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에드워드 호퍼 첫 개인전

서병철 승인 2023.04.21 11:01 | 최종 수정 2023.04.21 11:03 의견 0

[시사이슈=서병철 기자]식당, 휴게소, 호텔 방, 열차 칸에서 혼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고독한 현대인!

20세기 초 현대인이 마주한 일상과 정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낸 대표적인 현대미술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상징하는 이미지다.

반갑게도 서울시립미술관(SeMA)에서 뉴욕 휘트니 미술관과 공동 기획하여 첫 국내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가 4/20~8/20까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된다. 내한한 애덤 와인버그 휘트니 미술관장은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낸 그의 작품을 통해서 관람객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무관심으로 흘려버리는 평범한 일상을 붙잡고 그곳에 머무르는 그의 시선이 궁금했다. 대상과 공간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포착된 현실을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 그리고 시공간의 재구성 등을 통해 자기화하였다. 과묵했던 그에게 그림은 세상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호퍼의 말이 인상적이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드로잉,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과 호퍼 아카이브(Hopper Archive) 자료 270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누어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충실히 조망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되어 간다는 느낌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시선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미국 집의 계단, 현관문이 안과 밖을 경계 짓고, 수풀이 우거진 숲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상상을 촉발한다. <계단>이라는 작품의 독특한 구도가 먼저 눈길을 끈다.

<계단>, 1949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삽화로 시작한 호퍼는 예술가의 꿈을 안고 파리로 건너가 체류한다. 거기서 빛의 효과를 강조하는 인상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는다. 강둑, 박물관, 다리와 같은 건축적 요소와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부각되고 사진 프레임 안에 담은 듯한 구도가 나타난다.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 1909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푸른 저녁>은 파리의 카페에 담배를 피우는 노동자, 중앙의 광대와 매춘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예술가, 오른쪽의 부르주아 남녀가 있다. 그런데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대화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도심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단절된 관계와 심리적 풍경 묘사라는 그의 성숙기 회화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뉴욕 맥도웰 클럽 출품 시 혹평을 받았다.

<푸른 저녁>, 1914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뉴욕은 호퍼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미국의 도시였다. 1908년부터 1967년까지 평생을 뉴욕에 살면서 풍경과 일상은 자연스럽게 관찰의 대상이자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시점은 기차 혹은 ‘엘(El)’이라 불린 고가 전철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기를 즐겼던 그의 시선을 연상하게 한다. 도시를 밝히는 불빛, 그림자가 드리워진 인물 그리고 텅 빈 거리를 선이 강조되는 판화 기법인 에칭으로 시도하니 더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밤의 그림자>라는 작품은 서울 어느 뒤 골목의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밤의 그림자>, 1921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또한 호퍼는 사회적,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대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의 삶을 관찰한다.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적 시선은 내외부로 연결하는 장치인 ‘창문’ 모티브를 통한 도시인의 일상을 묘사한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위한 습작’ 작품은 조명이 켜진 실내 공간은 창밖의 어둠과 대비되며 시간이 멈춘 듯한 단절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 그림이 아닌 습작이라 다소 아쉽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위한 습작, 1941 or 1942 (사진 : 서병철)

자연으로 확장

호퍼 부부는 도시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위해 기차와 중고차를 타고, 다녔다. 철길 옆에 우뚝 선 신호탑 뒤로 녹색 언덕과 함께 장관을 이루는 일몰을 묘사한 <철길의 석양>은 기차 창문 너머로 목격한 장면으로 착각하기 쉽다. 사실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 그의 풍경화는 있는 그대로 사실적인 풍경이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새롭게 그려진 것이다.

<철길의 석양>, 1929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1930년대 말 이후 호퍼는 작업에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한 이미지를 불어넣기 시작한다. <이층에 내리는 햇빛>을 탄생시킨다. 여름날 해안의 분위기를 포착하고 있지만, 빛의 극적인 잠재력과 건축과 주변 경관과 교차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화가인 조세핀 호퍼가 작품의 세부 사항들을 기록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장부에서 궁금한 두 인물을 이렇게 묘사했다. ‘독일계 백발노인과 눈치 빠르지만 시끄럽지 않은 착한 아가씨.’ 바로 아래에 화가가 추가한 설명이 웃음 짓게 한다. ‘늑대의 탈을 쓴 양’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와이오밍의 조>라는 작품에서 부인 조세핀의 수채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자동차 뒤 자리에 앉아서 화폭에 담고 있는 호퍼를 상상하니 보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와이오밍의 조>, 1946 (사진 : 서병철)

“호퍼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기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 준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이 울림을 준다. 덤으로 고독의 작가라는 굳어진 프레임을 깨준 그의 전 생애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햇빛 속의 여인> 작품에 시선이 머문 관람객 (사진 : 서병철)

서병철 기자 (bcs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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