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가난한 나라다. 명목상의 1인당 GDP는 대략 3,500달러(정부 통계상) 정도이지만, 부의 극심한 편중과 자본의 독점으로 위의 통계는 수치에 불과할 뿐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해 대략 상위 10%가 부의 90%를 차지하는 빈곤 국가의 대체적인 표본이라 해도 무방하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계층이 갈리는 장벽이 높고 견고하여, 서민 또는 하층민이 그 장벽을 뛰어넘고, 허물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보다 더 어렵고, 때로는 귀중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그 뿌리가 견고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서민, 하층민은 장벽을 깨부수고, 뛰어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고 좌절하며 하루하루를 벅차게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시사의창 2024년 3월호=이강현 필리핀특파원] 필자가 사는 곳은 필리핀 마닐라(수도)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이곳은 한국인이 모여 사는 곳도 아니고, 유명 관광지도 아닌 조용하고 순박한 곳이라 그 순박한 필리피노들과 부대끼며 사는 재미도 쏠쏠하고 알차다.
그러다 가끔 한국식품 구입차 마닐라나 앙헬레스 한인타운에 방문하곤 하는데, 한인타운에 가면 반가운 한글 간판과 정겨운 한국말이 필자를 녹아들게 하고 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러나 정겹고 반가운 것도 잠시, 한국식당이나 한국마트 등에 드나들 때면, 예닐곱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맑게 웃지만, 온갖 불쌍한 표정을 다 지으며 처량하게 두 손을 벌리고 애국가를 부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억장이 무너지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수 없다. 물끄러미 어린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부끄러운 지폐 몇 장을 손에 쥐여준다.
아이의 모습은 눈매, 얼굴형, 체형, 피부색 등 어딜 보아도 틀림없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국인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대한의 소중한 후손이 길거리를 헤매고, 구걸을 하고, 멸시를 받는 현장을 목도하고 나면 늘 깊은 자괴감과 좌절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필자는 누군가의, 아니 우리 모두의 소중한 자녀인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 실상을 파해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작은 힘이나마 일조하고자 코피노에 대해 심층취재를 하게 됐다.
코피노란 누구인가?
물론 코리언과 필리피나의 합성어이다. 코피노의 신분을 비하하거나, 조롱할 목적으로 코피노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을 먼저 밝힌다.
다만 코리언과 필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종족적, 사회적 관념에서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이 글을 이어간다.
코피노는 왜 끊임없이 생산되는가?
사실 코피노의 끊임없는 생산은 수많은 사연만큼 많고, 다양하며,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의 사례만으로도 상당한 코피노의 탄생부터 현상까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지금 필리핀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버려진 모든 어린 코피노는 몇 명이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먼저 밝힌다.
한국 정부에도, 필리핀 정부에도, 그 어느 사회단체도 필리피노의 현황을 정확하게 갖고 있는 곳은 없다. 다만 1만여 명은 될 것이라는 추정부터 7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설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먼저 정확한 통계부터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필리핀의 현실을 알고 보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코피노의 발생원인을 큰 틀에서 파악해 보면, 국제결혼, 유학, 여러 가지 형태의 국외 주재원, 매춘 등으로 가름할 수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국을 떠나 어떤 연유에서든 해외로 나가고, 이민을 택하고, 사업차 왕래가 잦고, 영어공부 등 유학을 오게 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
몇 날 몇 달이 지나면 가장 먼저 호소하는 감정이 외로움이요, 고립감이며, 또한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 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필리핀 여성을 갈망하게 되고, 동거와 결혼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그런 사연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필리핀 여성과 동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로 인해 한국인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문화적 차이로 버려지는 코피노들
이번 호에서는 필리핀 여성과의 사이에서 한국인이 겪게 되는 어려움과 코피노가 왜 발생하는지를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필리핀에서 필리핀 여성과 한국인 남성이 합법적으로 결혼식을 하고, 결혼 비자를 획득해서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가정을 일구고 잘 사는 가정도 많다. 하지만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정식 결혼을 했건, 동거를 하건 한국 사람으로 느끼는 문화 차이는 온전히 본인들이 감당하고 감내해야 할 문제임은 어쩔 수 없다.
가장 큰 문화 차이는 뭘까? 일명 Hiya 문화다. 체면, 자존감, 부끄러움 등을 말한다.
필리핀 여성의 입장에서는 한국이라는 로망, 또는 한국인이 되려는 로망이 크게 존재한다.
그래서 한국인과 가정을 일구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이미 한국인이 된 착각에 빠지고, 친정 식구, 친구들, 심지어 옛날 남자친구까지 무시로 집안에 드나들고, 한번 들어앉으면 몇 날이고, 몇 달이고 한두 명도 아닌 예닐곱 명 또는 열 명도 넘는 식구들이 무위도식하며 남편을 갉아먹고 산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거의 매일 온갖 핑계로 파티를 열고, 노래 좋아하는 민족답게 노래방 기계가 열받아서 고장이 날 때까지 밤새도록 먹고 마시는 일은 주변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이런 필리피노들의 등쌀에 못 이겨서 싫은 소리를 하거나, 돌아갔으면 하는 말만 하여도 Hiya가 발동된다.
체면이 어쨌다는 둥, 자신의 자존심을 뭉갰다는 둥 온갖 핑계를 갖다 대고, 친정으로 돌아가는 등 파경을 맞는다.
또한 경제적인 문제는 한국인 남성을 나락으로 이끄는 현실과 부딪치게 된다.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빠져나가는 경제력은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얼마만큼의 돈이 더 빠져나가서 같이 사는 한국인도 극빈층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는 시간의 문제일 뿐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파경을 맞이한 한·필 가정은 필연적으로 코피노를 생산하고, 여러 가지 사유로 그 아이들은 길거리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생산되는 코피노는 그 집계도 어렵고, 현상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또한 이러한 코피노들은 국적 문제 등 부수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도 다양하게 발생되고, 우선적으로 사람답게, 어린이답게 올바로 자라길 바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필리핀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비교적 총기 소유도 자유롭고, 불법 총기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치안상태가 좋은 나라는 아니다. 때문에, 독자 여러분도 필리핀을 방문하게 된다면 다음의 몇 가지는 반드시 지킬 것을 당부한다.
* 자유여행은 절대 금물이다.
* 공항택시 등 대중교통은 이용을 자제한다.
* 밤늦은 시간에 외출은 자제한다.
* 여권, 지갑 등은 안전한 곳에 맡기고 소액만
소지한다.
* 모르는 사람이 주는 먹을거리는 정중히 사양한다.
* 길거리에서 담배 등을 피우지 않는다.
한편, 다음 호에서는 매매춘 등 다른 요인으로 발생하는 코피노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코피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상을 알려 이를 예방하는 데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그들을 향한 독자들의 관심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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