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회복의 공간이 되어야 할 내 집에서 엄동설한에 난방이 되지 않아 추위에 떨면서 지내야한다면 이미 집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공동주택에서 부과되는 관리비를 정상적으로 납부했음에도 이런 불편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화를 참기 힘들 것이다. 지난 27일 주민공청회를 개최한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극도의 분노감을 표출하며 도저히 같은 단지에 사는 주민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욕설과 몸싸움으로 공청회장은 난장판이 되고, 급기야는 경찰이 출동해서 질서유지를 하는 지경으로까지 번졌다. 난방이 끊긴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은 집에서도 방한복을 입고 양말을 두 켤레 이상 신어도 바닥을 딛지 못한다며 조속한 해결을 외치고 있다.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어 주민들이 냉방에서 지내야 하는지 시사의창이 취재에 나섰다.
[시사의창 2024년 2월호=김성민 기자]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 주민 공청회 난장판...서로 대표권 주장하는 17대·18대 입주자대표회장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 제18대 입주자대표회의가 주관하는 주민공청회가 지난 1월 27일 관리동 경로당에서 열렸다. 입주민들과 관리사무소 직원, 김성환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구의원들이 참관한 주민공청회는 경로당에 입장하지 못한 주민들이 로비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다. 2021년 6월부터 아파트 관리비가 제대로 지출되지 못해 5개동 난방이 중지되고,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도 즉시 수리를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모인 자리다. 진행을 하는 제18대 입주자대표 오 모 회장 옆에는 제17대 안 모 회장도 많은 서류를 들고 앉아 있었다. 주민을 불편하게 만든 요인은 제17대 입주자대표회장이 제18대 입주자 대표회장에게 통장과 도장을 포함한 업무 인수인계를 하지 않아 관리비 지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로 제17대 안모 회장은 관리비 통장과 도장을 넘겨주지 않고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을까? 공청회 발언을 토대로 팩트체크를 해본다.
제17대 입주자대표회장, “아직은 내가 집행권 있는 회장” & 제18대 입주자대표회장, “통장 등 업무 인수인계해서 주민 불편 덜게 해야..”
제18대 입주자대표 오 모 회장이 지적하는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2023년 7월, 18대 입주자대표회의가 출발했지만 17대 입주자대표회장으로부터 통장과 도장을 포함한 업무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각종 소송으로 인하여 노원세무서에서 대표자 변경을 해주지 않고 있어 관리비 지출이 불가능해 주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17대 안 모 회장은 제18대 선거관리위원회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제18대 입주자대표회의는 적법성이 없어 현재 법적인 분쟁을 진행 중이니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본인이 회장으로서 집행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관리비 미지출로 불편을 겪지 말고 본인에게 지출증빙서류를 보내면 지출하겠다는 입장이다. 팽팽하게 맞선 두 사람의 주장은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으로 주민공청회는 퇴색되어 갔다. 통장과 도장을 넘기라는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안 모 회장은 퇴장을 시도했지만 쉽사리 공청회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결국은 112 신고를 해서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퇴장했다. 이에 격분한 주민들은 안 모 회장의 뒤를 쫓아가면서 통장과 도장을 요구하고 격렬한 몸싸움까지 번져 또 한 번 경찰이 출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원구청, 제18대 입주자대표회의 오 모 회장을 적법한 동대표로 인정...노원세무서는 대표자 변경 거절
노원구의원, 서울시의원,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제11대·12대 노원구청장을 역임하고 재선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김성환 의원은 95년도부터 노원구에서 구의원을 했기에 14단지의 사정과 안 모 회장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히면서 공청회에 참석해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안 모 회장의 비난에 부딪혔다. 김 의원에 따르면 동 대표를 뽑는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에 하자가 있다며 안 모 회장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기각이 됐으나 항소했고, 2심 재판부 역시 선거관리위원회의 구성에 하자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감독기관인 노원구청도 제18대 오 모 회장이 법적인 동 대표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모 회장이 통장과 도장을 넘겨주지 않자 18대 입주자대표회의 오 모 회장은 노원세무서에 입주자대표회의 변경을 고지하고 사업자등록증 대표자 변경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사업자등록증 대표자 변경이 되지 않으니 관리비는 안 모 회장이 가진 통장에 입금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제18대 대표회장은 통장거래를 할 수 없어 결국 노원세무서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노원세무서, 예규를 근거로 분쟁 종료 시까지 대표자 변경 불가 & 김성환 의원 “세무서의 과도한 권한행사, 국세청과 상의해 예규 변경”
감독기관인 노원구청이 법적인 동 대표로 18대 오 모 회장을 인정했지만 노원세무서가 대표자 변경을 해주지 않는 근거는 예규에 있다. 세무서 예규에는 대표자 변경 전 소송이 있을 땐 그것이 종료되어야 변경해 준다는 예규가 있다. 이 와중에 안 모 회장은 구청을 상대로 또 행정심판을 냈고, 질 경우엔 행정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한다. 결국 노원세무서장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주민들의 불편은 한동안 지속될 걸로 보인다. 이에 김성환 의원은 “안 모 회장은 분쟁이 계속되면 분쟁이 종료된 후에 대표자 변경이 가능하다는 세무서의 예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비꼬며 노원구청이 노원세무서에 정식 공문을 보내 협조 요청을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 세무서장을 향해 “내가 만나 본 공무원 중에 이렇게 관료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처음 봤다.”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이어 “비영리 법인이라 볼 수 있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영업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구청이 인정하고 있음에도 대표자 변경을 해주지 않는 것은 세무서가 과도한 권한행사를 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며 “국세청과 상의해 예규를 변경하고 세무서장이 과도한 권한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조정 해보겠다.”고 전했다.
