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말 그대로 산 자체를 좋아하는 유형이다. 산의 높고 낮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려 하는 그 산이 집 근처인지, 아니면 차량으로 3~4시간을 이동해야만 하는 장거리인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산 속에서 숨 쉬는 자신의 그 모습 자체가 너무나도 좋은 것이다. 둘째로 모험가 유형이다. 산은 좋아하지만 남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을 주로 오르거나 남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누구나 오를 수 없는 힘든 산을 선택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종주를 밥 먹듯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든 산행을 통해 쾌감과 희열, 성취욕 등을 느낀다고나 할까. 필자의 경우도 이 유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산에서 사진 찍는 것을 즐기는 유형이다. 물론 산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 중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산에서 찍은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세상에서 그들에게 산에서의 인증샷은 삶의 큰 에너지가 되어 준다. 이번에 다녀온 경남 합천에 있는 명산 가야산은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모두 충족시킬 매력을 갖춘 산이라 말하고 싶다. 특히 필자가 올랐던 설악산의 공룡능선 축소판이라 불리는 만물상 코스는 필자와 같은 산 꾼들에게는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다. 치명적인 매력의 산임이 분명했다.
[시사의창 2024년 1월호=정용일 기자] 예로부터 국내에서 가장 험한 산을 꼽으라면 설악산의 공룡능선이 항상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그만큼 산이 깊고 험준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남의 산행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뿐, 직접 오르는 건 상상으로만 가능할 뿐인 곳이다. 등린이(산행초보자)들에게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자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공포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그런 설악산 공룡능선을 쏙 빼닮은 곳이 있다고 한다. 바로 경남 합천/거창군과 경북 성주군에 걸쳐있는 가야산의 ‘만물상코스’다. 코스 대부분이 최상위난이도인 블랙레벨로 표시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만만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자칭 등산 준전문가라 자부하는 필자가 도전하지 않고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만물상 코스’로 올라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코스를 도전해 보았다.
최상위 난이도 ‘만물상 탐방로’
오전 8시 거창에서 출발해 8시 50분에 가야산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 9시 정각에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만물상 탐방로’를 향해 출발했다. 주차장에서 들머리인 백운동탐방지원센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만물상 탐방로 좌측에는 용기골 탐방로가 있으며 해당 코스는 만물상 코스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코스이지만 그만큼 거리가 더 길다. 한라산의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생각하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만물상 코스의 경우 용기골 코스와의 난이도 차이가 더욱 큰 편이다.
만물상 코스의 경우 들머리 초반부터 가파른 경사로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체력안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라산과 마찬가지로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입산을 위해서는 미리 원하는 날짜에 맞춰 예약을 해야 하지만 필자가 방문한 금요일은 어쩐 일인지 입산을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동절기의 경우 입산 가능 시간은 오전 5시부터 12시까지이며, 하절기의 경우 오전 4시부터 오후 2시까지이다. 코스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무리하지 말고 코스 곳곳에 나오는 심장안전센터애서 적절한 휴식을 취한 후 등산을 이어가는 것이 좋다.
가을철의 경우 시작점부터 중반부까지 알록달록한 가을 단풍들이 반겨주기 때문에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지언정 눈은 항상 행복한 산행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코스의 대부분이 울퉁불퉁한 바위들이기 때문에 장갑을 착용하면 보다 수월한(?) 등산을 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만 가지의 바위들이 가득하다는 만물상 코스의 명성답게 코스 내에는 정말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즐비하다 바위들을 구경하며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지친 육신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또한 가야산에는 명품 소나무들이 정말 많다. 자연의 모든 것을 품고 살아가기에 그 자태가 더욱 멋스럽게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된다. 만물상 코스는 가야산의 모든 코스들 중 가장 힘든 코스이기에 스스로 한참을 올라왔다 생각해도 그건 본인만의 착각인 경우가 허다하다. 만물상 코스를 넘어 용기골 코스와 만나는 서성재에 도달한다 해도 정상인 상왕봉까지는 또다시 한참을 더 올라야 하기 때문에 남은 거리를 계산하지 말고 그저 주변의 멋진 자연을 벗 삼아 부지런히 오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할 수 있다.
부지런히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만물상 코스도 끝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힘겹게 넘은 만물상을 되돌아보면 힘들었던 시간들이 완벽하게 보상을 받는 듯한 험하고도 멋진 자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오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보상이기에 맘껏 구경경하면 된다.
하지만 그 멋진 풍경에 빠진 행복감도 잠시일 뿐 반대편에 거대한 병풍처럼 서있는 산이 하나 보인다. 만물상 코스를 처음 올라온 사람들 중 몇몇 사람들은 “혹시 저곳의 정상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라는 눈앞의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픈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는 것처럼 눈앞의 그 거대한 산봉우리 정상까지 올라야 상왕봉에 다다르게 된다.
