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의창=소순일기자]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송내리, 산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가덕사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덕사 전경
따스한 햇살이 산사의 기와지붕을 어루만지던 날, 나는 이곳에서 고려 불교 미술의 정수를 품은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을 마주했다.
가덕사가 자리한 가마봉은 마을을 감싸듯 위치해 있으며, 그 아래로 개천이 흐른다. 풍수적으로 남근과 여근의 형국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예로부터 음양의 조화를 고려한 마을 신앙이 깊었다.
이에 따라 마을 주민들은 개천에 버드나무를 심고, 바위를 세워 기운을 조절했다고 한다. 불교 사찰이 세워진 배경 또한 이러한 지리적 신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려 시대 불교 조각의 정수를 간직한 석조여래입상
가덕사는 전라북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50호로 등록된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을 품고 있다. 높이 179cm의 이 불상은 광배와 불신이 하나의 돌로 조각된 형태로, 남원 지역에서 유사한 양식이 발견되는 사례 중 하나다.
전라북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50호로 등록된 ‘석조여래입상’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며 광배와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원형을 온전히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 비례는 조화롭고, 체구는 당당하다. 통견의 착의법과 가슴 앞에서 모은 손의 형태는 고려 후기 남원 지역 석불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같은 남원 지역의 용주암석조여래입상과 비교할 때 더욱 뚜렷한 친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살아있는 가덕사
가덕사의 역사는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만조가 이곳에 석조여래입상을 모시며 ‘미륵암’을 창건했고, 이후 1976년 오재찬이 중창 불사를 진행하며 가덕사로 개칭했다. 이 과정에서 대웅전과 요사가 정비되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적사 5층석탑
세속을 떠나 자연 속에서 참선과 수행을 원하는 불자들에게 가덕사는 더없이 적절한 공간이 되고 있다.
햇살 속에 깨어난 천 년의 미소
고요한 산사의 경내를 거닐며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을 다시 바라보았다. 고려 시대 불교 미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이 불상은 단순한 조각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지켜온 신앙의 중심이었다.
봄 햇살 아래, 불상의 흐릿한 미소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것은 아마도 천 년을 이어온 신앙의 온기, 그리고 수행자들의 염원이 새겨진 표정이 아닐까. 바람에 실려오는 염불 소리와 함께,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시사의창 소순일기자 antlaandjs@gmail.com