17대 안 모 회장 “난방 문제 바로 해결할 수 있는데 18대 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서 문제를 일으키려고 시간 끌고 있다.”
주민 공청회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인 난방 문제에서도 양쪽은 팽팽하게 맞섰다. 17대 안 모 회장은 도면까지 가지고 와서 본인은 아파트 일 때문에 보일러 설비 기능사 자격까지 취득했다며 지금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18대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측에서 문제를 일으키려고 방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본인에게 지출 관련 서류를 올리면 당장 지출이 가능한데 그것조차 요청하지 않고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고 18대 오 모 회장을 공격했다. 즉 아직은 사업자등록증상 대표로 되어 있는 본인에게 결재를 받으라는 요구다. 이에 18대 오 모 회장 측은 작년 6월 임기가 끝난 사람에게 결재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니 당장 통장과 도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 관리비 미집행은 결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주민들이 납부한 관리비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아파트 관리소장이 동시에 날인해야 지출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현재 상계주공14단지 관리비 중 전기료와 가스비는 자동 이체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아직도 사업자등록증에 대표로 되어있는 안 모 회장이 통장과 도장을 관리하고 있어 일반관리비 지출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 환경미화 용역비와 경비업체 용역비가 2년 9개월 동안 집행되지 않아 위탁업체가 대신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 용역비 약 3억, 경비 용역비 약 10억이라는 금액을 위탁회사가 대신 지급하고 있으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노후화된 배관 교체 작업도 할 수 없어 결국 난방 문제도 터진 것이다. 22년 8월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불편을 겪었던 주민들은 언제 또다시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지 불안해하고 있다. 점검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이외에도 전기시설, 가로등, 보도블럭 등의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주민의 삶을 위협하고 있지만, 양측의 극심한 감정대립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청회 후 아파트 지하실 배관을 살펴 본 기자는 삭아버린 배관들을 보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돌발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양측의 주장이 다 옳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민의 안락한 삶
현재 수십 건의 소송이 진행되면서 극심한 혼란 속에 주민들의 삶이 위협받는 상계주공14단지 사태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소송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주민들의 고달픈 삶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17대 안 모 회장이 23년 5월에 임기가 끝났지만 새롭게 선출된 동 대표 회장 선거의 적법성에 문제가 있다며 인수인계를 거부하고 있다. 안 모 회장이 주장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원구청과 서울시 상수도사업소(북부수도사업소)가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 노후배관 교체공사를 위한 20억 원의 공공재정지원금이 부정지급 됐다며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또한 장기수선충당금 19억 원이 대표권이 없는 자가 집행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공동주택 관련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 모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 문제는 결국 행정과 수사 당국이 해결할 문제다. 이런 문제로 아무 잘못도 없는 주민들이 고통받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 다행인 점은 지출 증빙 서류를 올리면 집행하겠다는 안 모 회장의 약속이다. 하지만 18대 입주자대표회장과 관리사무소 측은 임기가 끝난 회장에게 결재 서류를 올리면 안 모 회장의 주장대로 그를 회장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므로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양측 주장을 놓고 누가 옳고 그르다고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게 가장 급선무라는 것이다. 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는 모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본인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주민의 안락한 삶을 위한 일이라면 대승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상계주공14단지 아파트 사태와 유사한 분쟁에 대한 판례는 없는가
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인수인계를 하지 않아 업무마비 사태가 발생한 사례는 거의 없다. 다만 유사한 분쟁에 대한 판례를 통해 상계주공14단지 사태의 문제 해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상당한 기간 동안 후임회장이 선출되지 않은 경우에는 전임 회장의 직무수행권한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판례가 있다. 이는 입주자대표회의가 비법인사단인 이상 존속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기 만료되거나 사임한 이사라고 할지라도 급박한 사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신임 이사가 선임될 때까지 전임 이사가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상계주공14단지 사태를 판례에 비교한다면 신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선출되었지만 실질적인 권한 행사를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급박한 사정이 있으므로 전임 안 모 회장에게 관리비 지출의 직무를 수행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볼 수 있는 판례다. 급박한 사정을 해소한 후 전임, 후임의 권리 다툼을 해결해도 되는 것이다. 안 모 회장이 선의를 가지고 이 사태를 해결해 준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감정의 골이 깊어져 협의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법적·행정적 해결이 되는 시점까지 안 모 회장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관리비 지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주민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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