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하
승인
2023.03.08 15:02 | 최종 수정 2023.03.0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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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꽃
글_박근하
(지난 주 두 딸들 델코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보여준 그림들을 보면서 )
70년전
40가구 조그만
화순군 동면
이름 없는
동네
동구밖
소녀는
흙 바닥 모래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막대기로 꽃과 나비를 그리다가
집에서 밥 묵어라고 부르니 고무신으로 그림을 지우고 쪼로록 달려갔다
그렇게
가난한 살림은 아니였지만
계집은 핵교 다닐 필요 없다는
외할아버지의 노쇄한 고집에
그때는
소녀였던
지금은 나의 어머니인 분의 배움은 거기서 끊겼다
외할머니 따라서
고치 심고
모심고
벼 타작하며
20살 집 살림하다
오빠의 친구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해서
동지 엄동설한 보다
더 추운 시집살이를 시작했다
시어머니
유동댁은
그리 어머니를 호되게 시집살이 시키셨건만
착하고
순한
조윤순
울 엄마는
이름처럼 순하게 참고 순종하며
시어머니를 섬기니
그 착한 며느리 소문이 자자했다드라
아들 딸
여렇 낳았는디
홍역에 몇몇 잃어
아직도 가슴에 묻고 살며
2남2녀
밥 술이나 뜨게 키윘으니
그것으로 아심찮고 기쁨 그지 없단다
늘그막
80에
접어드니
세상사 아쉰것 없지만
못 배운 설움
내 이름 세글자라도
쓰고픈 맘 가득
한글 배운다고 배워도
애초 까막눈이
뒤 늦게라도 벗겨지지 아니하고
꽃과
나비를 그리는 것이 더 신기하고
재미지다고
옛 이불 호창의 꽃과 나무들 그림
쩜 10원 고스톱 화토짝 홍싸리 그림
보건소에서
나눠준 한글 교본의 표지 그림들
색색이 그리고
다듬으니
새하얀
도화지에
온 갖 꽃들과
새들과 나무들이 가득차고
돼지들에게도
이쁜 색동옷 입히고
새들에게도 오색 옷을 입혀주니
요것이 한글보다 백 배는
재미지고 오지다
60살
큰 딸은
80 어머니 옆에서
''워메 울 엄마 화가 다 되부렀네 ''
허풍을 떨어주고
서울 살이
막내 아들도
연신 그림들 사진 찍으믄서
'' 요런 작품들은
멋 뜰어진 액자에 담아서 벽에 걸어야제 ''
누이의 넉살에
장단을 더 한다
까막눈
울 어머니의 소박한 꽃 그림
자식들에겐 피카소의 것 보다 값지고 소중한 그림
80년을 동구밖
이름 없는 들꽃처럼
살아온
어머니의
삶은
저
그림 속
숲의 꽃과 나비와
같이
짙은 향기를 머금고
우아한 나비의 날개짓과
같이
저
삶의 황혼을 나르리라
글_박근하 lower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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