 행정·입법·사법의 고위관료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대통령의 반복된 ‘격노’ 보도는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악영향을 미쳐 결국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물론 ‘격노’의 타켓이 정확하고, 국민 정서에 부합된 ‘격노’라면 지도자로서 가끔 필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복된 분노 표출은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지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아랫사람은 포용하는 게 일반적인 정서이자 리더십의 기본이다. 4월 10일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눈은 눈썹을 보지 못한다’라는 뜻을 가진 목불견첩(目不見睫)을 새기면서 남의 약점과 잘못을 논하고 처벌하기 앞서 자신들을 먼저 살피는 자세로 임기 마무리 할 것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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