만물상을 넘어 조금만 내려가면 넓은 쉼터가 나온다. 우측이 바로 용기골 코스이며, 그 코스로 올라오는 사람들과 만나는 지점이다. 들머리에서 이곳 성삼재까지 대략 2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쉼터에서 체력보충을 위해 간단한 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이제 또다시 긴 오르막길을 올라야만 한다. 구간의 난이도는 한라산 관음사코스의 초반부처럼 힘든 코스는 아니지만 만물상을 넘어오면서 체력이 고갈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많은 않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다소 완만한 구간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속도가 매우 느리고 지쳐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전국의 험하다는 산은 거의 다 올라본 필자지만 솔직히 서성재에서 다시 정상인 상왕봉을 향해 출발하기 전 심정은 거대한 산 하나를 오르기 전 들머리 앞에 서서 “저 산의 정상을 언제 오르나...” 하는 심정과 같았다. 새로운 산 하나를 처음부터 오르는 그런 기분이었다.
아찔한 경사도 잊게 하는 천혜의 비경
성삼재에서 칠불봉과 상왕봉까지의 거리는 1.4km다. 일반 평지에서 이 정도 거리면 휘파람 불면서 산책하는 수준이겠지만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다시 올라야 하는 거리로서는 분명 부담스러운 거리임이 틀림없다. 정상의 향한 초반부는 편한 조릿대 길을 걷는다. 해당 구간을 통해 오르다 보면 또다시 조망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가파른 철계단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철계단은 몇 군데 계속 이어진다.
가야산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거쳐 가는 계단이지만 만만한 구간은 아니다.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면 정말 아찔한 경사도에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혹시라도 발을 헛디디거나 해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충분히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껏 그러한 사고가 없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제 정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상부에는 칠불봉과 상왕봉 두 곳이 있으며, 두 정상 간의 거리는 능선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다시 반복하며 200m를 이동하면 된다. 실제 정상은 상왕봉이지만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칠불봉이 더욱 인기가 많다. 특히 칠불봉은 일출 사냥꾼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정상에서 만나는 대자연의 경이로움
정상이 건네주는 시원한 바람과 멋진 대자연의 풍경을 만끽했다면 이제 다시 서성재까지 내려가야 한다. 몸이 지치고 피곤하면 내리막길도 그렇게 쉽지 많은 않다. 누군가는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욱 힘들다고도 말한다.
그렇게 서성재까지 내려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며 좌측 용기골 코스로 내려가야 한다. 실수라도 해서 직진해서 다시 만물상코스로 진입한다면 하산길이 상당한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용기골 코스로 하산해야 한다. 백운동 탐방지원센터까지의 거리는 2.6.km이며 이 거리가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별 부담 없는 거리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앞서 말했지만 몸이 피곤하면 내리막길도 힘들고 지치는 법이다. 올라갈 때처럼 내리막길도 한참을 내려왔다고 생각이 들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이정표를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오는 걸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내려가도 내려가도 계속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타임루프 속에 갇혀 있는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산을 많이 타본 사람들은 백번 공감할만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다 보면 느낌적으로 이제 정말 도착지점에 가까워져 온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그럴 때면 없던 힘도 솟구친다. 용기골 등산로의 경우 대체적으로 산책로와 같은 느낌이며, 특히 단풍의 색이 짙게 드리워진 가을에 이 코스를 걷는다면 말 그대로 걷는 내내 눈이 호강하는 등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 용기골탐방지원센터가 보이기 시작하면 무사히 산행을 끝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기분이 매우 들뜨게 된다. 바로 옆 만물상 탐방로의 들머리를 다시 지나쳐 내려오면서 오전에 그곳을 오르기 전 그 무거웠던 마음가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완주를 통해 사뭇 가벼워진 몸으로 주차장 주변까지 내려가면 바로 왼편에 간단히 식사할 수 있는 매점(식당?)이 하나 나오며 이곳에서 어묵 5개와 국물을 주문하고 얼음컵에 콜라 한 캔을 따라 부어 마셨다. 산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공감하겠지만 어묵 한 입의 그 맛과 만족감은 세상 최고의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맛이었으며, 얼음 가득한 콜라 한 모금의 그 행복감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1년 만의 산행과 좋지 않은 컨디션과 무거웠던 몸을 이끌고 올라간 만물상 코스는 생각보다 힘들었으며, 잦은 사진 촬영과 긴 휴식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게 완주하니 총 7시간 10분이 소요됐다. 산을 오르기 전 국립공원 직원이 필자에게 6시간 30분 정도면 완주 가능할 것이라 말했는데, 일반적인 컨디션으로 올랐다면 아마 직원의 말대로 딱 그 수준에서 완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가야산 만물상코스의 산행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90점을 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 생각보다 산이 높았으며, 생각보다 코스의 난이도가 다채롭고 힘들었으며, 또 생각보다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다. 다음에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한번 방문해서 그때는 용기골 코스를 이용해 일출산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분명히 다시 가야산을 오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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